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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도 미국에서 아들 호성과 함께 기뻐하는 모습
1987년도 미국에서 아들 호성과 함께 기뻐하는 모습 ⓒ 김영희

(이전 기사: 김원봉의 외조카가 학생들의 항일역사탐방 후원한 까닭에서 이어집니다)

필자는 2013년 7월 25일부터 7월 29일까지 북경, 한단 남장촌(조선혁명군정학교 장소), 중원촌(화북조선청년혁명학교 장소), 장자령 흑룡동 석정 윤세주 열사 순국지, 십자령 전투지역(팔로군과 조선의용군이 합작 항일무장투쟁의 최대격전지), 상무촌(조선의용대 최초 주둔지), 운둔저촌(조선의용대 주둔지, 무정 장군 거처), 마전촌(팔로군 총사령부 옛터), 석문촌(조선의용군 기념관∙윤세주, 진광화 열사 초장지), 진기로예 열사능원(윤세주, 진광화 열사 묘지), 호가장 전투지역 등 역사 탐방을 다녀왔다.

탐방팀은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대표, 역사 연구자, 이회영 선생 유족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과 전국 역사 교사들 그리고 경희대학교 학생 등으로 구성되었다.

▲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역사 탐방 '항일무장 투쟁지를 찾아서'. (좌) 남장촌 조선의용대 주둔지에서 왕교진(주2) 할머니와 함께 (우) 왼쪽부터 김현숙, 필자, 마완근 역사 교사 석문촌 윤세주? 진광화 초장지 묘역에서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역사 탐방 '항일무장 투쟁지를 찾아서'. (좌) 남장촌 조선의용대 주둔지에서 왕교진(주2) 할머니와 함께 (우) 왼쪽부터 김현숙, 필자, 마완근 역사 교사 석문촌 윤세주? 진광화 초장지 묘역에서 ⓒ 김영희

역사 탐방의 끝자락을 달리고 있던 지역은 석문촌 윤세주와 진광화 초장지였다. 초장지는 태항산 줄기를 잇는 연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탐방팀은 정성껏 준비한 제물(祭物)을 차린다고 분주하였다. 당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가 제문 낭독을 하였다. 엄숙한 분위기에 맞춰 날씨까지 흐리고 안개비가 잔잔히 내리는 상황 속에서 제례 상을 준비하고 있는데 윤경로 ( 전 한성대학교총장,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공동대표가 서두르라는 주문에 곧 제례가 시작되었다. 사회자는 북경대 정원식 박사였다.

김상웅 대표가 제문을 읽는 도중 울먹이는 목소리가 탐방팀들의 귀 전에 서서히 울리더니 오열하기 시작하자 제단 아래서 묵념하고 있던 탐방팀들도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태항산 한줄기인 연화산을 등에 업고 둘러싸인 초장지가 눈물바다로 변했다. 잔잔한 빗줄기는 열사들의 고마움과 기쁨의 눈물이고 후손들의 울음소리는 태항산을 깨우는 듯 감동의 도가니가 되었다. 역사 탐방의 묘미를 흠뻑 느끼는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필자는 당시 추모의 글을 준비한 글쓴이를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박경철 충남연구원을 찾을 수 있었다. 서로 그때의 감동을 얘기하면서 "박경철 연구원, 혹시 그때 제문 있습니까?" 하니 "제가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내심 걱정되었는데 안도감이 밀려온다. 11년이나 지난 추모의 글을 바로 보내주어 감사하다는 마음 전하고 싶다. 감동에 도가니로 만든 추모의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추모의 글 –석문촌에서>
글쓴이 박경철: 북경대 사회학 박사, 현)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석정 윤세주 열사, 진광화 열사
그리고 태항산 항일근거지에서 희생된 모든 열사님께 바칩니다.

순결한 조국의 산하가 강도 일본에 뺏기어
(생략)

중국의 중원과 이곳 태항산 지구에서 일제와 처절히 싸우다.
(생략)

장렬히 전사한 자랑스런 우리 조선의 아들 석정 윤세주 열사, 진광화 열사, 그리고 이름도 남김없이 사라져간 열사님들의 영전 앞에 여기 조선인들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생략)

우리는 부끄럽게도 자주독립을 향한 열사님들의 빛나는 투쟁의 역사, 그리고 숭고한 정신을 잊어왔습니다.
(생략)

조국이 하나로 통일하자는데 좌와 우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하지만 질시와 맹목적인 이념의 광풍은 우리 조국의 몸과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고 우리의 역사와 생각까지도 흑백논리로 갈라놓고 말았습니다.
하여, 조선이 해방된 지 60여 년이 지나서야 우리는 열사님들의
영전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또 슬픈 일입니다.
(생략)

조선의용대 열사들의 혼령이 깃든 이곳 태항산의 준봉은 우리 조선인들에게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괜찮다 다 괜찮다. 먼 길 돌아오느라 고생이 많았구나, 이제라도 만나서 반갑고 또 기쁘구나, 조국의 미래는 이제 너희들에게 맡기겠노라!"고 하며, 허허 웃으시면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고 있으시는 것 같습니다.
(생략)

윤세주, 진광화 열사 그리고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수많은 열사들의 조국 사랑과 만민 자유의 뜻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생략)

열사님들이여! 중국 땅에서 한 그루 나무, 한 포기 들꽃이 되어 저 세상에서도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고 계실 수많은 조선의 무명 용사의 영전에 머리 숙여 삼가 명복을 빌며, 조국 산하의 맑은 물로 만든 술과 소략한 육포와 과일을 차려 올리오니 부디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단기 4346년 서기 2013년 7월 27일 아침 신흥무관학교 기념사 회원과 제행 학인을 대표하여 불초 김상웅 삼가 올립니다.

