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8 11:52최종 업데이트 24.05.2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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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행정지도로 촉발된 '라인야후 사태'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14일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라인야후 계열 한국법인 라인플러스 본사에서 직원이 걸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네이버가 일본 내 라인 사업뿐 아니라 중국·대만·태국·베트남 등의 라인 사업까지 잃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지난 22일 라인야후가 라인플러스의 해외 사업을 네이버와 함께할 이유가 없다고 표명한 사실이 보도됐다.

지난 10일 일본 참의원에서는 중요 정보를 취급하는 사업자를 국가가 지정하도록 하는 중요경제안보정보보호법이 통과됐다. 이 법이 시행되면 일본 정부가 이번처럼 행정지도를 통해 네이버를 압박하는 선에 그치지 않고 한층 강한 수단인 법률을 근거로 압박할 수 있게 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네이버가 일본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로 인해 한국인들의 감정이 좋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 내 반일 감정에 영향을 미칠 만한 세 가지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26일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가 네이버에 지분을 매각하라는 요구가 아닌 것으로 이해하고 있고, 이 현안을 양국 외교관계와 별개로 인식하고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피해자 측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라인사태를 외교 문제로 다룰 의사가 없음을 밝히는 동시에 이 문제가 양국 관계에 미칠 파급력을 차단하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위 발언에도 묻어나듯이 윤 대통령은 라인사태가 한일 관계에 영향을 미칠 사안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를 양국관계와 별개로 취급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기시다 총리의 방한 선물을 그렇게 내민 셈이 됐다.

라인사태와 한일관계를 '차단'하는 이런 흐름과 더불어, 한국인들의 반일감정에 영향을 줄 만한 움직임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돈'과 '진상규명'이라는 키워드로 부를 만한 흐름이 지난주부터 두드러지고 있다.

작년에 윤 정부가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묻지 않고 제3자변제로 대체하려 할 때, 전경련(한경협)과 더불어 일종의 바람잡이 역할을 한 곳이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이다. 윤 정부가 제3자 변제를 선언(2023.3.6.)한 뒤인 작년 3월 16일에 양국 재계가 '한일 미래파트너십 기금' 창설을 발표했고, 윤 대통령 취임 1주년인 5월 10일에 전경련과 게이단렌이 이 기금을 출범시켰다.

한일 정부와 재계는 이 기금이 강제징용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듯한 이미지를 조성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작년 6월 1일 자 게이단렌 소식지인 <게이단렌 타임스>에 실린 '일한·한일 미래 파트너십기금의 향후 운영에 관한 발표'에 따르면, 이 기금은 양국 청년 인재의 교류,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 팬데믹 대처 등에 사용된다.

청년 인재에 대한 투자는 결국 기업 자신을 위한 일이다. 국제질서나 팬데믹 대처 등도 마찬가지다. 한일 정부는 이런 용도로 모금한 기금이 강제징용 문제와 직접적 관련을 갖는 듯한 이미지를 조성했다. 이런 방식으로 양국 정부는 제3자 변제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트리려 했다.

게이단렌의 의도
 

24일 게이단렌이 홈페이지에 발표한 '일한·한일 미래파트너십기금의 활동에 관해' ⓒ 게이단렌

 
그 일에 바람잡이 역할을 했던 게이단렌이 라인사태로 한국 민심이 나빠진 지금 시점에 또다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래파트너십기금이 목표액 1억 엔을 2배 이상 넘었다는 게이단렌의 발표가 25일 자 <요미우리신문> 보도를 통해 국내에 전해졌다. 게이단렌은 24일 홈페이지에 발표한 '일한·한일 미래파트너십기금의 활동에 관해'라는 글에서 "미래지향적 일한관계의 구축을 위해 미래파트너십기금은 착실히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밝혔다.

위 <요미우리신문> 기사는 게이단렌의 발표를 라인사태와 연관지어 해석했다. "한국에서는 네이버가 대주주인 라인야후에 총무성이 행정지도를 하면서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라며 "경제계가 관계 개선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드러내려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라고 분석한 이 신문 기사가 국내에 보도됐다. 징용 문제와 관련해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누그러트리려고 했던 게이단렌이 라인사태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의도로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 일본 보도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 같은 게이단렌의 행보에 대해 한국 정부가 맞장구를 쳐주는 듯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5개월 뒤인 2022년 10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부임한 심규선 이사장은 게이단렌이 미래파트너십기금 실적을 발표하기 전날인 23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제3자 변제 자금이 부족하다며 한일 기업들의 자발적 기부를 촉구했다. 이 인터뷰는 27일에 보도됐다.

