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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서두른 덕분에 병원 검사가 일찍 끝났다. 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고민하며 병원을 나서는데 햇빛이 쨍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얼굴과 목덜미에 닿는 햇빛이 뜨거웠다. 얼굴에 생긴 잡티가 더 진해질까 걱정스러워서 택시 승강장으로 갔다.

평소 그렇게 자주 보이던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모자도 양산도 없어서 손으로 햇볕을 가리며 철벽 방어하고 있었다. 길을 건너려고 반대쪽 차도를 보았다. 그런데, 허리가 90도로 굽은 할아버지가 손수레를 끌고 위험하게 차도를 지나가고 계셨다. 손수레에는 차곡차곡 펴진 박스가 잔뜩 쌓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허리를 곧게 펴시더라도 키보다 더 높을 높이였다.

할아버지 모습은 직각 모양의 자 같았다. 마치 할아버지 세상이 아스팔트 바닥에 깔려있는 거 같이 바닥만 보고 걸으셨다. 도로의 차들은 할아버지를 피해 서행하고 있었다. 나는 길 건너편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마음은 조마조마했지만, 다가갈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택시를 기다리던 내가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할아버지를 보며 문득 비슷한 연세의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 할머니는 도서관 수업에서 알게 된 분이다. 가장 연장자이신데 지각 한 번 없이 출석하신다. 항상 바른 자세로 수업에 참여하시며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두 분의 삶은 너무나도 달랐다. 왜 같은 나이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른 삶을 살고 계시는 걸까. 개인의 환경, 선택과 노력이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사회적 지원과 환경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할아버지의 삶을 잠시 상상해 봤다. 매일 손수레를 끌고 다니시며 얼마나 힘든 하루를 보내실까?

폐지 줍는 생활을 다룬 남형도 기자의 기사 '폐지 165kg을 주워 1만 원 벌었다' 가 생각났다. 잘나가던 주방장이던 이가 뇌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빨리 발견되지 못해 타이밍을 놓쳤고 후유증이 남았다. 왼쪽 몸이 불편해졌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었지만, 정부 지원금으로는 두 자녀를 키울 수가 없었다. 폐지를 줍게 된 이유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손수레를 끌다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허리 뼈가 골절되었다. 치료 후에도 허리 통증이 남았지만 여전히 폐지를 줍고 있다.
 
그가 폐지를 줍는 건, 그의 잘못이 아니라 정말 우연히 그렇게 됐다는 것. 인생이란 게 얄궂어서 누구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이들을 외계에 사는, 별나라 사람쯤으로 볼 게 아니라 이웃으로 보면 좋겠다는 것, 관심을 두는 것만으로 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출처: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신이어마켙 화면 캡처
 신이어마켙 화면 캡처
ⓒ 신이어마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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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어마켙이라는 사회적 기업이 있다. 심현보 대표는 친할머니가 폐지 줍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용돈벌이로 하신 일이지만, 주변에는 폐지를 줍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형편의 어르신들도 계셨고, 이분들이 좀 더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창업을 하게 되었다.

이 회사는 젊은 직원이 문구류를 기획하면 할머니들이 글씨 쓰고 그림을 그려서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일을 한다. 2030세대에게는 시니어의 이야기를 전하고 시니어에게는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여 청년과 노년이 함께 하는 브랜드를 꿈꾼다고 한다. 이미 스킨푸드나 CU 같은 기업 외 여러 곳과 협업하여 상품을 출시 중이다.

한 개인의 힘이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감탄스럽다. 한편으로는 사회가 나서야 되는 일을 개인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하다. 정부와 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 같은 분들을 위해서는 어떤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할까? 노인 복지 제도를 강화하고, 지역 사회에서 이들을 돕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택시가 도착했을 때, 나는 할아버지를 돕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떠났다. 씁쓸한 마음이 남은 채로.

내일이 아닌 거 같지만 우리는 어쩌면 모두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 작은 관심과 배려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손수레를 밀어 드릴 용기는 없다.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을까, 괜한 오지랖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렵다. 누군가에게 손 내미는 일이.

하지만 신이어마켙 할머니들이 만드신 문구류를 구입하는 정도는 얼마든 할 수 있는 일이다. 더 많은 사회적 기업이 생겨나고, 사람들이 이런 기업을 지지한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만 올렸습니다.


태그:#폐지줍는할아버지, #남기자의체헐리즘, #신이어마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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