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아저씨는 소니 디지털 카메라 한 대를 들고 가게로 찾아오셨다. 사진 찍는 취미를 갖고 싶다고 했다. 당근마켓에서 중고 카메라를 샀는데 사용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사용설명서도 없었고 언뜻 봐도 잘 샀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카메라였지만 사진 찍는 즐거움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사용법을 교육해 드렸다.
첫 촬영지는 각산 봉화대였다.
테스트할 땐 정상이었는데 원거리 핀트 불량이었는지 삼천포 대교와 케이블카 사이로 흐르는 해무의 바다, 그 오묘한 장면이 흐릿하게 찍혀 있었다.
속았다는 생각에 아저씨는 너무 속상해 하셨다. 나는 실망한 아저씨를 달랬다. 그냥 휴대폰으로 찍어보시라고 권해드렸다.
다음 날 아저씨는 그 장소에 다시 가서 휴대폰으로 아침 바다를 찍어왔다. 첫 촬영을 망친 당근 마켓에서 산 중고 카메라를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다.
<사진의 기초>를 구해서 읽으시라고 했다. 찍은 사진들을 컴퓨터로 연결해서 함께 보면서 일일이 가르쳐 드렸다. 빛, 구도, 각도, 감정, 주제, 사물의 특징 등등... 한 컷 한 컷 잘된 점, 아쉬운 점을 아는 대로 지적해 드렸더니 촬영 실력이 급속도로 좋아졌다. 하루하루 좋은 사진이 늘어갔다.
아저씨는 사천시청에서 구두 닦는 일을 하다가 건강이 나빠져 그만두었다고 했다. 정작 남의 구두를 닦아주는 일을 해온 아저씨의 신발은 슬리퍼였다. 올 때마다 그 신발이었다. 수수한 차림새로 마음씨가 온순하고 언제나 내 말을 귀담아듣는 것이었다.
드넓은 녹차밭을 낡은 슬리퍼로 걸어 나오기도 하고, 밀양으로 달려가서 새벽 강 안개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고, 보리밭 너머로 나란히 서 있는 평사리 부부송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다가 오기도 했다.
어떤 곳에서는 못자리 물 댄 논에 어리는 아침 해를 찍으려다가 '낯선 사람이 잠복 중'이라는 신고로 경찰차가 달려오기도 했다. 아저씨는 무언가를 알려드리면 곧장 실천에 옮겼다.
아저씨는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것조차 사치라고 느끼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조마조마한 살림을 살아왔길래 저렇게 조심스러울까 싶었다. 사방천지에 널린 풀꽃이나 길, 강이나 바다를 찍는 일조차 왜 저렇게 숨기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색 모닝으로 어디든 달려가서 담아오는 사진에서 아저씨의 자유를 함께 느낀다. 가는 곳마다 그날의 에피소드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조평자 작가는 40년 가까이 사진관을 운영하며 사천 사람들의 얼굴을 기록해 온 이다. 그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사진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창 = 나의 사진 이야기>에 풀어 놓는다.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