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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Image ⓒ alelmes on Unsplash

새는 먹을 것을 다 먹으면 뒤돌아보지도 않고 날아가 버린다. 인간도 필요에 따라 그렇다. 이것이 보통 세상의 인심이기도 하다. 세상 인심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을 땐 눈여겨본다. 그중 누구를 사랑하고 있을 때가 그렇다. 누구를 사랑한다면 뒤돌아보게 되고 상대를 이해해 줄 공간이 생기고 이타적이고 세상이 밝게만 보이기도 한다. 사랑의 힘이다.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사랑하는 애인과 속삭일 때라고 말한다. 우체부 마리오에겐 베아트리체 루소의 미소는 갑자기 밀러 오는 앞바다의 하얀 파도와 같다.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 땐 어떤 아름다운 광경 속에서도 서글프거나 그저 시간만 흐르고 있을 뿐이다. 가을이 다시 돌아와 들판에 오색 물결이 흘러도 사랑이 없다면 가을 바람마저 으스스할 뿐이다.

지난주 말 멀지 않은 춘향골 남원에서 짧지만 즐거운 여행을 했다. 모처럼 오로지 단둘이 한 공간에서 지냈다. 아내는 어떤 생각으로 여행을 했는지 모른다. 지난날 추억을 더듬으며 오작교를 걷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봤다. 사랑스러워 보였다. 광한루 완월정에서 내리 비친 은은한 달빛 때문이었을까.

머릿속엔 지난날의 삶과 추억들이 흰 바람 벽에 한 컷 한 컷 흑백 사진들로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풋사랑 때는 하나만 같아도 이것까지 같은 생각을 한 거야? 라고 기뻐하기도 했고. 함께 하는 삶이 더할수록 하나만 다르고, 하나만 맘에 들지 않아도 우리 이것도 안 맞는 거야. 빈정대기 일쑤였다. 누구에게 합리적인 행동은 누구에겐 미친 짓일 수도 있다는 것도 모르면서. 지난 세월을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채운 것이 아니던가. 오만은 상대가 나를 사랑할 수 없게 하고, 편견은 내가 상대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말이다. 그렇게 세월은 갔다.

그 풋풋했던 사랑은 이제 익다 못해 말라 비틀어지고 그나마 남아 있는 것도 자식들을 키우면서 소진되고 있다. 남은 것은 의리와 정(情)정도일 게다. 그동안 삶이 있고 자식들을 키우면서 의리와 정으로 살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고맙게도 아침이 되면 어제처럼 아침밥을 챙겨준다. 일상의 의리로 챙겨준 밥일 수 있다. 필자 역시 먹고 난 후 뒤돌아보지 않은 새처럼 살지 않았는가 싶다. 매일 한 번 정도 설거지는 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중년의 나이에 남원골 오작교를 걸어가는 아내 뒷모습에서 모두 타버렸다고 생각했던 사랑의 마음이 살짝 되살아난 것이다. 타다 남은 사랑의 씨앗이 아직 남아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다행이다. 비록 풋풋하고 열정적인 사랑은 아닐지라도 기왕이면 오래 묵은 장독대에서 은근히 우러난 씨간장같이 의리와 정이 녹아 있는 그런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고 하던가. 여행은 우리 삶의 쳇 바퀴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여행을 통해 상대를 이해해 줄 공간이 더 커진 것 같고 세상이 더 밝아 보인다. 들녘에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확연히 가을이다. 주저 없이 여행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의 미소가 앞바다에 밀러 온 하얀 파도처럼 느껴질 때까지. 우리 여행을 떠나봐요.

#여행#사랑#춘향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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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대전일보나 계간 문학지에 여론 광장, 특별 기고, 기고, 역사와 문학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는 따뜻한 시선과 심오한 사고와 과감한 실천이 저의 사회생활 신조입니다. 더불어 전환의 시대에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즐기면서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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