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지난 기사(다문화 시대를 맞이한 한국 직장에 필요한 것: https://omn.kr/29jdc )에서 이어집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11년(2012년~2022년) 동안 26만2305명의 한국인이 국적을 상실하거나 이탈했다. 연평균 약 2만 명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이들의 발길은 주로 미국, 일본,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으로 향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들(14만8528명)보다 1.7배나 많은 수치이다 .

지난 7월 4일 뉴욕포스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이삿짐 업체인 퍼스트 무브 인터내셔널이 구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민하고 싶은 나라는 캐나다였다. 그 뒤를 이어 호주가 2위였다. 따뜻한 날씨와 세계적인 교육 및 공공의료 시스템 등이 호주 이민을 선호하는 이유라고 한다.
 
호주 멜버른의 St.Kilda 해변가 호주는 해변가를 따라 주요 도시들이 모여 있다. 주말 멜버른 주민들이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다.
호주 멜버른의 St.Kilda 해변가호주는 해변가를 따라 주요 도시들이 모여 있다. 주말 멜버른 주민들이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다. ⓒ 김도희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코로나 이후 급증한 이민자 때문에 시드니, 멜번 등 호주 여러 도시에서도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지만, 여전히 많은 한국 사람들이 호주 이민 문을 두드리고 있다.

워킹홀리데이, 결혼, 유학 등을 이유로 이주하는 사람도 있고, 별생각 없이 여행을 왔다가 호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여유로움에 반해 이민 목표를 세우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누구는 호주 이민에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한다(물론, 성공의 기준이 다를 수는 있겠다). 이런 이민 성패는 어디에 달려 있는 걸까?

가족 위해서만 살다가, 이제 날 위한 노후 즐깁니다 

지난 5월, 2주간의 호주 여행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45년째 호주에 살고 계신 여러 교민을 만났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만남 중 하나는 서호주 퍼스에서 만난 피오렌씨다.

이 분은 환갑 넘어 퍼스로 이민을 와 주도적인 삶을 살고 계시는 멋진 어른이었다. 여행 전 한 온라인 교민 커뮤니티에 교민 분들을 만나고 싶다고 내가 올린 글에, 그분이 흔쾌히 맛있는 밥을 사주겠다며 연락하라는 댓글을 남겨주신 덕분에 만남이 이루어졌다. 지난 5월 말, 서호주 퍼스의 한 레스토랑에서 피오렌씨를 만났다.

피오렌씨는 아들과 딸을 20대 때 호주로 유학 보낸 후 20여 년을 떨어져 살다가 자녀분들의 초청으로 11년 전 호주로 오셨다고 했다. 젊었을 때 외국에서 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인생의 후반부에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 와서 새 삶을 꾸려 나가실 용기를 낸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정말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본인만의 삶을 꾸려 나가고 계시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60년간 평생을 치열하게 가족들을 위해 살다가, 호주에 와서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노후를 즐기니 너무 좋아요. 운전면허도 땄고, 영어도 배우고 있고, 태권도, 승마, 낚시, 여행 등 살기 바빠 못한 운동과 여가 활동도 호주 와서 원 없이 다 하고 있어요. 저는 호주가 정말 좋아요.

누군가에겐 딱히 밤문화도 없고 심심한 나라일 수 있지만, 호주에선 깨끗한 공기와 청정 자연환경도 가까이서 누릴 수 있고, 전 세계 음식도 곳곳에서 맛볼 수 있어요. 퍼스로 이주하는 한국 교민이 생기면, 제가 직접 모시고 1주일에 한 번은 꼭 같이 영어 공부를 하러 함께 나가고, 제 친구들도 소개해 줘요."

