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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같이 은퇴한 선생님이 있다. 은퇴 후,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나서 문화 생활을 하자고 의기투합했다. 만나 차 마시고 노는 것도 좋지만 좋은 영화라도 한 편 보고 밥 먹고 힐링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자고 해서 매월 셋째 주 월요일을 문화의 날로 정했다.

그동안 4편의 영화를 봤고 물론 사이사이 그림 전시장도 두 번 갔다. 요즘 날이 좋고 계절의 흐름이 다채로운데 실내에서만 움직이는 게 아쉬워 서울 투어를 계획했다.

사당에서 만나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내렸다. 우리의 목표는 골목길을 걷다가 <공예 박물관>에 들어가 보고 근처에 있는 <세계장신구 박물관>을 찾아보는 거였다. <공예 박물관>을 가려 했으나 월요일이 휴관이어서 좌절.

골목길의 정취를 누리며 이리저리 걷다가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바람길을 발견해 이마에 솟은 땀을 말렸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에 정독도서관이 보였고 그 위쪽에 <세계장신구 박물관>이 있었다.
 
장신구 박물관 입구
▲ 장신구 박물관 입구 장신구 박물관 입구
ⓒ 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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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장신구 박물관>이 있어서 들어가려 했으나 난관이 있었다. 예약된 손님만 받는다고 하고 입구로 보이는 철문은 닫혀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뭐라도 보고 가야 한다는 마음이 솟구쳐 안내문에 있는 번호로 전화했다. 지금 입구에 와 있지만 예약은 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리니 조금 후에 문이 열렸다.

외관상으로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2004년에 개관했고 2013년에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움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대 박물관'으로 2015년에는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영국의 왕실박물관과 함께 '죽기 전에 봐야 할 세계 5대 박물관'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총 4층으로 된 박물관은 1층부터 테마별로 장신구가 진열되어 있었다. 총 9개의 테마별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는데 5천만 년 이상 지구의 결을 담고 있는 호박 벽, 16세기 유럽 사람들을 감동하게 했던 '엘도라도 황금의 방', 마음의 결을 가다듬어 주는 '십자가 방', 명상에 들게 하는 '마스크 벽'과 '근대 장신구의 방'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호박을 수집해 전시한 곳
▲ 호박이 걸린 벽 호박을 수집해 전시한 곳
ⓒ 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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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테마를 감상하면서 느낀 것은 어떻게 이걸 한 사람이 다 모을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관장님이 외교관 부인이면서 수필도 쓰시는 분(이강원)이라는데 장신구를 수집할 당시 우리나라의 환경은 너무 열악하고 가난한 나라여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았다.

먹고 살기 어려운 나라이기에 장신구가 단순한 사치품으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그런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의미 있는 장신구를 수집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그럼에도 다양한 작품이 많이 진열되어 있어 일단 눈이 즐겁고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조목조목 자세하게 설명해주시는 분(나중에 알고 보니 관장님의 따님이셨다)이 계셔서 이해가 쉬웠다.
 
다양한 형태의 마스크들이 걸려 있다.
▲ 마스크가 있는 전시장 다양한 형태의 마스크들이 걸려 있다.
ⓒ 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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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하면 이렇게 작품을 해설해 주신다고 하니 왜 예약을 해야 하는지도 수긍이 되었다. 장신구라는 게 미적인 효용도 있지만 몸을 지키는 부적의 의미도 되고 부모가 시집 가는 딸에게 평안한 삶을 기원하는 기능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십자가의 방'에서 특이한 것은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가문마다 다 다르게 십자가를 만들었다고 하니 각각의 모양을 보는 것도 흥미롭고 문양에 담긴 상상력과 기원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다.

맨 꼭대기 층에는 교육을 겸한 세미나실 비슷한 공간이 있었다. 북촌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공간에 장신구를 착용한 명화들이 걸려 있었다. 평소엔 그림만 보였는데 이제는 인물이 착용한 장신구가 눈에 들어오니 이 전시를 본 효과가 아닌가 싶다.
 
높은 계급의 자녀가 하는 장신구. 유리를 깎아 만든 것으로 정교하고 화려하다.
▲ 장신구 높은 계급의 자녀가 하는 장신구. 유리를 깎아 만든 것으로 정교하고 화려하다.
ⓒ 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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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는 지금 전시되지 않은 작품들을 가져와 새롭게 전시하신다고 한다. 처음에 입구가 철문이어서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박물관을 다 돌고 나서 이렇게 귀중한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당연히 철문이어야 한다고 친구와 의견일치를 보았다. 외국인도 일부러 꼭 집어 찾아오는 곳,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시각이 확대되는 곳, 장신구의 의미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곳 <세계장신구 박물관>이었다.

한 동네의 수준을 알기 위해 그곳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같은 문화 시설의 숫자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북촌은 그런 점에서 문화의 본거지가 아닌가 싶다. 골목마다 갤러리와 전시관이 있어 발품만 팔면 얼마든지 문화 향유에 동참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닌가.

아름다움이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에 의해 발견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보는 눈. 발견하는 눈이 얼마나 귀한 건지 다시금 느끼는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페이스 북에 올림.


태그:#세계장신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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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얻게 된 자유로운 시간을 일상의 변화를 통해 새롭게 조각해 가는 초보 은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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