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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하나쯤 있는 망가진 우산
 집에 하나쯤 있는 망가진 우산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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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은 자주 고장 난다. 그에 비해서 고치기는 어렵다. 고장이라 해도 유리가 깨지듯 완전히 기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버리기도 애매하다. 그래서일까 4인 가구인 우리 집 우산보관함은 비좁다. 애들이 학교에서 받아온 우산, 놀이동산에서 갑자기 비 와서 구입한 우산이 마구 뒤섞여 있다. 그런데 급하다고 아무 우산이나 들고 나서면 낭패를 본다. 고장 난 우산이 함정처럼 숨어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우산 손잡이가 망가진 것을 모르고 용감하게 밖을 나서다 비를 쫄딱 맞았다. 손잡이와 분리된 우산 본체는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고장 난 우산을 걸러내지 않은 게으름의 대가였다. 이참에 우산을 싹 정리하기로 했다. 

우산을 어떻게 버리더라?

두 아이와 함께 모든 우산을 꺼내 펼쳤다. 손잡이는 멀쩡한지, 프레임이 망가진 것은 없는지, 천이 찢어진 곳은 없는지 살폈다. 역시나 크고 작은 결함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파손 정도가 크지 않으면 그냥 쓰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폐기 처분을 받은 우산은 두 개. 모두 5년 이상 사용했고 길이가 긴 장우산이었다. 

"아빠, 우산은 어디다 버려?"

막상 우산을 처분하려니 막막했다. 20리터 종량제 봉투에 넣기에는 우산이 너무 길었다. 반으로 접어볼까 궁리해 봤지만 무리였다. 우선 우산의 뼈대 부분이 금속이라 깔끔하게 접는 것이 불가능했다. 힘으로 꾹꾹 눌러 억지로 접는다고 해도 날카로워 위험요소가 있다. 급기야 종량제 봉투가 찢어질 수도 있고. 

도대체 다른 사람은 우산을 어떻게 버리는 거지? 급히 인터넷 검색을 돌렸다. 과연 우산은 폐기 방식이 정해져 있었다. 휴대용으로 나오는 짧은 우산은 종량제 봉투에 버려도 무방하다. 그러나 우리 집처럼 장우산의 경우 대형폐기물 수거 신고를 하거나 재료를 분할하여 분리배출을 해야 했다.

이런 사정이니 집집마다 고장 난 우산이 방치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오히려 좋은 기회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건을 잘 떠나보내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기회.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우산 해체 작업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우산 해체 작업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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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우리 집에서는 새 물건을 살 때 신중하자는 철학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초등교사라는 직업병이 작용해서 자녀에게도 엄격한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요즘 세상이 너무 쉽게 물건을 사고 버리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원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기분이 들어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진다. 그래서 가급적 튼튼한 물건을 고쳐 오래 쓰자는 살림 방향을 가지고 있다. 

그간 나는 '소비'를 줄이는 데 집중해 왔다. 아이를 중고 거래 현장에 데려가거나, 가계부를 매일 수기로 적었다. 반면 물건의 폐기나 버리는 영역에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 안 쓰는 물건은 중고로 얼른 처분하는 게 속 편하다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매일 분리수거와 음식물 쓰레기 정리를 하면서도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동참시키지 않았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 3학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나중에 천천히 해도 된다고 여겼다. 간단한 플라스틱, 금속, 종이류 구분은 하게 하지만 분리수거장에서 직접 배출까지 시키지는 않았다. 여름철 음식물 쓰레기 냄새를 맡아가며 부담을 지우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생활용품인 '우산'조차 제대로 버리는 법을 몰랐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나는 두 딸과 우산을 버리는 방법을 연습하기로 했다.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대형폐기물 신고와 재료별 해체. 편리함만 고려하면 대형폐기물 신고가 간단하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분리수거장 옆에 두면 알아서 가져간다. 그렇지만 자원 순환 면에서는 재료별 해체가 유리하다. 그래서 우리는 큰 결심으로 우산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우산을 해체하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두꺼운 목장갑과 튼튼한 가위 그리고 끈이 필요했다. 아치모양을 이루고 있는 프레임에서 천을 떼어내는 작업부터 들어갔다. 복잡하지는 않았으나 금속에 탄성이 있어 힘을 주어야 했다. 하나씩 떼어내자 가죽처럼 천이 벗겨졌다. 천 끝부분에 달린 금속 팁을 제거하는 역할은 어린이들이 맡았다. 가위로 싹둑싹둑.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살대와 천을 고정하는 실이 중간마다 묶여있다. 잊지 말고 하나씩 제거해야 한다. 세 사람이 붙어서 작업을 하니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만일 혼자였다면 분명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기둥 부분에 단단히 고정된 천은 전지용 가위를 이용해 내가 직접 잘랐다. 손이 작고 약한 1학년 아이가 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천이 완전히 떨어져 나간 우산은 뼈만 남은 인체 모형 같았다. 

