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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6월 5일 오후 6시 35분]

전국 프레시 매니저(구 야쿠르트 판매원)는 만천 명. 길거리와 사무실 책상 위에서 이들의 제품을 만난다. 일부 언론은 워라밸을 중시하는 MZ세대가 선호하는 직업으로 이들을 소개했다. 서울의 한 번화가, 업무 중인 피아씨와 생생하고 진솔한 일상을 나눴다.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피아(가명)라고 합니다. 만25살이고, 현재 프레시 매니저입니다."

- 어떻게 일을 시작하게 됐나요?

"예전엔 줄곧 사무직으로 일했어요. 좁은 사무실에서 상사의 눈치를 보거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에 지쳐 번아웃이 크게 왔고요. 작년 멘탈이 탈탈 털린 채로 일터를 나오면서 다른 일을 찾고 싶어졌어요. 그러다 우연히 알바몬에서 한국 야쿠르트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어요."
 
전동차 코코와 함께.
 전동차 코코와 함께.
ⓒ 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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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일과를 소개해주실래요?

"각자 정해진 구역이 있어요. 저는 집 근처로 지원해서, 인근에 구역이 배정됐고요. 한국야쿠르트에서 물품을 구매하고 그걸 다시 판매하는 합니다. 만약 유통기한 내에 판매를 못하면 제 손실이 됩니다. 판매방식은 크게 두 가지예요. 사무실 등으로 정기고객에게 물품을 배달하는 '고정'과 현장에서 판매하는 '판촉활동' 혹은 '고객만나기 활동'이죠.

목요일과 금요일엔 아침 6시 30분에 제가 맡은 구역 사무실에서 필요한 물품을 챙기고 코코(프레시 매니저가 사용하는 전동차)를 끌고 나가요. 오전 8시까지 이 일대를 돌며 정기고객에게 배달을 하고, 이후 저녁 6시까지 판촉활동을 합니다. 끝나면 다시 사무실에 가서 한 시간 정도 당일 판매 물품 수량을 파악하거나, 내일 챙길 제품을 챙기고 정리합니다. 대략 하루에 12시간~13시간 일하는 것 같아요.

월요일~수요일엔 고정 급여가 필요할 것 같아서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4시간 정도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요. 제 구역은 한동안 프레시 매니저가 없던 곳이라 정기고객이 많지 않아서,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다시 판촉활동을 하기도 해요. 이후 다시 돌아가 제품 챙기고 정리하면 오후 7~8시 정도 됩니다. 주간 근로시간은 50시간 내외 정도라고 보시면 돼요."

장시간 노동과 비례하지 않는 수입

- 하루 노동시간이 매우 긴데요. 실적 압박 같은 게 있나요? 

"다들 다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 실적 압박이 크진 않아요. 직영점과 관리점의 차이이기도 할 텐데, 관리점은 매니저의 실적이 곧 관리점주의 수입과 직결되는데, 저는 직영점에서 일해서 압박이 조금 덜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래도 고정 고객을 늘리라는 공지(프로모션)가 종종 있어, 아예 신경을 안 쓸 순 없어요."

- 결국, 개인사업자이니 실적 압박 때문이 아니라도 일하는 만큼이 수입이니까. 자연스레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겠어요.

"맞아요. 12~13시간 일하는 이유가 결국 수입 때문이죠, '윌'을 1개 팔면 300원 정도 수입이 나요. 제가 800개 이상을 팔아도 수입이 30만 원 정도예요. 제 구역은 그래도 오랜 시간 담당 매니저가 없던 취약지역이라, 처음 3달은 지원금이 나오는데, 그걸 포함해서 저번 달 수입, 실수령액이 160만 원 정도였던 것 같아요. 하루 12~13시간 일하는데 그에 비하면 수입이 너무 적죠. 계약서를 쓸 때 '프레시 매니저는 고용 관계가 아닌 자유롭고 동등한 계약 관계다'라는 문구가 있더라고요. 근데 정말 자유롭고 동등한 관계인지는 모르겠어요. 판매 수수료가 '동등한 관계'라고 말하기엔 너무 적다고 느끼는데, 이걸 건의하거나 조정할 수 없거든요.

또 저희 제품이 대형마트에도 유통돼요. 저는 이런 제품을 대형마트에 유통하는 건 유통 창구가 분산되는 거고, 이건 프레시 매니저의 수입에 직결되는 문제라 합의가 필요한 것 같거든요. 요즘 많은 사람이 프레시 매니저에게 구입하기보다 마트에서 비대면으로 사는 걸 선호하거든요. 유통 창구도 판매에는 중요한 부분이라, 정말 '동등한 관계'면 어느 정도 상의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어린 여성'이라서 겪는 어려움

- 프레시 매니저가 다 여성이잖아요. 이 부분에 관한 얘기도 듣고 싶어요.