27일 자 <도쿄신문>은 심규선 이사장이 위 인터뷰 때 "일본에는 일본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하지만, 일본 기업이 참여해야 제3자 변제가 한국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호소한 사실을 보도했다. 행안부 재단 이사장이 일본 자금을 촉구하고 게이단렌이 목표액 2배 달성을 공표하는 이 상황은 게이단렌의 발표가 징용 피해자들에게 직접적 도움이 되는 듯한 인상을 조성할 수 있다. 라인사태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트리는 일에 한일 양측이 공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게이단렌이 한국을 향해 이처럼 '돈'을 내미는 가운데, 징용 희생자들과 관련된 진상규명과 관련된 현상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24일 일본 해군 수송선을 타고 귀환하던 징용 피해자들이 선박의 폭발로 인해 목숨을 잃은 우키시마호 사건과 관련된 최근의 갑작스러운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끌고 간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군 선박으로 귀환하다가 희생됐는데도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 2003년 11월호 <민족 21>에 보도된 '우키시마호에 편승한 조난사건에 관한 설명자료'라는 일본 공문서에도 나타나듯이, 일본 정부는 한국인들을 탑승시킨 자신들의 책임을 모호하게 할 목적으로 편승이니 조난이니 하는 표현들을 사용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당시의 일본 정부는 '한국인들을 호의로 태워줬고 폭파가 아닌 조난이므로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논리로 연합군최고사령부(GHQ)에 입장을 밝혔다. 한국인들을 일본에서 내보낼 목적으로 우키시마호에 승선시켜 놓고도 호의동승을 운운하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것이다.

일본 정부의 계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참석 등 방한 일정을 마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전용기에 오르며 환송 인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그랬던 일본 정부가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를 공개했다는 보도가 지난주에 나왔다. 명부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오다가 갑자기 세 종류나 되는 명부를 공개했다. 이 문서들 중 하나에는 탑승자가 3735명으로 기재돼 있다.

그동안 일본은 승선자 명부가 배 안에 있었기 때문에 사건 당시에 사라졌다는 주장을 폈었다. 그랬다가 이번에 한꺼번에 꺼내놓은 것이다. 원래의 승선자 명부는 사건 당시 없어진 게 맞고 이번에 공개한 것은 그 뒤 새로 작성한 것이라는 게 후생노동성의 주장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40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의 명단을 새로 작성했다면, 승선자의 인적 사항을 알려주는 별도의 자료가 남아 있었으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이번에 공개한 것은 믿을 수 없는 자료라는 말이 된다.

80년이 다 되도록 진상규명에 협조하지 않던 일본 정부가 한국에서 반일감정이 재고조되고 기시다 총리의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이 임박한 상태에서 승선자 명부를 공개했으니 일본 정부의 의도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명부 공개로 인해 조성될 향후의 진상규명 노력 및 추모의 분위기가 라인사태로 인한 반일감정에 미치게 될 영향을 일본 정부가 계산하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승선자 명부와 관련된 TF팀을 구성하겠다고 27일 밝혔다. 심규선 이사장이 "피해지원국장을 팀장으로 해 명부의 내용,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할 것"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한국 정부가 이 명부를 신속히 확보하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동시에, 식민지배문제에서 일본 정부와 보조를 맞춰온 피해자지원재단이 갑작스레 불거져 나온 우키시마호 문제와 관련해서도 일본과 보조를 맞추고 있으니 지금 진행 중인 흐름의 맥락을 곰곰이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일본 기업들이 미래의 한일관계를 위해 돈을 기부하고 일본 정부가 뒤늦게나마 우키시마호 진상규명에 협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라인사태의 올바른 해결이 추구되는 상황에서 이런 현상들이 동반된다면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이 라인사태와 한일관계를 차단하면서 이에 대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의사가 없음을 시사하는 가운데서 돈이 제시되고 진상규명과 관련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일 정부가 라인사태의 올바른 해결에 집중하지 않고 한국 내 반일감정 억제에 집중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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