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04 13:30최종 업데이트 24.07.0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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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31일 오전 로얄호텔서울에서 열린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에서 공청회를 규탄하는 개인 및 단체 관계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책 <돌봄의 사회학>(오월의봄)에서 '돌봄의 연쇄'라는 표현을 쓴다. 기회비용의 문제 때문에 맞벌이 부부는 상대적으로 돈을 덜 버는 여성이 일자리를 포기한다. 기회비용의 문제는 세계화의 물결에 따라 다른 국가로 이전된다. 한국인 여성보다는 기회비용이 낮은 외국인 여성이 존재하고, 거부할 수 없는 세계화 물결에 따라 가사는 '아웃소싱'된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부결...그러나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지난 2일 2025년도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적용은 격론 끝에 부결됐다. 사용자 위원들이 한식 음식점업, 외국식 음식점업, 기타 간이 음식점업, 택시 운송업 등에 최저임금 구분 적용을 요구했으나 표결 끝 찬성 11표, 반대 15표, 무효 1표로 무산됐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해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가 격돌하는 이슈지만, 올해는 돌봄 부문을 놓고 논의가 더욱 뜨거웠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이 공개한 '가구들의 돌봄 서비스 부담을 덜기 위해 돌봄 분야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내용의 보고서가 논의에 불을 지폈다. 노동계의 반발로 결국 경영계가 제안한 차등적용 업종에 돌봄 서비스가 포함되지는 않았고, 최저임금 차등적용 자체도 부결됐다. 그러나 정부가 저출생 대책으로 내년 상반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계획을 확정한 마당에, 가사‧돌봄 분야 최저임금을 둘러싼 여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오랜 세월 가사노동에 있어서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실존해 왔다. 근로기준법이 제정되고도 68년 동안 가사노동자는 '가사(家事) 사용인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아니한다'라는 한 줄 문구 때문에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다 2022년부터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되면서 고용노동부 인증기관에 고용된 경우 최저임금 및 4대보험 등을 적용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물론 법이 시행된 지 2년을 넘긴 지금에도 가사근로자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는 1500여 명에 불과해 전체 가사노동자(11만 4000명 추산)의 1% 수준이다. 개인 간 사적 고용에 해당하는 가사 사용인이 절대다수다. 이 정도면 가사노동자라는 직업 자체가 여전히 '최저임금' 바깥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부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계획을 발표하며 이러한 의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지난달 19일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1200명의 고용허가(E-9) 비자를 가진 외국인 돌봄 인력 도입 계획을 확정했다. 5000명 규모로 유학생 또는 외국인 노동자의 배우자가 가사 사용인으로 일할 수 있게 정책도 같이 내놨다. 전자는 노동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인증기관에 소속돼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만, 후자는 사적 고용에 해당돼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못한다. 정부가 나서서 최저임금 사각지대의 길을 연 셈이다.

고용노동부는 시장 논리에 따라 가사 사용인도 최저임금 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에서 한 발언을 상기해 보면 '최저임금 적용을 피할 수 있는 값싼 노동력'을 염두에 둔 결정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맞벌이 부부의 육아 부담을 언급하며 "외국인 유학생과 결혼 이민자 가족들을 가사‧돌봄노동에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최저임금 제한을 받지 않는 유연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뿐 아니라 지역별 차등까지 '전향적인 검토'를 주장한 바 있다. 오는 9월로 다가온 서울시의 필리핀 가사노동자 시범 사업도 하기 전에 사업 계획을 확대하는 양상을 보면, 정부가 얼마나 이 사업에 '진심'인가를 알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 차별이자 돌봄 폄훼
 

한국YWCA연합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사)한국가사노동자협회,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주최로 지난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제13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없이는 사회정의도 없다-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지난해 유엔에서 10월 29일을 '국제 돌봄의 날'로 정하고, 현재 열리고 있는 ILO총회에서 '돌봄경제와 양질의 일자리'를 주제로 토론이 진행되는 등 전세계적으로 돌봄의 중요성이 공론화되고 있다"며 "그러나 한국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최저임금 차별 발언, 가정내 돌봄과 시설돌봄을 막론하고 모든 돌봄서비스에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한국은행 보고서, '가사서비스 구분적용을 논의해야 한다'는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의 모두발언 등의 주장이 나오며 이에 역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이정민