"예전엔 '기혼 여성'이 채용조건이었대요. '돌봄'을 여성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가족 돌봄과 경제 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죠. 프레시 매니저는 그런 상황에서 노동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다보니, 회사에 수수료나 다른 근로조건에 대해 불만을 표하거나 항의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되는 것 같아요. 안 그래도 경력 단절이나 독박 돌봄 같은 열악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으니까, '기혼 여성'을 조건으로 둔 게 그런 점을 노렸던 것인가 싶어서 씁쓸해지기도 하고요. 요새 출산한 30대 여성분들이 많이 늘었대요. 육아랑 병행할 수 있으니까요(현재 프레시 매니저 채용은 나이나 혼인유무 등과 관련 없이 이뤄지고 있다 - 편집자 말).

손님들 대부분이 저를 '아줌마'로 불러요. 저는 제가 어려서가 아니라, 그 호칭이 저를 존중하는 의미가 아닌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사장님'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리고 매니저님들이랑 같이 쉬고 있으면 어디선가 남자 손님한테 성희롱이나 폭력적인 상황을 겪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요. '대체 누가 그럴까' 싶지만,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더라고요."

- 나이가 어리다는 부분에서 생기는 애로사항도 있겠어요.

"맞아요. 일단 손님이나 같이 일하는 분들 대부분 제게 반말을 해요. 대뜸 결혼했냐고 묻고, 성희롱에 가까운 질문을 받는 일도 있고요. 손님에게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잖아요. 무례한 말도 웃으며 넘겨야 할 경우가 많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제가 젊다는 걸 신기하고 재밌어 하면서, 동시에 '씩씩하고 발랄한 야쿠르트 아가씨'의 모습을 기대하거든요. 그럴 땐 저도 계속 그런 이미지를 보여줘야 하나 싶어 은근 부담되고요."
 
 정기배송 중 엘리베이터에서
  정기배송 중 엘리베이터에서
ⓒ 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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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대하는 일에서 생기는 어려움이 있겠어요. 고객이 불평을 한 적도 있나요?

"정기고객 중에는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새벽에 일찍 배달해달라고 하는 곳이 있어요. 저는 그 말이 조금…. 청소노동자들이 대부분 새벽에 일하잖아요. 그것처럼 배달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길 바라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이지 않는 노동'을 바라나… 하하."

- 성희롱, 폭언, 고객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대처법 교육이나, 매뉴얼 같은 게 있나요?

"따로 교육받은 건 없어요. 회사 정기교육이 있는데, 고객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 웃으며 대화해라, 친절하게 대하라, 약속을 어기지 말라, 클레임은 어떻게 대처해라. 이런 교육이죠(이에 대해 야쿠르트측은 "프레시 매니저에 대한 부당대우가 현장에서 이뤄졌을 경우, 영업관리자인 점장들이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있ㄷ"라고 알려왔다. - 편집자 말)."

- 여러 고충도 있겠지만 장점이나 보람도 있을 것 같아요. 

"노동시간은 길지만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줄었어요. 사무직에서 고통받던 좁은 인간관계, 눈치 보는 상사에게 해방된 게 최고로 행복하고요. 삶의 질이 올라간달까. 덕분에 제가 어떤 요인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게 됐고요. 또, 몸이 안 좋은 날 판촉활동 안 하거나 하는 식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에요. 보람은…. 현장에서 구매하는 분들은 보통 연세가 조금 있으신데. 그분들이 '고생한다', '열심히 한다' 덕담 해주실 때, 오가면서 쓱 눈치만 보다가 '이거 살 수 있냐'고 묻던 분이 단골손님이 됐을 때, 그리고 여기가 번화가라 외국인도 오는데 영어로 제품 설명을 하고, 판매할 때…. 사소하지만 순간순간 보람을 느낄 때가 많아요.

사무직으로 일할 때는 존재를 잘 몰랐던 청소노동자, 우산 파는 할아버지, 길거리 반찬가게 상인같이 보이지 않는 노동을 수행하는 분들을 자주 보고 가까워지게 돼요. 혹은 사회적으로 약간 멀게 느꼈던 분들(가령 과한 포교 활동을 하는)과도 서로 인사를 주고 받고 서로 '오늘 하루 수고했다'라고 응원하는 관계가 되기도 해요. 자주 만나니 그분들과 관련된 사회 이슈가 있으면 더 눈여겨보고요. 저들의 노동과 고충, 사회 문제 등 사회구성원으로서 공동체의 책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요. 

예전에 단체에서 상근활동도 했었는데, 그땐 사회운동을 하는 부류와 그걸 혐오하는 부류, 두 편으로 나눠서 생각을 자주 하다 보니 네 편과 내 편이 나눠진 느낌이었어요. 아까 저한테 인사하고 지나가신 분은 제 고향이 어딘지 묻곤 ○○○지역이면 말을 걸지 않겠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근데 항상 제게 사탕과 간식을 챙겨주세요. 여기서 포교 활동하는 분들은 활동가 시절에 동성애 혐오세력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이고요. 사회운동할 때는 네 편, 내 편이 좀 더 확실했다면 지금은 좀 더 사람을 복합적으로 볼 수 있게 됐고, 덕분에 가끔은 인류애가 회복되는 느낌을 받아요. 수수료율 때문에 수입이 적어 생계를 위해 투잡, 쓰리잡을 해야 해서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이 들지만, 나름의 장점은 분명한 것 같아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도하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 일터 6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프레시매니저, #여성노동자, #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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