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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11년째 호수공원의 좁은 사육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두루미 부부. [사진제공=에코코리아]
 2013년부터 11년째 호수공원의 좁은 사육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두루미 부부. [사진제공=에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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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일산호수공원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던 두루미 한 쌍이 머잖아 고양시민 곁을 떠날 것으로 보인다. 두루미들이 생활하는 호수공원 작은동물원이 2027년 이전에 폐장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고양시 일산공원관리과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작은동물원 폐장이 결정된 단계다. 작은동물원의 대표 동물인 두루미 부부는 서울대공원으로 반환하는 절차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고양시와 서울대공원의 반환절차가 변수 없이 진행되면, 두 살 무렵이던 2013년 서울대공원에서 일산호수공원으로 이사 온 두루미 부부가 장년이 돼 자신들이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셈이다.

작은동물원의 폐장은 관계 법령 정비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다. 환경부는 지난해 말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수족관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그동안 등록제로 운영되던 동물원과 수족관이 허가제로 전환된다. 다시 말해 적절한 사육환경과 전문인력 등이 충족된 동물원에만 허가를 내주겠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사육·전시시설이 전부인 호수공원 작은동물원은 시행령 적용 시기인 2027년 이전에 폐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새로운 법령의 취지는 한마디로 '동물복지의 실현'이다. 동물원에서 지내는 동물들에게 최소한의 환경과 관리시스템을 보장해주자는 것. 이를 호수공원 작은동물원에 대입해보면 지금까지 운영해온 환경과 시스템이 오늘날의 동물복지 눈높이에 턱없이 모자랐다는 말이기도 하다. 때문에 두루미를 비롯한 호수공원 동물들의 열악한 환경을 걱정해온 시민들은 "늦었지만 잘된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면 아쉬움을 표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일산호수공원의 두루미들이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일산신도시과 호수공원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여겨지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1997년부터 국제교류·평화 상징
 
1997년 중국 치치하얼시에서 기증받아 2013년까지 호수공원을 지켰던 원조 단정학 수컷.
 1997년 중국 치치하얼시에서 기증받아 2013년까지 호수공원을 지켰던 원조 단정학 수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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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공원에 두루미가 사육되기 시작한 때는 1997년이다. 당시 제1회 고양국제꽃박람회를 계기로 고양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흑룡강성 치치하얼시가 단정학(丹頂鶴)이라고 불리는 두루미 암·수 한 쌍을 기증했다. 처음부터 고양시의 국제친선교류와 평화 염원을 상징하는 존재로 출발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호수공원을 지키고 있는 두루미가 27년 전 그 개체들은 아니다. 아쉽게도 2000년에 암컷이 다리 염증 치료 과정에서 죽고, 10년 넘게 수컷 혼자 생활했다. 그러다가 "수컷 혼자 지내는 게 불쌍해보인다"는 여론이 일자 2013년 원조 두루미 수컷을 서울대공원으로 보내고, 대신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어린 두루미 한 쌍을 임대 형식으로 들여왔다. 그 개체들이 바로 지금의 두루미들이다. 

올해로 11년째 호수공원에서 지내고 있는 두루미 부부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이목을 끌었던 게 바로 산란이었다. 생명력 왕성한 젊은 부부답게 두루미들은 2017년부터 매년 알을 한두 개씩 낳았다. 두루미의 산란은 관심 있는 이들에게 큰 화젯거리였다. 혹시라도 천연기념물 두루미가 일산호수공원에서 새끼를 부화시켰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마음을 졸였던 것. 

하지만 두루미들은 번번이 포란(알품기)에 실패했다. 어느 해에는 낳자마자 알을 먹어치워버리기도 했고(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본능이다), 어느 해에는 40일 가까이 알을 품고 있어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지만, 결국 알은 한 번도 깨어나지 않았다. 
 
올해로 8년째 알을 낳은 호수공원의 두루미 암컷. 하지만 부화에는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올해로 8년째 알을 낳은 호수공원의 두루미 암컷. 하지만 부화에는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사진제공=에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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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암컷이 산란 후 장기간 포란을 시도했던 2018년의 모습. [사진제공=에코코리아]
 두루미 암컷이 산란 후 장기간 포란을 시도했던 2018년의 모습. [사진제공=에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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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두루미 부화를 돕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에코코리아가 두루미들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했고, 고양시 공원관리과는 관람객 차단막을 설치하는 등 포란과 산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올해 역시 5월 12일에 알을 낳았는데, 곧 산란을 포기해버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무리생활을 하는 두루미의 특성, 비좁고 열악한 사육장 여건, 관람객 밀도로 인한 스트레스, 전문 사육사 부재 등을 고려할 때 부화까지를 기대하는 건 애초 무리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8년째 산란만 하고 포란·부화에는 번번이 실패하는 현상 자체가 사육환경의 한계를 방증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폐장이 수순' vs. '개선해서 유지해야' 

호수공원 작은동물원에는 두루미 부부만 있는 게 아니다. 건너편 계사에는 공작새와 금계, 오골계 등 5종의 새들이 살고 있고, 그 옆에는 미어캣과 토끼, 다람쥐 등 작은 동물들이 이웃하고 있다. 이처럼 다종의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작은동물원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앞서 말했듯 두 가지 상반되는 시선이 공존해왔다. 그 중 현재의 열악한 환경을 고려하면, 폐장의 수순을 밟는 것이 순리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하지만 동물원수족관법이 개정됐다고 해서 무조건 폐장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수년간 호수공원 작은동물원을 즐겨 찾았는 주엽동 주민 김수옥(가명)씨는 "오랜 세월동안 호수공원의 얼굴이었던 두루미들을 떠나보낸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 두루미뿐만 아니라 작은동물원의 동물들에게 나처럼 애착을 갖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면서 "이참에 고양시가 과감하게 시설을 개선해 두루미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제대로 된 동물원을 운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은정 에코코리아 사무처장 역시 "두루미를 비롯한 동물들을 아무런 예고 없이 보내버리는 것도 시민들에게 예의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무처장은 "우선은 작은동물원의 가치와 의미 등을 다각도로 짚어보는 공론화 절차가 있었으면 좋겠고, 보내게 되더라도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 '잘 보내주는' 과정이 뒤따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일산호수공원 작은동물원을 찾은 관람객들
 일산호수공원 작은동물원을 찾은 관람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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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사 건너편 조류사의 대장인 공작새.
 두루미사 건너편 조류사의 대장인 공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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