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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감자꽃
 활짝 핀 감자꽃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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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5일 오랜만에 용담저수지(처인구 원삼면) 둘레길을 걸었다. 숲속에 들어서니 찔레꽃과 인동초꽃 향이 가던 길을 멈추게 했다. 온몸으로 꽃 향을 맡으며 긴 들숨을 쉬었다.

저수지 주차장 근처에는 10여 그루의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산다. 몇 해 전 겨울에 그곳을 지나면서 첫 대면을 하게 된 참나무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참나무는 둘레가 한 아름이 넘어 수령이 꽤 오래되어 보였는데, 나무 아래쪽에 상처 자국이 많이 보였다. 도토리를 따려고 참나무를 단단한 물체로 충격을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 나무에 서너 군데씩 상처의 흔적이 크게 남아 있었다.

오래전 윗대 어른들은 살림이 어려워서 지금처럼 끼니때마다 마음 놓고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어른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나물을 많이 넣고 쌀은 조금 넣어' 죽을 쑤어서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도토리의 떫은맛을 제거한 도토리 가루를 쪄서 먹을 것을 얻기도 했다.

때론 도토리로 묵을 쑤어서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고 한다. 도토리가 영글면 스스로 열매를 떨구는데, 마음이 급한 사람들은 그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강제로 도토리를 떨어뜨리려고 나무에 충격을 가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참나무들은 열매를 아낌없이 주면서도 오랫동안 수난을 겪었던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참나무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큰 숲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수십 년 전의 상처를 스스로 이겨내고, 가을이 되면 동물들의 먹이가 되는 도토리를 해마다 떨구어낸다.
 
탐스럽게 익어가는 블루베리 열매
 탐스럽게 익어가는 블루베리 열매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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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집에서 잘 크고 있는 매화나무는 올해 봄에도 꽃향기로 우리 가족을 불러 모았다. 나무에 바짝 붙어서 꽃에 코를 들이대면 은은한 꽃내음에 취해 한참을 그대로 서 있게 된다. 그런데 올해에는 이상한 일이 생겼다.

작년까지만 해도 꿀벌들이 매화꽃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날아다니며 먹이 활동을 열심히 했다. 작년엔 재작년보다 꿀벌 숫자는 줄었어도 올해처럼 한두 마리 셀 정도는 아니었다.

큰 화분에 심은 블루베리꽃이 피었을 때도 꿀벌이 보이지 않고 호박벌 몇 마리가 날아와서 블루베리 열매 맺는 일을 도와주었다. 전원마을 사이버 동호인들의 글을 보면 올봄 호박벌이 활발하게 활동한 이야기, 줄어든 꿀벌 이야기는 우리 집 사정과 똑같았다.

해마다 봄이면 우리 부부는 텃밭에 세이랑 정도의 감자를 심는다. 감자꽃이 필 때면 꽃대를 일일이 잘라준다. 감자가 꽃을 피우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면 감자알이 굵게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감자꽃을 자르지 않았다. 꿀벌이 많이 놀러 오게 하기 위함이었지만 꿀벌은 보이지 않았다. 아침 기온이 낮아서라고 생각하면 기온이 올라가는 낮에는 벌이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우리 부부의 걱정을 알았는지, 요즈음 한창 개화 중인 꽃양귀비며 금잔화, 디기탈리스, 장미, 등 여러 꽃 위에 '웽웽' 꿀벌들의 소리가 들린다.

신나게 이꽃 저꽃으로 다니는 꿀벌들을 보며 우리 부부는 말할 수 없이 기뻐하고 있다. 그래봐야 우리 집에 찾아온 꿀벌 숫자는 고작 20여 마리 정도인 것 같다. 숫자는 적지만 그래도 반갑다.

꿀벌 숫자가 줄어들어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는 양봉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서 알려질 때만 해도 그저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올봄 직접 경험하고 나니 앞으로가 걱정이다.

꿀벌의 감소 현상은 질병이 원인일 수 있지만, 먹이 부족과 기상 조건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 언론사에 의하면 한겨울 일시적 고온 현상으로 남부지역의 경우 계절을 착각해서 봄꽃이 피고, 월동에 들어갔던 꿀벌들도 봄인 줄 알고 먹이 활동을 하다가 다시 추워진 날씨에 적응 못하고 모두 폐사해 꿀벌 숫자가 줄어든 큰 원인으로 지적했다.

기상이변으로 한꺼번에 핀 꽃들로 먹이의 풍년과 흉년을 겪는 것도 벌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2022년 봄, 양봉하는 어느 농가에 사라진 벌이 60%가 넘는다고 하니 눈으로 보이는 경제적 피해는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자연에 끼치는 악영향은 수치화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류가 먹는 작물의 70% 이상이 꿀벌의 수분 활동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꿀벌의 소중함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큰 상처를 입고도 묵묵히 이겨낸 용담저수지 둘레길 참나무들의 모습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기후변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우리 행동을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자연 친화적인 삶으로 하나씩 바꾸어 간다면 환경이 더 나빠지진 않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져 본다.

텃밭에서 자연생태에 기본이 되는 꿀벌들의 건강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우리 부부는 올해에도 화초를 많이 가꾸고 농약을 멀리해서 꿀벌과 친구 되는 행복한 삶을 꿈꾼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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