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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공
 농구공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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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기업 생산직 준비하려고요, 그게 마음이 편하잖아요."

지방에 있는 한 대학의 농구선수로 활동한 김윤수(가명)씨는 지난해 대학 졸업 직전 트레이너 준비를 포기하고 잠시 한 자동차 회사 대리점의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퇴직했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운동과 관련 없는 분야를 염두에 두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윤수씨도 중학생 때에는 지역 언론에 소개됐을 만큼 유망주였고, 다른 선수들처럼 프로가 되는 것을 꿈꿨다. 하지만 그는 진학할 대학이 정해졌을 때부터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을 어느 정도 단념했다. 일말의 희망을 보고 선수 생활을 계속했지만, 더 이상 프로에 갈 수 없다고 판단해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농구공을 놓았다.

윤수씨처럼 많은 학생선수들이 대학 시절에 은퇴를 결정한다. 대한체육회의 스포츠지원포털에 등록된 대학부 선수 현황을 살펴보면, 매년 5000여 명 정도가 대학선수로서 학교에 입학하지만, 2학년이 되면 4000여 명만이 선수로 등록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줄어 3학년이 되면 2500여 명, 4학년의 경우 2000여 명만이 대학선수로서 활동한다. 즉,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전체의 절반이 넘는 학생선수가 은퇴하는 셈이다. 그들은 은퇴 후 어떤 대학 생활을 하고 있을까?

운동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22-24년도 스포츠지원포털 대학부 등록선수 학년별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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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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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생활을 그만둔 후 윤수씨가 선택한 진로는 농구 코치였다.

"사실 어렴풋이 프로에 진출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할 때부터 농구 코치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선수 시절 쌓은 주위 인맥을 통해 관련 정보도 쉽게 알 수 있었고요."

그는 코치가 되기 위해 스포츠지도자 자격증을 준비하고, 모 프로농구 구단의 유소년 코치로 잠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오며 다시 바라본 농구 코치라는 직업의 미래는 어두웠다. 대다수 코치가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여 있었고, 학교나 프로구단의 코치 같은 안정적인 직장은 그 문턱이 너무나 좁았다. 그렇게 윤수씨는 농구판에서 완전히 떠나기로 결심했다.
      
다음으로 그가 선택한 진로는 트레이너였다.

"뭘 할지 모르겠는 막연한 상황에서 그저 전공 수업 시간에 주워듣고, 그래도 운동한 경험이 있으니까 그걸 믿고 준비했던 것 같아요."

트레이너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주위의 도움이나 조언은 없었다. 결국, 얼마 안 가 그는 트레이너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을 깨닫고 영업사원 일을 시작했다.

이미 벌어진 일반학생과의 차이

학생선수가 은퇴 후 운동 외의 분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일반 학생들처럼 학업과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공부해 온 일반 학생들과 은퇴 직후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학생선수들의 차이는 컸다. 윤수씨는 은퇴 후 공부하는 방법을 아예 몰라 학점 취득에 어려움을 겪은 경험을 토로하며 "우리들과 달리 고등학교 때 의무적으로 수업을 다 듣고 온 후배들이 확실히 학점을 잘 따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훈련으로 인해 수업 외에는 다른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없는 대학 생활을 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윤수씨는 "훈련 일정과 코치와 동료들로부터의 눈치 때문에 동아리 같은 다른 활동들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며 심지어 "훈련 일정 때문에 특정 시간에는 수강 신청도 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수업 내용의 보장마저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윤수씨는 선수 시절 훈련과 대회 참여로 인한 수업 공백에 대한 자료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몇몇 교수는 선수들도 학생 신분임을 강조하며 공결 처리를 해주지 않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윤수씨의 은퇴를 비난한 농구부 담당 교수는 본인의 수업에서 실습 결과가 좋았음에도 낮은 성적을 주기도 했다고. 

멀기만 한 지원 프로그램

진로 고민 해결을 위한 도움의 손길도 부족했다. 윤수씨는 현재까지 진로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없다. 그는 "그러한 프로그램들이 있다는 것 정도만 들어 봤고,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직접 프로그램을 찾아서 신청해야 했던 것으로 안다"며 "은퇴 뒤 대학교 1, 2학년 선수들 대상으로 방문 프로그램이 생기는 등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 공고 수준에 가깝고, 대부분 코치, 트레이너 등 대부분 운동 분야로의 진로만 다루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현재 학생 은퇴선수를 위한 학사관리 및 진로 지원 프로그램은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한국의 대학스포츠를 총괄하는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이하"KUSF")에서는 '대학선수 튜터링 프로그램 두드림'이라는 학생교류 학사관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2023년 현재 KUSF 135개 회원대학 중 단 28개 대학만이 참여하고 있다. 프로그램 시행 4년차임에도 불구하고 회원대학의 20%만이 참여하는 저조한 상황이다.

또한 <스포츠두드림>이라는 동명의 학생선수 진로·취업 가이드북을 발간하고 'U-스포츠마케팅러너'라는 진로 탐색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두 프로그램 모두 스포츠 분야에만 편중된 진로들을 집중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대한체육회에서 운영하는 진로지원센터의 프로그램들은 비교적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을 염두에 두고 운영하고 있으나, 방문 프로그램의 경우는 대부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학생선수와 은퇴선수를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교육은 부족한 상황이다.

윤수씨는 학창 시절 운동을 그만둔 사람들이 서로 모일 때마다 항상 "평생 운동만 하다가 갑자기 직업을 정하라고 하면, 이미 다른 학생들과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현행 KUSF 내 '대학스포츠 운영 규정'에는 학생선수의 학습권을 위해 다양한 학습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의 지원 프로그램들은 그들의 학습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고, 체육 분야로만 은퇴선수들의 진로를 한정하고 있어 윤수씨처럼 다른 분야로 진로를 변경하는 선수들에 대한 안전망은 사실상 없는 실정이다.

마지막으로 윤수씨에게 앞으로 학생선수를 위한 프로그램들이 어떻게 바뀌면 좋을지 물었다.

"만약 저처럼 은퇴하는 선수들에게 강사들이 와서 교육을 한다면, 운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좋겠어요. 다른 대학에서 다른 공부를 해도 된다든지, 아니면 대학 말고도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든지 말이에요 그렇다면 제가 이렇게 돌아오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태그:#학생선수, #은퇴선수,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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