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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그대로 농민장터'에서
'자연그대로 농민장터'에서 ⓒ 박성인

기후위기의 최전선 제주 바다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 활동하는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이 지난 달에 창립 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파란의 창립 과정에서 든든한 버팀목의 역할을 한 사람이 있는데요. 바로 박성인님입니다.

파란의 이사로, 다른제주연구소의 운영위원장으로 그리고 농민으로 일하며 '주경야연(晝耕夜硏)' 즉,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연구한다'는 모토로 명랑하게 살고 있는 박성인 님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말에 다른제주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후배한테 배운 자연농법으로 시작한 농사... 가능하면 자연에 맡겨요"

 매주 토요일 어김없이 열리는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매주 토요일 어김없이 열리는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 박성인

- 중간에 육지에 가서 살긴 하셨지만 제주에서 나고 자란 분을 인터뷰하게 되어 반갑고 기대도 됩니다. 박성인 님(이하 성인)이 어릴 때, 제주 바다는 어땠나요? 바다에 대해 어떤 기억이 있는지요?

"어릴 때는 먹돌새기라는 곳에 살았어요. 지금의 용담동 쪽인데 비행장 하고 맞닿아 있는 데예요. 제주 서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서국민학교 바로 밑쪽이 용두암. 개학해서 학교 끝나면 끝나자마자 무조건 바다로 가서 뛰어들었죠. 3~4월이면 추운데도 막 뛰어들어서 물놀이하고 그랬어요. 무지개다리 있는 용연 있잖아요. 양쪽으로 절벽이 있고 가운데 무지개다리가 있는데 거기서 다이빙을 해요.

1단부터 6단, 가운데 무지개다리가 11단이고 그 옆 조금 더 높은 데가 12단, 13단까지 있어요. 저는 그때 8단인가 9단까지 올라갔었어요. 초등학교 6년 내내 그야말로 바다는 놀이터였죠. 어릴 때 우리는 먹을 게 없었잖아요. 그런데 바다에 가면 먹을 게 천지였어요. 돌멩이 뒤집으면 깅이(게), 보말, 구살(성게) 등등 그야말로 먹을 게 천지였어요. 날 것으로 그냥 다 먹고 그랬어요. 그래서 어릴 때 바다는 놀이터이자 간식의 보고였죠."

- 육지로 가서 대학을 다니다 오랫동안 노동운동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노동현장에서의 조직가, 이론가로 치열하게 살다가 제주로 돌아오셨는데 돌아온 이후 어떻게 살고 계신지요? 우선 현재 하고 있는 일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십여 년 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 혼자만 제주에 계셨어요. 장남이라 아버지를 보살펴드려야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서울에서는 생계 문제 해결이 막막했어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귀향을 하기로 결심했고, 뭘 할지 고민하다가 집안 선산 땅에 농사를 지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후배한테 소개를 받아서 괴산에 있는 조한규 선생에게서 자연농법 농사를 배우고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있지요. 근데 우리 집안이 원래 농사짓는 집안이 아니에요. 제가 뭘 좀 알았으면 농사는 시작을 안 했을 거예요. 워낙 몰라서 했어요.(함께 웃음) 근데 하다 보니까 진짜 배우는 게 많아요."

- 처음 농사는 매우 낯설었을 텐데 어떻게 자연농법을 하게 된 거죠? 농약치고 화학비료로 재배하는 관행농이 주변에 흔했을 텐데요. 10여 년 간 유지해 온 자연농법에 대한 생각도 궁금합니다.

"관행농 하는 사람을 많이 알았으면 관행농으로 했겠죠. 주변에 농사짓는 사람이 없었고 자연농법으로 농사 시작한 후배 한 명이 있었어요. 후배가 알려주는 대로 어디 가서 교육받아라 해서 받았고 지금까지 12년째 농사를 짓고 있어요. 한 게 아까워서 계속하고 있죠. 노지에서 밭작물 하고 있는데 2천5백 평 정도에서 50~60가지 해요. 그야말로 다품종 소량생산이에요.

변변한 건 없는데 일단 기조는 '뭘 할 건가'를 고민하지 않고 '뭘 하지 않을 건가'를 고민하고 있어요. 그게 기본 철학이에요. '뭘 하지 않는다'는 건 그냥 방치하고 내버려둔다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면 제초제, 화학비료, 농약 같은 걸 안 하잖아요, 그런 다음에 자연에 맡기는 거예요.

뭘 하지 않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해요. 첫째는 농작물의 내적 힘에 대한 신뢰가 필요해요. 두 번째는 농부가 실력이 있어야 돼요. 흙과 미생물, 식물의 생리 그리고 병해충과 기후에 대해서도 알아야 해요. 농사는 완전 종합적인 거예요. 세 번째는 결국 농사는 몸이 짓는 것, 즉 체력이 있어야 해요. 아니 체력 그 이상이죠. 실제로 몸이 움직이고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거예요. 봄만 되면 갑자기 몸이 먼저 움직여 막 종자를 찾고.(웃음)"

 박성인 님의 농장 가장자리농원
박성인 님의 농장 가장자리농원 ⓒ 박성인

- 이제는 농사가 좀 익숙해지신 건가요? 제주에서 정기적으로 자연농법하는 농민들 장터가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농사지은 지 10년 차인 재작년에 저 스스로 '초보' 자를 뗐어요. 이전까지는 검질(잡초)과 버랭이(벌레)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했어요. 근데 10년쯤 지나니까 당하긴 당하는데 일방적이고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스스로 '초보' 자를 뗐어요.