마지막으로 손잡이를 비롯해 각종 플라스틱과 스펀지를 분리했다. 금속으로 된 기둥과 살대는 끈으로 묶었다. 그렇지 않으면 벌어져서 사람이 다칠 가능성도 있었다. 해체된 우산은 굉장히 낯설었다. 물건을 만드는 데 이렇게나 다양한 재료와 기술이 들어간다는 실감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생활용품 하나 버리는 거 치고 꽤나 거창한 작업이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매립지에 통째로 묻힐 뻔한 쓰레기를 구했다고 상상하니 허망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분리수거장에 데려올 결심
 
재료 별로 분류한 우산
 재료 별로 분류한 우산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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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상자에 재료들을 담아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평소와 달리 아이들도 함께 했다. 스펀지와 방수천은 재활용이 되지 않아 종량제 봉투에 버렸다. 여름이라 그런지 분리수거장에 수북이 쌓인  종량제 봉투에서 냄새가 났다. 아이들은 코를 싸 쥐었다. 나는 쓰레기 냄새를 맡아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라 생각했다. 그간 맡을 기회가 없었을 뿐 원래 쓰레기장에서는 냄새가 난다.

어린이에게 공동묘지를 금기시하는 것처럼 은연중에 나도 쓰레기장과 분리수거장을 멀리했던 것은 아닐까. 멋지고 신나는 '소비의 맛'은 편하게 보여줬다. 그러나 더럽고 냄새나는 '폐기의 풍경'은 의도적으로 차단시켜 왔다. 소비와 폐기는 연결되어 있다. 재활용장에서는 그 사실을 직관적으로 재확인할 수 있었다.

남은 우산 재료를 정리했다. 금속 프레임은 고철, 작은 부품은 플라스틱 분류함에 넣었다. 해체된 우산은 다른 물건의 일부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어른인 나는 분리수거가 끝나면 쌩하고 집으로 가버리는데 아이들은 달랐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남들이 버린 폐품을 관찰하느라 바빴다. 예쁘게 생긴 하얀색 소주병, 분유 깡통, 스티커 제대로 안 떼고 버린 어린이 주스병. 이웃의 생활을 몰래 구경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파트 한 개 동에서 배출되는 쓰레기와 재활용품 양은 상당했다.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에 나온 양이다. 이 쓰레기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진짜로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종종 아이들을 분리수거장에 데리고 와야겠다고 결심했다. 고기 도축 과정의 끔찍함을 목격하고 채식주의자가 되는 사람이 있다. 비슷한 흐름으로 어마무시한 쓰레기를 직접 마주하면 무분별한 소비가 줄어들지 않을까. 

기업은 상품과 서비스의 밝은 면을 광고한다. 상품과 서비스의 어두운 면은 쓰레기장에 있다. 그리고 오염된 바다와 공기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따로 의식하지 않으면 소비의 그늘은 눈치채기 힘들다. 우산을 불편하게 폐기해 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장 난 우산, 그냥 버리면 쓰레기지만 분류하면 자원이다.

태그:#우산, #재활용, #폐기물, #환경,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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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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