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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 청산도 구들장논이 국가농업유산과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아직 농업유산이라고 하는 단어가 낯설었던 시절, 농업유산보다 더 낯설었던 구들장논이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돼 온 국민을 놀라게 했다. 청산도라고 하는 남해안의 섬에서 국민들이 잘 모르던 구들장논이라고 하는 농업유산을 발굴해 세계에 소개한 관련 전문가들의 안목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10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지나가는 사이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국가농업유산이 지정됐고, 세계농업유산 또한 함께 증가했다. 

하지만 농업유산에 대한 관심은 첫 유산이 등재되었던 당시에 비해 많이 시들해졌다. 소중한 것들이 많아지게 되면서 생겨나는 딜레마인지도 모르겠다.

농업유산이 가지는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부각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라고 하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세계농업유산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도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에 대한 각성에서 시작됐다. 

세계농업유산제도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2002년 도입한 제도이다. 전 세계의 전통농업이 생물다양성 파괴, 문화다양성 상실, 빈곤과 인구 증가, 부적절한 개발계획 등으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이런 위협요인으로부터 전통농업을 보전하기 위해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된 지속가능개발 세계정상회의에서 세계중요농업유산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2002년 지속가능개발 세계정상회의는 1992년 개최된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리우회의 이후 10년간 지구 차원의 대응을 검토하고 논의하기 위해 개최된 회의다. 

이 회의에서 세계중요농업유산제도를 도입한 것은 전통농업이 가지는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파괴에 대한 대응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된 청산도 구들장논은 이런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진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오면서 유지해온 농업유전자원, 농업활동과 공존해서 살아온 긴꼬리투구새우와 구들장논 돌틈에 의지해서 살아온 수많은 생명들은 농업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또한 물과 토지가 부족한 땅에서 벼농사를 짓고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 발달시켜온 논을 만드는 방법과 복잡한 수리체계, 영농방법은 다양한 자연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척박한 섬을 인간의 정주지로 만든 인간 승리의 표본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전통적인 농업경관 또한 이제는 생태관광의 주요한 자원이 되고 있다. 

이와같이 겉으로 들어나는 여러가지 요소들 외에도 청산도 구들장논 세계농업유산은 기후위기의 시대 적절한 물의 이용과, 식량생산, 에너지의 자체 공급과 지속가능한 유지라고 하는 순환농업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현재  지구가 안고 있는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물론 구들장논이 지금은 산업화되고 서구화된 대량생산의 시대에 잘 어울리지 않는 농법으로 보이지만 그 자체가 가진 환경적 가치는 큰 보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농업농촌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청산도 구들장논 또한 그대로 공유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인구감소라고 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아직 청산도가 가진 비밀을 완전히 밝혀내지도 못하고 지구환경의 해법을 이곳에서 찾고 있는데, 청산도 구들장논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농업유산제도는 이와 같이 소멸하기 쉬운 농업자원을 발굴해 이를 지속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이를 동적 보전이라고 한다.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여 보전방안을 만들어가자는 의미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청산도 구들장논 세계농업유산을 과연 동적 보전할 수 있는 기틀을 준비했는가에 대해 심각한 반성을 할 필요성이 있다. 당초 보전의 어려움이 예상돼 농업유산으로 지정했지만, 이를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동적 보전 수단을 충분히 고민했는지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단순히 생태관광장소로만 활용돼 농업유산은 사라지고 혹시 껍때기 뿐인 경관만 남아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반성이 필요하다. 

당초 청산도 구들장논이 가지고 있던 수리체계와 물이용, 부족한 식량 생산, 에너지 자급을 위한 노력 등 청산도 전통농업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요소들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은 부족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10년은 짧은 시간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 농업유산제도가 도입되고, 동적 보전수단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이 그동안은 부족했거나 시행착오가 됐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10년은, 이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1호 유산으로서 다른 지역의 농업유산을 관리하는 지평을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도서지역이라고 하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수백 년간 지역주민들의 물과 식량과 에너지를 자급해왔던 선조들의 노력보다는 쉬운 일일 수 있다. 새로운 10년, 청산도 구들장논 세계농업유산이 우리나라 농업유산 관리에 새로운 해법을 제시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오충현 동국대학교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한국환경생태학회 회장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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