필자는 두 차례 태항산 역사 탐방을 통해서 교사로서 많은 것을 깨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역사 탐방의 생생한 현장경험과 감동의 묘미를 되새겨 학생들에게 유익한 교수 방법으로 가르칠 수 있어서 보람 있는 역사 탐방으로 기리 기억되고 있다. 아울러 11년 전 역사 탐방의 기억과 감동의 도가니였던 석문촌 초장지를 되새길 수 있어서 뜻깊고 뿌듯하며 이 감동의 사연을 기사에 남길 기회를 주신 회장님께 감사 마음 전하고 싶다.

셋째, 의열단 약산 김원봉 장학회에서 후원한 "아리랑 아라리오" 전시회에서.

필자가 2017년 2월 8일 밀독연 회원으로서 전시 소식을 전해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마침 역사 탐방에서 만난 강정애 선생도 만났다. 반갑게 인사하고 56점 독립운동사 관련 작품들을 둘러보고 촬영하고 감상하였다. 그중 가장 마음에 감동을 준 두 작품을 선택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당시 김태영 회장이 귀국한 줄 몰랐는데 극단 밀양 대표 전은영(김회장 육촌 여동생)한테 사진 한 장 받고 알았다.

 의열단 약산 김원봉 장학회에서 후원한 "아리랑 아라리오" 전시회. ?(좌) 전시회에서의 판플렛 (중) 김태영 회장이 전은영과 함께 (우) 필자 모습
의열단 약산 김원봉 장학회에서 후원한 "아리랑 아라리오" 전시회. ?(좌) 전시회에서의 판플렛 (중) 김태영 회장이 전은영과 함께 (우) 필자 모습 ⓒ 김영희

 (좌) 권순왕 홍익대 미술학 전공, 작품, "가려진 지속-약산"(우) 윤상길 작품, 청화백자 "염원" 총 56점 전시됨
(좌) 권순왕 홍익대 미술학 전공, 작품, "가려진 지속-약산"(우) 윤상길 작품, 청화백자 "염원" 총 56점 전시됨 ⓒ 김영희

- '아리랑 아라리오' 전시회를 시작한 배경을 설명해주세요.

"홍익대 권순왕 교수가 친구였기에 상의한 결과 각계각층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전시회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밀양은 약산 김원봉과 윤세주 등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입니다. 밀독연 후원하에 약산 김원봉 장학회 후원하여 전시회를 열게 되었어요. 물론 독립운동사에도 암울한 시대를 날카롭게 꿰뚫고 깊이 있게 파해 친 다양한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현 문화예술의 시대에서 후학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님들과 작가들이 중심이 되어 밀양의 독립운동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한뜻으로 작품 전시를 갖는 것은, 민족혼을 되살리고 선열들의 노고와 땀을 예술로 승화시켜 보려는 뜻깊은 시도라 생각되었어요. 독립운동사는 민족정신에 뿌리이며 문화예술은 그 정신을 계승하고 미래와 연대해서 '신 독립운동'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한층 더 깊다고 생각합니다. "

필자가 가장 마음에 들어서 촬영한 권순왕 작품 <가려진 지속-약산>과 윤상길 작품 <염원>이 우연히 의열기념관에 기증하여 전시 되어있다.

넷, 의열단 약산 김원봉 장군 기념사업회 창립식 행사 준비.

2019년 11월 9일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으로 성공회대학교에서 약산 김원봉 기념사업회 창립식을 거행하여 도올 선생 강연까지 원대하게 거행되었지만 안타깝게도 필자는 참석하지 못했다. 도올 김용옥 선생과 이만열 선생 그리고 각계각층의 관계자 등 400여 명이 참석하여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약산 창립식의 제반 행사 추진과 비용을 모두 회장님이 제공한 것이다.

 2019년 의열단 100주년 기념으로 약산 김원봉장군의 기념사업회 창립식 거행된 모습(사진제공:기념사업회 위원회)
2019년 의열단 100주년 기념으로 약산 김원봉장군의 기념사업회 창립식 거행된 모습(사진제공:기념사업회 위원회) ⓒ 김영희

필자가 김태영 회장의 기억을 빌려서 카톡으로 대화한 결론은 위에서 소개한 공식적인 후원 외 비공식적인 후원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대략 후원금 추정액이 20억 원 이상이라 한다. 왜 이렇게 후원을 많이 하셨냐고 했더니 그동안 억압 속에 감췄던 약산 집안 사연이 어머니 인터뷰로 알려지면서 '약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조건 믿고 후원하였다'고 말한다. 그 말에 필자는 가슴이 찡해온다. 회장님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후원금 도움을 받으신 분들은 부디 감사의 뜻을 잊지 않길 바란다.

