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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에 4남매가 9박11일 동안 이탈리아를 자유롭게 여행한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씁니다.[기자말]
동생들과 함께 할 로마 여행을 준비하면서 하루 정도는 로마를 벗어나 이탈리아의 시골 풍경과 자연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르비에토를 선택했다.

오르비에토는 로마에서 기차로 1시간 20여 분 거리로 중세 시대 유적지가 잘 보존된 도시다. 또한 패스트푸드에 반대해 전통적이고 자연친화적이며 느린 삶을 추구하는 슬로시티 캠페인이 벌어진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여행 블로그를 참고하면서 나는 몇 가지 정보만 머릿속에 넣어두고 발길 닿는 대로 거닐며 여유로운 여행을 해 보기로 계획했다. 

로마 여행 5일째, 동생들과 함께 테르미니역으로 향했다. 테르미니역은 이탈리아 뿐 아니라 유럽에서 들고 나는 기차들과 여행객들로 북적거리는 넓고 큰 역인데 그곳에서 기차표를 끊고 기차를 타는 일은 처음이어서 조금은 긴장되었다.

트랜이탈리아(이탈리아 국유철도회사) 로고가 보이는 매표기에서 발권을 시도해 보았는데 잘 되지 않아서 트랜이탈리아 창구를 찾아 직원에게 기차표를 구입했다. 그리고 무사히 오르비에토행 기차에 올랐다.

오르비에토의 첫인상은 수수하고 소박했다. 그러나 시내에는 중세 때 지어진 화려하고 웅장한 두오모가 있다. 해발고도 195m 바위산에 위치한 시내에 가기 위해서는 푸니쿨라를 타고 다시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이탈리아 오르비에토의 골목길(2024.4.15)
▲ 오르비에토  이탈리아 오르비에토의 골목길(2024.4.15)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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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오래된 골목길을 달리는데 버스가 다니기에는 길이 아주 좁았다. 더구나 아스팔트가 아닌 몇 백 년은 됐음직한 돌길이었다. 이들은 편안함을 위해 길을 넓히거나 오래된 집들을 부수고 새롭게 짓는 대신 전통을 지키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고 옛것을 보존하면서 살고 있었다.
 
가게가 있는 오르비에토 골목길
▲ 오르비에토 골목길 가게가 있는 오르비에토 골목길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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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바라본 광장은 고풍스러우면서 소박했다. 여행객도 많지 않아 번잡한 로마에서 뺏긴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다. 골목으로 들어서니 각각의 가게마다 개성이 넘쳐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어느덧 점심시간, 우리는 지나는 길에 본 아기자기한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는 처음 먹어보는 것들인데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었다. 이탈리아식 햄과 치즈, 삶은 야채, 절인 야채, 발사믹 등 모든 요리에는 이탈리아의 전통과 토속성이 담겨 있었다.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을 뿐 아니라 건강에 좋은 음식들이었다.
 
동생들과 함께 먹은 오르비에토 음식
▲ 오르비에토에서 먹은 점심 동생들과 함께 먹은 오르비에토 음식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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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든든히 채우고 오르비에토의 두오모를 보러 갔다. 멀리서도 눈에 뜨이는 두오모의 정면 파사드는 예술품이었다.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품과 모자이크, 장미창으로 꾸며진 두오모는 1290년에 착공돼 300년 간 지어진 성당으로 오르비에토가 중세 시대에 번성했던 도시, 문화와 예술을 꽃피웠던 도시였음을 알려준다.
 
오르비에토 두오모(2024.4.15)
▲ 오르비에토 두오모 오르비에토 두오모(2024.4.15)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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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를 뒤로 하고 우리는 발길 닿는 대로 골몰길을 산책했다. 몇 백 년 된 집들의 돌담과 나무문과 창틀을 보면서 햇빛과 바람과 눈비를 맞으며 그들이 겪어낸 시간을 보았다. 사람의 인상에서 살아온 삶이 보이듯이 오래된 집들도 그랬다.

골목길을 걷다 보니 길은 끊어지고 앞이 휜히 트여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풍경이 보인다. 초록의 들판과 나무들... 압도적이지 않아서 안정적이고 익숙해서 편안한 풍경이었다.
 
2024년 4월 15일 오르비에토 풍경
▲ 오르비에토 풍경 2024년 4월 15일 오르비에토 풍경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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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자연의 작용에 풍화된 집들을 보면서 몇 십 대에 걸쳐 살아간 사람들의 삶이 느껴졌고 자연 속에서 전통을 존중하며 조급하지 않고 느리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도 엿보았다.

한국에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로마로, 다시 기차를 타고 푸니쿨라와 마을버스를 타고 오르비에토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 자연이 주는 풍경, 오랜 세월이 빚어낸 마을, 전통을 존중하며 느리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천천히 거닐며 어떤 삶이 행복할까, 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었다.

오르비에토는 속도감을 중시 여기며 앞만 보고 살아가는 삶, 옛것을 버리고 새것만 추구하는 우리들 삶의 방식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오후의 해가 저물어가고 우리는 로마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역 플랫폼에 앉아 있는데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시원하고 새들은 지저귄다. 한가로운 전원 풍경에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2024년4월15일 오르비에토 풍경
▲ 4월의 오르비에토 2024년4월15일 오르비에토 풍경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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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기차표 끊느라 헤매고 길을 잘못 들어 헤맸던 긴장감이 풀리면서 현지 사람들을 만나 물어보고 소통할 수 있었던 게 고맙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 온 마을을 구석구석 운행하는 마을버스를 타게 되어 로마에 못가는 거 아닌가 전전긍긍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오르비에토의 시골 마을과 집들을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했으면 덜 헤맸겠지만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다녀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경험했다. 덕분에 동생들과의 여행에서 더 많은 추억도 쌓을 수 있었다. 

오르비에토 여행은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자연적인 방식 그리고 불편하지만 인간과 환경 모두에게 좋은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케 하는 소중한 여행으로 남게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제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태그:#오르비에토여행, #이탈리아여행, #로마근교도시여행, #오르비에토, #슬로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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