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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의 시간이 돌아왔다. 최저임금위원회는 5월 21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2025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논의를 본격화했다. 최저임금제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을 목적으로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임금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최저임금이 본래의 취지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저임금을 받아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최저임금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노인돌봄, 마트, 학교비정규직, 콜센터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를 만나 일과 생활, 노후(미래) 준비, 최저임금의 적절성, 본인의 노동가치에 대한 보상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올해 최저임금이 2.5% 올랐지만 물가 폭등으로 실질임금이 하락해 생활이 점점 어려워진다고 하소연했다. 일상생활에서 포기하는 것도 많았다. 이들이 숨통을 좀 트고 살아가려면 최저임금은 어떻게 결정돼야 할까. 실제 물가 인상률을 반영하고 가구 생계비를 기준으로 생활임금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삶의 이야기를 통해 최저임금이 갖는 의미를 짚는다.[편집자말]
마트 노동자 홍민영씨(가명, 54)는 A대형마트 조리 코너에서 일하고 있다.
▲ 28년 경력의 마트노동자 홍민영씨. 마트 노동자 홍민영씨(가명, 54)는 A대형마트 조리 코너에서 일하고 있다.
ⓒ 서비스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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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암이 발병했지만 일손을 놓지 못하는 홍민영(가명, 54)씨는 28년차 마트노동자다. 협력업체 사원으로 18년을 일하고 나서 대형마트 정규직으로 다시 입사해 10년을 일하고 있다. 민영씨는 대형마트 정규직이 됐을 때 기대가 컸다. 좀 더 나은 임금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는 곧 실망으로 다가왔다.

민영씨의 임금은 협력회사 직원일 때도, 대형마트 정규직이 돼서도 언제나 최저임금이었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임금의 최저 하한선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최저임금은 작은 회사에서도, 대형마트와 같은 대기업에서도 노동자들에게 '최고임금'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자신의 최고임금이 돼버려 28년째 최저임금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는 어떤 바람이 있을까?

28년 전도, 지금도 최저임금인 마트노동자

올해 54세인 민영씨는 올 가을 결혼할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이혼 후 딸이 세 살 때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그 딸이 벌써 31세나 됐다. 민영씨는 대형마트의 즉석 음식을 만드는 조리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주된 업무는 초밥을 싸는 것과 닭을 튀기는 것. 평일에는 혼자서 초밥 120인분과 닭 30여 마리를 튀긴다. 주말에는 동료와 함께 초밥 240인분을 싼다. 그리고 닭은 혼자서 100마리를 넘게 튀겨내야 일을 마무리 할 수 있다.

"손가락 뼈 마디 마디가 쑤실 만큼 쉴 틈 없이 초밥에 회를 올리고, 뿌연 기름 연기 속에서 닭을 튀겨야 해요. 하루종일 이렇게 일하고 퇴근하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온몸이 녹초가 돼요."

28년간 회사와 부서는 바뀌었지만 그의 일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된 작업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고되게 일하지만 그의 임금은 28년 전이나 지금이나 최저임금에 머물러 있다. 민영씨와 같은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올해 결정되는 2025년 최저임금이 바로 자신의 2025년 임금과 같다.
 
지난 5월 16일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최저임금 서비스노동자 장보기 기자회견에 참석한 마트노동자가 발언하고 있다.
▲ 최저임금 서비스노동자 장보기 기자회견 지난 5월 16일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최저임금 서비스노동자 장보기 기자회견에 참석한 마트노동자가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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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암 발병... 그러나 일을 쉴 수 없어요"

28년 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월세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싼 전세를 찾아 살기 시작했다. 싼 전세는 다 이유가 있었다. 단열이 전혀 되지 않는 집은, 여름엔 펄펄 끓었고 겨울엔 너무 추웠다. 여름은 선풍기로 버티며 살았지만 겨울은 어린 딸과 함께 살기엔 혹독한 환경이었다. 민영씨가 받는 최저임금으로는 난방비를 감당히기 어려웠다.

당시 엄마와 조카까지 돌봐야 했던 그는 결국 전세를 포기하고 조금 더 환경이 나은 월세로 이사해야 했다. 그러나 매달 내야 하는 월세와 관리비, 공과금, 식비 등 가족들의 생계비를 온전히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쉬는 날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남들 다 쉬는 주말엔 마트에서 일하고, 모처럼 쉬는 평일엔 파출부 같은 일당제 아르바이트를 찾아 일해야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었어요."

이마저도 5년 전부터는 할 수 없는 몸이 됐다. 갑작스럽게 암이 발병했기 때문이다.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가장으로서 민영씨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항암치료의 약물 부작용으로 온몸 이곳 저곳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 왔지만 민영씨는 일손을 놓을 수 없었다. 한 달 벌어 한 달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그에게 오랜 시간의 휴식은, 먼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더이상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었던 민영씨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아끼고 또 아끼는 방법' 밖엔 없었다. 하지만 항암치료로 이곳 저곳에 부작용이 발생했고 생각지도 못한 병원비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월세와 관리비, 이 두 가지만으로도 월급에 1/4이 나가요. 그런데 갑작스런 병에, 병원비까지..."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식비와 공과금 등을 내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저축, 노후 준비, 이런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서비스노동자들이 지난 6월 5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최저임금 복면가왕’ 행사를 열고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게시했다.
▲ 최저임금 인상! 서비스노동자들이 지난 6월 5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최저임금 복면가왕’ 행사를 열고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게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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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바람은 태어날 손주 보험료를 대신 내주는 것"

28년간 쉼 없이 일했지만 금전적 여유없이 늘 빠듯한 삶을 살아온 민영씨. 딸은 올가을 결혼을 한다. 민영씨는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생활비를 보태며 자신의 미래를 혼자 준비해온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결혼 준비조차 혼자 하는 딸이, 자신에게 돈을 쓰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마음이 아파요."

"예전처럼 쉬는 날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는 몸이라면 지금 당장 빚을 내서라도 딸에게 결혼 자금도 좀 보태주고, 필요할 때 쓰라고 비자금도 쥐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는 그. 당장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현실에, 자신을 자책하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민영씨는 최저임금 인상을 간절히 바란다.

"최저임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저와 같은 사람들은 언제까지 가족들에게 미안해하고 슬퍼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최저임금 노동자라고 그냥 딱 숨만 쉬고 살아갈 만큼만 받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정말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엄마 구실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을 만큼이라도, 이번엔 최저임금이 오르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어 민영씨는 작은 바람을 전했다.

"딸에게 결혼 비용도 해주지 못 하는, 나중에 필요할 때 쓰라고 작은 여윳돈도 못 주는 못난 엄마로 살아가는 제게도 아직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내년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겨, 딸이 곧 나을 손주에게 좋은 아기 보험을 들어 주는 것입니다. 제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해 아기 보험 대신 내주는 엄마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구실 조금이라도 하며 살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현실이 될 수 있게, 최저임금이 오르길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전수찬 기자는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정책국장입니다. 이 기사는 <노동과 세계>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최저임금인상, #서비스연맹, #마트노동자, #생활임금보장, #최저임금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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