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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하던 일을 멈추고 바쁘게 탁구장으로 향했다. 6일 오후 5시 탁구 남자 단식 16강전 중계를 구장에서 회원들과 같이 보고 싶어서였다. 혼자 보면 집중해서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스포츠 중계는 여럿이서 응원하면서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봐야 재밌다.

"남자 탁구 지금 시작해요. 빨리 TV 켜봐요."
"언제? 오늘? 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단식만 끝나고 단체전은 어제부터 시작했어요."
"그래 그럼 빨리 틀어봐."

TV 속 화면 속에서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이번 남자 단체전 16강전 상대는 크로아티아이다. 동유럽 탁구 최강자라고 한다. 화면에 장우진 선수가 수건에 땀을 닦는 모습이 비쳤다.

"근데 장우진은 왜 수건을 저렇게 갠데?"

수건을 사각 모양으로 반듯하게 접어 땀을 닦아내는 장우진 선수의 루틴을 두고 한 마디씩 한다. 수건 모양이야 어떻든 땀 닦는 게 우선인 우리들에게는 깔끔한(?) 장우진 선수의 버릇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수건을 어떻게 사용하던 무슨 상관이랴. 경기만 잘 하면 되지.'
 
 탁구 동호회에서 응원하던 날. 초상권 보호를 위해 그림으로 변환했다.
 탁구 동호회에서 응원하던 날. 초상권 보호를 위해 그림으로 변환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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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소개가 끝나고 드디어 경기가 시작됐다. 단체전은 '복단단단단'으로 치러지며 복식 게임을 먼저 한다. 먼저 3게임을 이기는 팀이 승리한다. 우리나라 복식조는 장우진과 조대성이다. 크로아티아 팀이 득점을 했다. "아" 하고 탄식 소리가 들렸다.

"근데 저쪽 선수들은 기럭지가 왜 저렇게들 다 길어?"
"그러게 말이야~. 키 큰 남자 네 명이 서 있으니까 탁구 테이블이 너무 작아 보인다."

"탁구선수는 키가 작아야 유리한 것 같아."
"그러게. 키는 작고 팔은 긴 게 제일 좋은 거 같아"

"근데 우리는 키도 작은데 왜 이렇게 탁구를 못 치니?"
"우리는 팔도 짧잖아. 하하하"

또 까르륵 웃음소리가 구장에 울려 퍼졌다. 잠시 경기에 집중하는 듯했지만 다시 수다가 이어졌다. 남자 단체 경기를 보고 있지만 신유빈 선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신유빈 등판 좀 봐봐. 어깨빨 장난 아니잖아. 유빈이도 체격이 더 커지면 안 돼."
"그러니까 파워가 좋지. 유빈이 드라이브 좀 봐. 덩치는 커도 몸놀림이 빨라졌어."

"그럼 너도 탁구 좀 치겠는데? 니 어깨도 떡 벌어졌잖아."
"으이, 언니는!!!?"

또 다 같이 까르륵 웃어댄다.

"근데 남자들은 왜 경기 보러 안 오니?"
"그러게, 와서 응원해야지. 자기들 게임만 하고 있네."

"근데 언니들은 중계방송 어느 채널로 봐?"
"난 영식이가 하는 방송 보는데. 현정화 해설도 차분해서 좋고."

"아... 그 영식이. "
"해설을 아주 차분하게 잘 해. 상황에 따라 공 구질 해설도 해 주고 전략에 대해 말해주는 것도 좋더라. 탁구 칠 때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

우리 구장에서는 정영식 선수를 '영식이'라고 부른다. 정영식 선수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우리 구장을 다녔다고 한다. 지금도 정영식 선수의 아버지가 가끔 우리 구장에 들러 회원들 연습 상대도 되어주고 조언도 해 주시는지라 모두 정영식 선수를 친근하게 여긴다.

"영식이 서브 넣는 폼은 자기 아버지랑 똑같아."
"그 아버님도 탁구 너무 잘 치시더라. 친절하시고. 지난 번 시 대회에서도 성적 좋으셨어."
"그건 그래."
"어머니도 잘 치시잖아."
"그러게 말이야."

탁구 중계를 보러 모인 것인지 수다를 떨려고 모인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우리의 수다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경기는 경기 대로 놓치지 않고 본다.

"좋아!!! 그렇지.!!!"

선수들의 강력한 톱스핀 볼이 상대의 테이블에 냅다 꽂히면 어김없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진짜 정말 잘한다. 우리 선수들 실력이 한 수 위네…"
"조대성도 너무 잘하는데? 처음에 좀 불안했는데."

수다를 떠는 동안 복식경기는 쉽게 이겼고 나머지 단식 게임도 세트 스코어 3:0, 3:1로 손쉽게 이겼다. 이제 8강 진출이다.

"자. 이제 우리도 탁구 치러 가자~"
"복식하자. 어떻게 편먹을까?"

"어, 근데 치마 새로 샀어?"
"아냐 ㅇㅇ이 작다고 줬어."

"요새 신유빈 입은 치마 이쁘던데. 그거 어디 거야?"
"OOO사 치마 같던데? 티셔츠도 예쁘던데? 하나 사 입을까?"

기사를 보니 신유빈의 먹방 덕에 관련 제품들이 동이 나고 있다고 한다. 건강젤은 일시 품절이고 대형 마트에서도 난리란다. 개인 블로그에 올린 신유빈 운동복, 신발 관련 포스팅은 역대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다.

요새 탁구 동호인들에게 우리 대표팀 선수들, 특히 '유빈'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심지어 레슨 코치도 레슨 중에 "신유빈 선수 하는 거 못 봤어요? 흉내라도 좀 내 봐요"라며 질타를 한다. '코치님, 내가 신유빈 흉내라도 낼 수 있으면 여기 왜 있어요?'

2012년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메달 소식과 신유빈이라는 탁구 스타가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7일 오후 5시 남자 단체전 8강전이, 오는 8일에는 여자 대표팀 4강전이 열린다.

#한국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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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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