지난 12년 동안 365일 밭에서 일해 왔고 지금까지 한 게 아까워서 또 계속하고 있어요. 그런데 친환경농업 하는 소농들이 워낙 판로가 어렵잖아요. 6년 전에 주변의 자연농 하는 농민들과 함께 '자연 그대로 농민장터'를 만들어 매주 토요일 장터를 열고 있어요. 2024년 8월 24일이 272회 차예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매주 토요일에 무조건 한다, 그렇게 진행하고 있어요. 농부팀, 수공예팀 다 해서 거의 40~50팀 있는데 한 번 열리면 보통 15~25팀이 나오죠."

몇 십 년 농사지은 이도 초보가 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기후위기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를 마치고 참여한 셀러(판매자)들과 함께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를 마치고 참여한 셀러(판매자)들과 함께 ⓒ 박성인

- 얼마 전에 제주에 새롭게 연구소가 창립되었고 여기에도 깊이 관여하신 걸로 아는데요. 어떤 연구소인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요?

"농사지으며 후배들 부탁으로 대안 언론 <제주투데이> 대표를 2년 맡아했어요. '송악산알뜨르사람들' 활동도 하면서요. 그러다가 작년에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 세계사적인 대전환기인데 이런 시기에 제주 지역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해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죠.

활동가들이 각자 전문 분야로 나뉘어 있는데 이제 총제적으로 모아 나가야 할 때이고 또 당장의 현안에 소진되어 있으니 역량도 재충전할 필요성이 있는 거예요. 주변에서 비슷한 제안들이 있었고 가능한 역량을 결집해 연구소를 만들어보자 해서 1년 정도 준비 끝에 올해 6월 20일 '다른제주연구소'를 창립했습니다. 저는 현재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 이 다른제주연구소 정관의 목적을 보니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더라고요.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은 무엇이 핵심이라 생각하시는지요?

"기후위기는 결국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단지 기후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 생산과 소비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기후위기는 한 국가 내에서는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약자인 사람들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되죠. 전 세계적으로는 남반구 거주자들에게 다 전가되는 구조이고요.

이 과정에서 기후 난민들이 속출하게 되고 그들에게 또 극우적인 공격들이 일어나는 거죠. 이런 갈등들이 엄청나게 첨예화되는 거예요. 거기에서 자기의 삶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그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런 취지를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잘 다룬 책이 바로 <기후책>이에요. 그래서 그 책을 사서 주변의 청년들 스무 명 정도에게 나눠 주었어요. 읽어 보자고."

 하루의 농사일을 마치고 다른제주연구소에서 주경야연(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연구하는) 중
하루의 농사일을 마치고 다른제주연구소에서 주경야연(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연구하는) 중 ⓒ 김연순

-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쓰고 해양 쓰레기를 줍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 근본적인 구조를 들여다보자는 게 핵심적인 말씀인 것 같아요. 올해 '기후정의행진'의 슬로건도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가 실제 농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체감하는 게 있나요?

"많죠. 예전에 '온난화'라고 부르던 걸 이제는 '기후변화'라고 부르잖아요. 따뜻해지지만은 않거든요. 기후가 이제 예측 불가능하게 되어 버린 거예요. 특히 노지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완전 예측 가능 하지 않아요, 거의 불가능해요. 몇 십 년을 농사지은 사람도 초보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예요.

꽃이 안 피고 벌이 수정을 안 하고. 아니면 꽃이 먼저 피어 버리고 벌은 때를 못 맞추고. 식물도 곤충도 온도에 민감한데 이렇게 생태의 교란이 발생하는 거죠. 또 병해충이 점점 달라지고 많아지면서 대응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 어릴 때의 제주 바다, 청소년기의 제주 바다를 거쳐 다시 제주로 돌아와 살고 있는 현재, 성인 님에게 제주 바다는 어떤 존재인가요? 제주 바다에 대한 바람 같은 게 있는지요?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활동을 계기로 바다가 새롭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바닷속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바다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마지막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주도는 감귤 농사와 월동채소 농사지으며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국에서 가장 많이 써요. 이게 다 바다로 휩쓸려 내려가잖아요. 축산 폐수와 바닷가 연안의 양식장 이런 것들이 조간대와 제주 바다를 다 망치고 있는 상황이죠.

그런데 이 부분을 누구도 본격적으로 문제제기 하지 않아요. 1차 산업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 조사와 전면적인 혁신의 방향을 잡는 게 필요합니다. 지금의 제주 바다 모습이 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제주연구소도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브라질의 환경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 '치코 멘데스'는 "계급투쟁 없는 환경운동은 정원 가꾸기에 불과하다"며 우리 사회 불평등의 문제가 환경 파괴를 가져왔음을 지적하는데요. 성인 님이 말하는 기후위기 문제의 해법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바꿔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 내어주시고 소중한 말씀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후위기#해양시민과학센터파란#다른제주연구소#제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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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현재 제주에 살고 있다. 섬과 뭍을 오가며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홍시'라는 별칭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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