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년 전 일이다. 3호선 안국역에 내려 1번 출구로 나서 윤보선길에 접어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풍문여고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학교는 어디로 가고... 그 자리에는 웬 박물관이 서 있었다. 이름하여 서울공예박물관.
 
서울공예박물관 예전 풍문여고 자리에 들어선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이다.
서울공예박물관예전 풍문여고 자리에 들어선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이다. ⓒ 전영선

알고 보니 건물은 2021년 7월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이었다. 그때 박물관에 들러 두루 살펴보며 느꼈던 놀라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각 건물의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아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뿐인가. 로비에 마련된 안내데스크와 휴게 의자, 수납장 등 시설물들이 하나같이 고급스럽고 독특해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것들은 모두 공예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건물 동선도 매우 효율적이라 인상에 남았다. 전시3동 3층에서부터 관람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흘러 흘러 전시1동 로비에 다다랐다. 이러한 흐름은 기존의 풍문여고 건물 5개를 리모델링하고 2개 동(전시1동과 안내동)을 덧대어 새로 지음으로써 가능해진 일이었다.  
 
서울공예박물관 안내도 서울공예박물관은 7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공예박물관 안내도서울공예박물관은 7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전영선
 
서울공예박물관을 알게 된 이후 지인들이 갈 만한 박물관을 추천해 달라고 말하면 언제나 서울공예박물관을 첫 손에 꼽는다. 쉴 곳도 많고, 구경거리도 많고, 풍경도 멋지고. 무엇 하나 나무랄 데가 없기 때문이다.
 
안내동에서 바라본 풍경 창을 가렸던 안내데스크가 이번에 가 보니 출입구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덕분에 마당 전체 풍경이 오롯이 눈에 들어온다.
안내동에서 바라본 풍경창을 가렸던 안내데스크가 이번에 가 보니 출입구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덕분에 마당 전체 풍경이 오롯이 눈에 들어온다. ⓒ 전영선

이곳을 지난 5일 막내와 함께 찾았다. 기획 전시 '장식 너머 발언'을 보기 위해서였다. 

'장식 너머 발언'은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현대장신구가 보여주는 다양한 형식 실험과 개념적 전위를 다루는 전시다. 참여 작가는 111명(팀). 작품은 신체와의 관계성을 탐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심상 속에 투영된 자연을 담는가 하면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시공간에 얽힌 담론을 표출한다.  

현대장신구(Contemporary Jewellery)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형성된 공예 장르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본격화했다. 현대장신구는 과거 부와 권력을 상징하거나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한 장식품이었던 장신구를 독립적인 예술품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장신구에 과감한 재료와 형식을 더하기도 하고 장신구에 예술적, 철학적,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다양한 시도를 하기도 한다.  
 
한국-오스트리아 현대장신구 교류전 "장식 너머 발언"(~7월 28일까지) 1부 '장신구 아방가르드' 전경이다.
한국-오스트리아 현대장신구 교류전 "장식 너머 발언"(~7월 28일까지)1부 '장신구 아방가르드' 전경이다. ⓒ 전영선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시도를 여지없이 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것도 장신구라고?' 할 만큼 파격적인 작품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반 클리프, 까르띠에와 같은 명품 장신구 전시를 예상한 관람객이라면 다소 당황하거나 실망할 수도 있을 듯하다. 
 
한국-오스트리아 현대장신구 교류전 "장식 너머 발언"(~7월 28일까지) 2부 '현대장신구의 오늘' 전경이다.
한국-오스트리아 현대장신구 교류전 "장식 너머 발언"(~7월 28일까지)2부 '현대장신구의 오늘' 전경이다. ⓒ 전영선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장신구 아방가르드', 2부는 '현대장신구의 오늘', 3부는 '현대장신구의 내일'. 

