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의 96% 수준으로 회복 중인 가운데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경복궁을 찾은 관광객들이 수문장 교대식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제가 파리에서 겪은 일들은 대체로 '인종차별'이라고 확실히 규정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네가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피해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저는 역지사지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한국인들이 외국인 관광객 혹은 이주 노동자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요. 표면적으로는 한국 사람들 사이에선 '인종차별'은 안 된다는 의식이 꽤 강합니다. 외국인만 차별하는 식당들에 대해서는 함께 분통을 터트리는 댓글이 쏟아지고, 한때 흑인을 친근하게 부른답시고 쓰였던 '흑형'이라는 말도, 당사자들로부터 '기분 나쁘다'는 지적이 나오자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은 <US뉴스앤월드리포트>가 보고한 '인종차별적 국가 순위'에서 세계 79개의 국가들 중 9위를 차지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누군가에게는 한국이 프랑스보다 더 지독한 '차별 국가'로 여겨질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관련 기사:
부끄러운 9위... 대한민국이 인종차별국 오명을 벗어나는 길https://omn.kr/25438)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발표한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에 따르면 이주민의 68.4%가 '한국에 인종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고 답변했습니다. 본인이나 가족이 언어적 비하 표현을 들은 경우가 56.1%로 절반을 넘었고, '내 존재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는 무시의 경험이 34.9%, '다른 사람이 나를 기분 나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는 경험도 43.1%에 달했습니다.
이중에서 '무시'나 '기분 나쁜 시선'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불쾌감을 느끼더라도 따지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아마 상대방 역시 스스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니, 당하는 사람만 움츠러들고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훈님도 자주 들어보셨겠지만, 이처럼 소수자들을 향한 은근하고 교묘한 일상적인 차별을 '미세 공격(Micro-aggression)' 혹은 '먼지 차별(미세 차별)'이라고 일컫곤 합니다. 의도적이고 직접적인 차별은 없는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쁘고 배제당하는 기분이 드는 거죠. 농담처럼 지나가거나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 정색하고 반박하기도 어렵고요.
'먼지 차별'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차별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그 사유를 타인과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그 과정이 쉽게 생략됩니다. 한국인은 인종차별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그래서 자신이 '차별' 행위를 할 리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타인은 악마가 아니고, 나 자신도 그렇게 선하지는 않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 보면 정치권이든 온라인 커뮤니티든 상대방은 악마이고, 우리는 '선'이라는 레토릭만 강조됩니다. 내 약점을 드러내서도 안 되고, 내가 '틀려서도' 안 되고, 우연히라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어서도 안 되는 분위기는 개인과 집단의 성찰을 저해합니다. 자연스럽게 차별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목소리만 커질 뿐, 반성과 개선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게 될 수밖에요.
누구도 차별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차별이 난무합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말조차 오로지 타인을 공격하기 위해서만 쓰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인종차별이 사라질 리가, 아니 줄어들 리가 있을까요. 어쩌면 제가 경험한 파리만큼이나, 제가 살고 있는 서울이 '환대하지 않는 도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훈님께서 본 서울은 어떤 도시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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