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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의료급여 본인부담금 체계를 정률제로 개편하는 방안을 내놨다. 2007년 의료급여 정액제 도입 후 비용에 대한 의식이 약화돼 과다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했다며 개혁 대상으로 삼은 것.

최근 개최된 열린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2025년도 기준 중위소득, 기초생활보장 급여별 선정기준을 심의‧의결하면서 '의료급여 제도개선 방안'도 함께 마련해 발표했다. 개선방안에 따르면, 합리적 의료 이용을 유도하기 위해 현행 정액제 위주에서 이르면 내년부터 정률제로 의료급여 본인부담 체계를 개편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비 본인부담체계 개편 방안(보건복지부)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비 본인부담체계 개편 방안(보건복지부) ⓒ 김진웅
 
현행법상 1종 수급자(근로능력이 없는 사람)가 외래를 갈 경우, 의원급 본인부담금은 1000원, 병원과 종합병원은 1500원, 상급종합병원은 2000원이다. 그러나 개편안에 따르면, 의원은 1인당 진료비의 4%, 병원과 종합병원은 6%, 상급종합병원은 8%에 비례해 본인부담금이 부과된다.

이를테면, 개편된 의료급여 정률제를 적용할 시 1인가구인 A 의료급여 수급자권자가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아 입원, 영상촬영, 수술 등으로 인해 500만 원가량의 진료비가 청구될 경우, 8%인 40만 원을 납부해야 하는 것이다. 2024년 가구단위별 생계급여 기준 1인가구는 71만3102원을 받는데, 이 중 56%를 납부하는 꼴이다.
 
 2024년 가구단위별 생계급여 현황 표(보건복지부)
2024년 가구단위별 생계급여 현황 표(보건복지부) ⓒ 김진웅
 
복지부 설명에 따르면, 2007년 정액제가 도입된 이후 그간의 물가‧진료비 인상 등을 감안할 때, 의료 이용에 대한 수급자의 실질적 본인부담 수준이 지속 하락했으며, 비용에 대한 의식이 점차 약화되어 과다 의료 이용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의료급여 수급권자 중 노인과 장애인 비율이 높기에 의료 이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1인당 의료비를 비교해 의료급여 환자들이 도덕적 해이를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게 가난한 사람들을 낙인찍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병원에 자주 못 가게 만드는 방향으로 재정 절감"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은 "(현재 의료급여가) 진료비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정률제 도입을 통해 수급자의 비용 의식을 높이고 합리적인 의료 이용을" 유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을 두고 비판이 나온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아파서 병원에 더 많이 가는 거지 과잉 진료를 한 게 아닌데 가난한 사람들이 병원에 자주 못 가게 만드는 방향으로 재정 절감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2023년 현직 의사가 직접 연구한 사례 연구에서는 의료급여 수급자는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1.8배 더 많은 만성 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이희영 임상의가 발표한 논문 '의료급여 수급자와 건강보험 가입자의 임상적 건강 수준의 격차 분석'에 따르면, 건강보험 환자들은 평균 2.19개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었으나, 의료급여 환자들은 평균 3.84개로 더 많이 갖고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6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동시에 가진 환자는 건강보험 환자군에는 단 1명, 즉 0.7%이었으나, 의료급여 환자군에는 23.3%(24명)에 이르렀다. 의료급여 환자 중에서는 심지어 10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진 이도 있었다. 반대로 만성질환을 1개만 가진 환자는 건강보험 군에선 37%(53명)에 이르렀으나, 의료급여 환자군에선 6.8%(7명)에 불과했다.

또한 의료급여 환자군은 근골격계 질환과 위장장애, 기억력 감퇴, 우울 삽화(우울증이 2주 이상 지속하는 경우), 불면증, 불안 장애 등에서 건강보험 환자군에 비해 높은 유병률을 보였다. 예컨대, 불면증의 경우 의료급여 환자의 13.6%(14명)가 수면제를 복용하는 반면, 건강보험 환자군에선 1.4%(2명)에 그쳤다.

이처럼 복지부 장관의 주장과 달리, 의료수급자가 의료비용 의식 수준이 낮거나, 비합리적 의료서비스 이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급여 환자가 건강보험 가입자에 비해 다발성 만성질환을 보유하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에 더욱 두터운 보호가 필요한 것이다.

더 나아가 2019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건강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학력 수준이 낮고, 사회경제적 상태가 좋지 않을수록 그리고 교육수준, 직업계층,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건강이 그렇지 않은 대상에 비해서 좋지 않다. 실제로 사회계층 사다리에 비례하여 평균적으로 사는 기간이 달라지는데,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우리나라 연구를 통해 보고된 결과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듯 통계적, 임상적 결과에서 나타나듯이 가난할수록 건강은 취약하다. 의료급여 수급자가 도덕적 해이에 빠져서 의료를 과다하게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실제 그런 사례도 있겠지만, 이런 경우일수록 관료주의는 과도한 일반화를 자제하여, 정책을 설계하여야 한다.

지난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우리나라는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지나친 양극화를 조장하고, 사회 갈등을 유발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는 정책과 제도는 윤석열 정부에서 시행되고 있지 않는가? 의료급여 수급권자를 재정 악화 주범으로 몰아가는 듯한 정책이 우려스럽다.

*참고 문헌
1. '의료급여 수급자와 건강보험 가입자의 임상적 건강 수준의 격차 분석'(2022)
2. '통계청, 한국의 사회동향 2019.

덧붙이는 글 | 필자의 소셜미디어에도 게재합니다.


#의료급여수급권자#의료급여제도개혁#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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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소박한 삶도 얼마든지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사회복지학자입니다. 아동, 청소년, 장애인, 노숙인 등을 돕는 사회복지현장과 국회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지방의회에서 지방자치 발전과 사회서비스 제도 개선을 설계, 보완하는 정책지원관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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