1부 '장신구 아방가르드'는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초기 현대장신구 작가들의 활동을 소개하는 장이다. 1970년대 오스트리아 장신구 작가들은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워 사회 정치적인 구조를 비판하며 과감한 퍼포먼스를 전개했다. 한편, 한국의 작가들은 '자연'과 '신체'를 주요 작업 대상으로 채택해 이를 은유적이면서도 상징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며 한국의 '주얼리 아방가르드'를 이끌었다. 

2부 '현대장신구의 오늘'은 신체, 자연, 서사를 소주제 삼아 한국과 오스트리아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장이다. 작가들은 장신구를 제작하면서 착용 실험을 넘어 젠더에 관한 담론의 장을 펼치는가 하면, 자연에 대한 반성적 태도와 숭고함을 표현하고 사회적 모순이나 고정관념을 지적하는 등 다양한 화두를 던진다. 

3부 '현대장신구의 내일'에서는 한국과 오스트리아 작가 10인을 통해 미래의 제작 환경을 고려한 작업방식과 태도를 살펴본다. 한국은 특유의 '유연함'으로 3D 제작기법, 플라스틱과 같은 산업 소재를 실험하는 등 최신의 기술과 재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반해 오스트리아는 다양한 재료를 기반으로 기존 생산방식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이나 현대사회의 현대장신구가 보여줄 수 있는 발언적 기능에 더 주목한다. 
 
김정후의 브로치 물방울(왼쪽부터 15, 28, 29, 4, 17) 시리즈와 '소나기 6'. 여기에서 숫자는 물방울의 개수다.
김정후의 브로치물방울(왼쪽부터 15, 28, 29, 4, 17) 시리즈와 '소나기 6'. 여기에서 숫자는 물방울의 개수다. ⓒ 전영선
 
1부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은 김정후의 물방울 시리즈였다. 인체를 활용한 디자인이 시선을 끌었다. 김정후 작가는 현대장신구가 생소한 우리나라에 이를 알리고자 노력한 작가이자 교육자로서, 국제공모전에서 3차례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8개국 21개처 미술관에 50여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작가라고 한다. 

2부에서는 파울라.파울의 '랩_어라운드' 시리즈가 눈길을 끌었다. 이 작품은 신체를 키워드로 삼은 작품 중 하나로 '착용'에 대한 개념을 실험했다. 
 
파울라.파울 '랩_어라운드' 시리즈 장신구가 가지는 '착용'의 개념을 실험한 작품이다.
파울라.파울 '랩_어라운드' 시리즈장신구가 가지는 '착용'의 개념을 실험한 작품이다. ⓒ 전영선
 
2부 중 자연을 키워드로 삼은 작품에서는 공새롬 작가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버들강아지를 표현한 작품은 쌀알을 장신구 재료로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공새롬 '버들강아지' 쌀알을 재료로 삼아 장신구를 만들었다.
공새롬 '버들강아지'쌀알을 재료로 삼아 장신구를 만들었다. ⓒ 전영선
 
3부에서는 윤덕노의 반지가 눈길을 끌었다. 손가락에 끼워 작동이 가능하도록 만든 반지는 날개 때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기를 연상케 했다. 
 
윤덕노의 반지 시리즈 날개를 단 반지들은 손에 끼워 작동하게 할 수 있다. 3부(현대장신구의 내일)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이다.
윤덕노의 반지 시리즈날개를 단 반지들은 손에 끼워 작동하게 할 수 있다. 3부(현대장신구의 내일)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이다. ⓒ 전영선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은 모두 675점이다. 1892년 한국과 오스트리아가 수교를 맺은 이래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무더운 이 여름,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는 공예박물관과 함께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이채로운 장신구 세계에 풍덩 빠져보기를 권한다.

전시는 7월 28일까지, 관람료는 무료다. 관람시간은 평일과 주말 모두 10시~18시, 금요일은 오후 9시까지다.

#서울공예박물관#기획전시실#장식너머발언#한국오스트리아현대장신구교류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무해하고 아름다운 나무 같은 사람이기를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