- 끝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약산 기념사업회를 유격대 전략처럼 지속적으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후원회원 없이 자체 운영으로 연구팀(인재 양성), 강연팀, 대학에 약산학과 신설 등으로 약산의 훌륭한 지도력과 사상 그리고 애국심 등을 습득하고 고취 시킬 수 있는 젊은 인재를 양성하고 싶습니다."

필자는 이 말에 감개무량하였다.

- 회장님 남은 인생을 어디에서 영위하고 싶으십니까?

"한국에 들어가서 살고 싶은데 고아원 시절 추위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추운 겨울 날씨를 이겨낼 자신이 없어요. 날씨가 따뜻한 아시아나 하와이가 좋습니다. 그리고 약산 일생의 시나리오를 내 손으로 쓰고 싶어 지금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유화 그림도 그리고 싶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그림 그려서 입상도 여러 번 받은 경험도 있고 미국 가기 전에 무대 미술상도 받았어요. 나의 예술적인 감각과 자질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 미국에서 살고 싶은 이유가 있을까요?

"미국에는 영화인이 많이 살고 있어 좋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친해져 제가 보안관 역할을 하는 것도 보람 있고 즐겁습니다. 미국 생활 40년 넘게 생활하다 보니 새롭게 발굴한 서양문화사를 공부하게 되었는데 상당히 매력적이고 재미있어요. 특히 유적지 성지 등이 좋고 관심이 있어요. 미국에서 흑인들은 피해 의식이 있어요. 그러나 아시안인들은 존중받고 있어요. 그 이유는 흑인과 백인의 가교역할 하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아시안인들이 뉴스에 가끔씩 인종차별 받는 것에 마음이 아팠는데 아시아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한 맥의 역할을 한다니 안심되고 자부심이 느껴진다.

▲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추모비(푸우이키 묘역) 방문한 김태영 모습-'묘역 측면은 이민 노동자가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의 형상임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추모비(푸우이키 묘역) 방문한 김태영 모습-'묘역 측면은 이민 노동자가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의 형상임 ⓒ 김영희

끝으로

"우리 한반도 선열들은 일본 식민제국주의를 향해 온몸으로 항거하며, 벼랑 끝 가시밭길을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한 걸음 내달렸다. 그중에서 풍전등화의 민족 운명 앞에서 조국 해방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치며 당당히 할 일 투쟁사의 한 축을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구었던, 바로 우리의 항일레지스탕스 저항운동, 아방가르드 돌격대'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이 있었다.… "(주3)

김태영 회장님의 후원금을 대략 살펴보았다. 회장님이 약산을 향한 상념과 존경심을 읽을 수 있었다. 내 돈이 소중하지 않고 아깝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회장님은 독립운동사와 관련된 어떤 단체든, 약산을 연구하는 사람들 누구든 손을 내밀면 기꺼이 잡아 주었다. 필자는 생각한다. 회장님의 베푸신 깊은 뜻이 약산의 영혼에 전해졌을 것이며 외조카가 성공하여 외삼촌을 사랑하는 마음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필자가 3부에 걸쳐 회장님의 상흔과 후원한 기금내역은 빙산에 일각일 뿐이다. 이번 기회에 11년 전의 역사 탐방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어 기쁘고 그날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끝으로 되새기고 싶지 않은 상흔의 기억을 찾아서 성의껏 도움 주신 김태영 회장님께 깊이 감사 말씀드립니다.

[주2] 단체 사진 배경은 왕교진 할머니 댁 아래채에서 촬영하였다. 마을(남장촌)에서 약간 언덕으로 올라가면 의용대의 토굴도 있고 왕 할머니 남편과 의용대원들이 농사를 함께 짓고 살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갓 16세에 시집을 왔는데 의용대들이 마을을 서로 오가면서 왕래하고 살던 것을 생생히 기억하여 들러주었다. 의용대원들은 용감하고 젊고 잘생겼다고 하면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온갖 훈련과 고통을 겪으면서 생활했다고 한다. 답사팀들이 왕할머니를 만나서 증언을 들을 때면 감동으로 다가왔다. 왕할머니의 생생한 증언에 감사합니다.

[주3] 한중항일역사탐방단 지음. 대국에서 부르는 타이항산 아리랑. 한중항일역사탐방단. 2014.3.26. 102p <조선의용대조선의용군, 와 대장정> 저자 정원식.

다음 달 32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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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 김영희

덧붙이는 글 | 김영희 (전)교사 한국전쟁기 창원유족회 유해 발굴 조사단장∙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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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남 진주에서 거주하고 있다. 전직으로 역사교사였으며, 명퇴후 한국전쟁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자원봉사로 10여간 했으며 현재도 계속 진행중입니다. 유해발굴 봉사로 인하여 단디뉴스 연재 18회를 기사화했으며 고등학교, 일반인, 초중고 교사 대상 유해발굴 관련 연수도 진행중이며 9월부로 오마이뉴스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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