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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깊이를 측량하고 뭔가 조사하는 모습이 며칠 새 자주 보인다
▲ 천막농성장 건너 풍경 물 깊이를 측량하고 뭔가 조사하는 모습이 며칠 새 자주 보인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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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이 빠르네요."

며칠 새 세종보 천막농성장 앞 금강 물살이 빨라졌다. 댐에서 물을 방류하기도 했고, 세종보 때문에 물길이 왜곡돼 한쪽으로만 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농성장 앞 하중도에서 물떼새 조사를 하는 이들의 발길이 잦고 바쁘다. 원래 수문을 닫기로 한 6월 1일이 바로 앞인 시점이었다. 예전 같으면 아마도 그냥 닫았을 텐데, 우리가 농성을 하면서 흰목물떼새 둥지 등을 발견해서일 것이다.

빠른 물살처럼 시간은 어느 덧 33일이 흘렀다. 이제는 천막농성장에 있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자들도 '어떤 결정'을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강은 평화롭게 흐르고 있고, 새들은 여전히 지저귄다. 물떼새의 아이들은 박새의 아이들처럼 태어나고 나는 연습을 하게 될 것이다. 강의 흐름만큼이나 자연의 흐름은 평화롭다.

그 흐름을 환경부가 세종보 재가동으로 잔인하게 잘라낸다면 그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생각한다.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만들어 둔 법을 환경부 스스로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강에 돌아온 흰수마자… 세종보 재가동으로 위기
 
멸종위기종 1급이자 한반도 고유종이다
▲ 흰수마자 멸종위기종 1급이자 한반도 고유종이다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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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고유종인 흰수마자는 잉엇과로 낙동강·금강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멸종위기종 1급 흰수마자는 법적 보호종인 만큼 함부로 포획해서는 안 된다. 야생동물보호법 67조 1항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을 포획·채취·훼손하거나 고사시킨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2020년 5월, 금강 세종보를 개방한 뒤 수생태계 건강성을 조사했던 환경부는 개방 후 물 흐르는 속도가 최대 80%까지 빨라지고 모래톱이 만들어지면서 흰수마자와 맹꽁이 등 멸종위기종이 발견되고 있으며 수생태계 건강성이 다양하게 향상되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환경부는 수문 개방 후 수생태계가 보를 닫을 때보다 훨씬 나아진다는 명백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음에도 치수와 이수를 내세워 정작 중요한 강의 건강성을 훼손하는 세종보 재가동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보 수문을 닫으면 금강 곳곳에서 발견되는 멸종위기 1급 흰수마자를 몰살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판단한다. 

흰수마자뿐인가. 흰목물떼새가 수몰되고 수달의 서식지가 없어진다. 서식지가 협소해진 수달이 서로를 물어뜯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환경부는 기업이 아니라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개발부서들과 싸워야 할 곳이다. 멸종위기종을 위협하면 일반인에게는 벌금을 매기고 법적 조치를 하면서 이를 스스로 어기는 환경부는 누구에게 처벌받아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강을 파괴하는 세종보 재가동… 불통의 환경부 
 
▲ 공주보 담수에 저항하는 노숙농성 중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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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댐 수위조절 및 하류하천 수질개선 용수 공급을 위한 방류량 조정(발전방류) 계획을 안내 드리오니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없도록 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공주시에서 알려드립니다. 공주보 수위상승 인한 수몰이 예상되어오니 통제선 밖으로 즉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는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장으로 대청댐관리단에서 공문으로 전달한 경고문이고, 아래는 공주보 담수 중단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이 있던 작년 9월, 공주보 수문을 닫기 위해 농성하는 활동가들에게 밤새 틀어대던 안내방송이다. 

진짜 안전을 생각했다면 소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농성자들의 요구를 듣고 협의할 방안을 고심해 이야기 하자고 청했을 것이다. 그러는 대신, 일부 활동가들에 대한 연행이나 고발이 이어졌다. 위험할 것이라는 경고는 나가라는 협박이고 할 얘기가 없다는 불통의 사인 아닐까. 

이런 태도를 한국수자원공사나 공주시도 똑같이 따라하고 있다. 도대체 왜 세종보 재가동이 필요한지를 묻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하다'만 반복할 뿐이다.
 
공주보 담수에 반대하는 천주교대전교구 생태위원회 거리미사 장면 중 하나, <김병기의 환경새뜸> 영상 갈무리
▲ 금강의 평화를 비는 기도 공주보 담수에 반대하는 천주교대전교구 생태위원회 거리미사 장면 중 하나, <김병기의 환경새뜸> 영상 갈무리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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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서로 멋진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이어 그 이야기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지. 그들은 그로써 신화가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자유, 존엄성, 형제애, 인간으로서의 명예. 우리 또한 이 숲에서 동화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있는거야… 유럽의 아이들은 장차 학교에서 이 이야기를 외우게 될 거야!"

로맹가리의 <유럽의 교육> 중 한 구절이다. 강을 지키는 일을 두고 혹자는 왜 그렇게 해야 하냐고, 먹고 사는 게 중요하지 않냐고 말하며 우리의 이야기를 꿈이나 이상으로 말하기도 한다. 혹은 뚱딴지 같고 돈 안 되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하지만 꿈이나 뚱딴지 같은 소리가 아닌 지금의 우리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가 바로 생명의 이야기다. 바로 내 발 옆에, 내가 사는 도시의 강에 사는 새의 이야기, 수달의 이야기, 물살이의 이야기가 어떻게 꿈이고 이상일 수 있을까. 
 
환경활동가들이 보 해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4대강 보 해체 퍼포먼스 환경활동가들이 보 해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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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농성장에는 오늘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이 강에서 동화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나눈다. 이 이야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강을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엔 그 마음이 이길 것이다. 흐르는 강이 모든 것을 이겨낼 것이다. 

오늘 물살이 빠른 것은 자연적인 게 아니라 인위적으로 댐의 방류량을 늘려서이다. 농성장 앞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농성천막을 치고 들어올 날이 머지않았다는 암묵적인 경고이다. 며칠 동안은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할 것 같지만 위태로움을 피하지 않겠다.

태그:#금강, #세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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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글쓰는 사람. 남편 포함 아들 셋 키우느라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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