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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둠 활동 중인 학생들. 이렇게 수업하면 늘 교실이 왁자지껄하다.
 모둠 활동 중인 학생들. 이렇게 수업하면 늘 교실이 왁자지껄하다.
ⓒ 이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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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국어 수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밑줄 쫙'이라 할 수 있다. 고교 3년 동안 세 분의 국어 선생님을 만났지만 수업 방식은 거의 비슷했다. 누가 '밑줄 쫙'을 요령 있게, 재미나게 알려주는가가 그 선생님의 실력을 가늠해줬다. 

2023년 8월에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퇴임했다. 1970년대 말 고등학교 국어 수업 풍경과 2023년 고등학교 국어 수업 풍경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지라 조금은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은 바뀌지 않았다. 교사는 설명하고 학생은 듣는 풍경. 이 풍경에서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는 말이다. 1970년대 말이나 2023년이나 수업의 중심은 여전히 교사다.

만일 이런 수업 풍경이 바람직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터이다. 교사가 아닌 사람들과 이런 수업 방식에 대해 이야기 나눌 기회는 없었지만 동료 교사들과는 종종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는 아니었지만 교사들 상당수가 교사가 중심이 되는, 설명식 수업을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수업 방식을 바꾸는 데는 주저했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에 근무하다 퇴직했는데, 그곳에서도 학생들이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얻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목표였다. 그렇지 않은 대한민국의 일반계 고등학교는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를 나눠 보면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데에, 교사 주도의 설명식 수업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교사가 대부분이었다. 수능을 잘 보면 정시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데에 매우 유리하다. 그런데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고등학교의 경우 정시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20%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도 수능 때문에, 그리 바람직하다고 생각지 않는 수업 방식을 바꾸지 못하는 교사들이 많은 실정이었다.

그런데 이런 교사들의 생각에는 심각한 맹점이 있다. 교사 주도의 설명식 수업이 아닌, 다른 방식(학생 참여 수업)으로 수업을 하면 학생들이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막연히 그럴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수업 방식을 바꾸지 못하는 교사들이 많았다.

2018년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 1학년 국어 과목을 세 명의 교사가 세 반씩 맡아 가르치게 됐다. 교사 3명이 모여 어떻게 수업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100% 학생 참여수업, 또 한 사람은 100% 설명식 수업, 나머지 한 사람은 학생 참여 수업 반 설명식 수업 반. 이렇게 자기 스타일대로 수업하되, 정기고사 시험 문제는 수능식으로 내기로 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의 각 반 평균은 엇비슷했다. 학생 참여 수업을 했다고 평균 점수가 확 떨어지지도 않았고, 설명식 수업을 했다고 평균 점수가 확 올라가지도 않았다. 

그 후 2023년 퇴직할 때까지 학생 참여 수업을 했다. 어느 해도 내가 가르친 반 평균 점수가 다른 반보다 유의미하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동료 교사들에게 수업 방식을 한번 바꿔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수업 방식을 바꾸더라도 학생들의 성적이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그러나 내 주변에서 완전한 학생 참여 수업으로 수업 방식을 바꾸는 교사는 없었다. 

그리하여 내가 근무했던 고등학교의 국어 수업의 풍경은,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1970년대 말과 대체로 비슷했다. 교사는 침을 튀겨 가며 열심히 설명을 하고 학생은 묵묵히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칠판을 응시하며 교사의 설명을 경청하는 풍경.

만일 이런 수업 방식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적합하고 바람직한 수업 방식이라면 그대로 내버려 둬도 아무 문제가 없을 터이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현직에 있을 당시를 돌이켜 보면, 도교육청에서 수업 방식을 바꾸라는 공문이 꽤 자주 내려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교육청 차원에서는 수업 방식을 바꾸어야 할 필요를 인지한 것이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 이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몸에 익숙한 설명식 수업을 굳이 바꿀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또 수업 방식을 바꾸지 않더라도 그 어떤 불이익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필요성도 못 느끼고 손해도 일어나지 않는데 누가 굳이 익숙함을 버리겠는가.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라.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1970년대 말과 지금의 고등학교 국어 수업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 자체가 문제 아니겠는가.

지금 당장 일반계 고등학교의 국어 수업 풍경을 어떻게 바꿀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교사는 설명하고 학생은 묵묵히 듣는 국어 수업에서 학생들이 얻어갈 수 있는 게 그리 많지는 않을 성싶다. 학생들이 수업의 주인이 돼 왁자지껄 시끄러운 국어 수업이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실 교실마다 피어나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태그:#고등학교, #국어,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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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교사로 재직 중. 2년을 제외하고 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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