 
그러나 이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자 정부의 정책 기조인 '돌봄의 사회화'도 거스르는 행위다. 늘 해오던 돌봄 노동에 대한 폄훼를 반복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것을 '양육비용 절감'이 아니라 '가정 내 돌봄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이자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읽습니다. 날로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가사‧돌봄노동에 대한 무시이자 여성노동에 대한 차별이라고 읽습니다."

지난 2일 여성노동연대회의 등이 연 '정부 저출생 대책 비판' 기자회견에서 송미령 가사‧돌봄유니온 사무국장이 한 발언이야말로 외국인 가사노동자 정책에 관한 촌철살인이다.

돌봄 노동에 대한 무시는 문제의 한국은행 보고서에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보고서에서는 돌봄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돌봄업종의 최저임금을 낮게 책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저생산성 부문에 내국인 노동력이 몰리는 것은 경제 전체의 자원 배분 측면에서도 효율적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논지를 편다. 돌봄노동을 두고 '저생산 노동'이라고 콕 집어 말한 것이다.

돌봄노동이 저생산 노동인데는 돌봄노동을 폄훼하는 가장 강력한 주체인 국가의 잘못이 크다. 가사와 돌봄은 국내총생산(GDP)에도 계상되지 않는 노동이며, 부가가치를 측정하기 어려운 돌봄의 특성이 폄훼를 용이하게 한다.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2일 정부 저출생 대책 비판 기자회견에서 "근로자가 받는 임금이 곧 서비스의 생산성을 뜻하는데 돌봄의 생산성이 낮다고 평가되는 것은 돌봄 노동에 책정된 임금이 낮기 때문"이라며 "재정이 투입되는 돌봄 일자리의 수가를 결정하는 것은 국가이므로 돌봄의 낮은 생산성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국가가 나서 돌봄의 노동값을 낮게 매기는 풍토가 돌봄의 '저생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얘기다.

'여성화된 돌봄의 이주화' 앞에서 우리는

사망자 23명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가 18명이었던 경기 화성의 리튬전지 공장 화재를 두고 '위험의 이주화'라고들 한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여성화된 돌봄의 이주화'다. 전적으로 여성의 몫으로 치부해 온 돌봄을 내국인 여성에게서 외국인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20여년 전 지즈코 교수는 여성들의 노동 참여가 증가함에 따라 남성들의 가사 노동이 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현상을 분석해 "'남성의 가사'는 로봇화나 아웃소싱으로 대체될 개연성이 높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돌봄노동이 여성에게서 여성으로 전가되는 사이 남성의 책임은 쏙 사라졌다.

돌봄은 여성의 일이었고, 여성의 일이어서 더욱 쉽게 폄훼돼 왔다. 늘 돌봄은 노동권 바깥의 사각지대였는데,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도입으로 '차등적용'이 단계별로 강화될 지경에 이르렀다. 노동권 침해로 인한 외국인 노동자 18명의 사망을 눈앞에서 목도하면서도, 별다른 대책 없이 해외 인력 도입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는 정부의 발상이 무섭다.

"왜 인간의 생명을 낳아 기르고, 죽음 이전의 인간을 돌보는 노동, 즉 재생산노동은 여타의 모든 노동의 아래에 놓이고 마는가?"

우에노 지즈코 교수의 질문은, 다시 보니 질문이 아니라 개탄이었다. 자꾸 아래로 내몰기 때문에 아래에 놓이는 것이며, 여기서 끌어내리는 '손'은 주로 정부다. 돌봄노동을 더욱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시도 앞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더욱 단결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학 - 당사자 주권의 복지사회로

우에노 지즈코 (지은이), 조승미, 이혜진, 공영주 (옮긴이), 오월의봄(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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