 
 서호주 퍼스 이민 11년차인 피오렌 씨, 낚시도 피오렌 씨가 즐기는 취미 중 하나다. 사진은 프리맨틀에 낚시를 갔을 때 잡은 게들.
서호주 퍼스 이민 11년차인 피오렌 씨, 낚시도 피오렌 씨가 즐기는 취미 중 하나다. 사진은 프리맨틀에 낚시를 갔을 때 잡은 게들. ⓒ Fioren
 
희생과 도전, 좌절과 인내, 그리고 다시 도전으로 점철된 인생 선배의 70여 년의 삶. 그 얘기들을 들으며 나는 마음이 벅차올라 정말 눈물이 나기도 했다. 주어진 환경에 불평불만하기보다는, 삶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당신이 다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해 오신 이야기였다. 그 배경이 한국이든 호주든 상관없이 말이다.

물론 이민하는 나라에 가족이 있다면야 훨씬 더 심리적 안정을 주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또 우리는 모두 가족을 넘어 독립적인 생활을 꿈꾸는 개별적 존재이기도 하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계속 도전하며 나아간 한 어른의 역사는, 진정 인간이 자유와 책임을 다하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이민의 성패, '회복 탄력성'은 아닐까

피오렌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언어 장벽, 문화 차이, 친구의 부재로 인한 사회적 고립 등 이민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힘은 '회복탄력성'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과 이주는 실패와 도전의 연속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감정적으로 의지하고 진심 어린 관계를 쌓을 수 있는 인연을 찾는 것 역시 쉽지가 않다. 고국에서 쌓아온 모든 사회문화적, 사적인 자산들을 버리고 감정과 에너지, 시간을 들여 0부터 다시,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금 쌓아야 한다.

부딪히고 거절당하고, 또다시 도전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민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내가 평생 쌓아온 '회복탄력성'일지도 모른다.

멜번에서 만난 한 친구는 호주에 여행 왔다가 이민을 다짐하며 돌아가는 한국 친구들은 많지만, 정말로 이민을 실천과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은 적다고 했다. 언어 장벽, 사회적 관계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물론 언어 장벽, 문화 차이, 외로움으로 인한 힘듦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더라도, 매일 일상에서 회복탄력성을 쌓아 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것이 내겐 간절한만큼 누구나 이민의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으로 보였다.

어디에 살든, 이민은 자발적으로 내 삶을 재설계하는 길이다. 100여 년 전부터 수많은 한국인이 한국 밖에서의 삶을 선택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옮겨가지 않았나.
 
멜버른 Queen Victoria Market (퀸빅토리아마켓) 이민자가 모여 사는 호주에서는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멜번에서 가장 큰 시장 퀸빅토리아마켓의 한국 국기가 눈에 띈다.
멜버른 Queen Victoria Market (퀸빅토리아마켓)이민자가 모여 사는 호주에서는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멜번에서 가장 큰 시장 퀸빅토리아마켓의 한국 국기가 눈에 띈다. ⓒ 김도희
 
결국, 우리의 유전자 속에는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나가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 DNA가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는 저서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에서 21세기를 '유목민의 시대'로 규정한다. 더 나은 삶의 환경, 일자리, 정치적 망명 등 여러 이유로 인류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21세기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나고 자란 영토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문화나 이념, 종교 믿는 바에 따라 규정된다고 말한다.

타지 생활은 몸에 맞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호주에서 한국인 포함 다양한 이민자들을 만나면서, 나는 이렇게 이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어쩌면 자신의 본능과 DNA에 충실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은 선택의 문제이다. 그걸 두고 도망자라거나, 매국노라는 등 비난을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새로운 곳에서 겪을 수많은 좌절이 눈에 그려지더라도,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택해 떠난 전 세계 모든 유목민들이 대단한 것 아닐까. 이들에게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호주#이민#인터뷰#한국인의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스무 살까지 여권도 없던 극한의 모범생에서 4개국 거주, 36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영국인 남편과 함께 현재 대만에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해외 경험을 통해 '자기 성찰'의 기회를 많이 얻었습니다. 여행과 질문만이 내 세계를 확장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며, 글을 통해 해외에서 배운 점을 나눕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