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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사회 주최로 지난 15일 저녁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의대정원증원-필수의료패키지 저지를 위한 궐기대회'에서 의료계 대표자들과 전공의, 의대생, 개원의, 의대 교수 등이 "의대정원 졸속확대는 의사 말살이자 의사가 장기간에 걸쳐 이룩한 의료시스템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려는 잘못된 정책 추진"이라며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 거리에 선 의사들 서울특별시의사회 주최로 지난 15일 저녁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의대정원증원-필수의료패키지 저지를 위한 궐기대회'에서 의료계 대표자들과 전공의, 의대생, 개원의, 의대 교수 등이 "의대정원 졸속확대는 의사 말살이자 의사가 장기간에 걸쳐 이룩한 의료시스템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려는 잘못된 정책 추진"이라며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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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 반대에 대한 의사 파업이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2020년엔 의대 증원 반대에 따른 의사 파업, 2000년엔 의약 분업 반대에 대한 의사 파업이 큰 이슈가 돼 사회적 논쟁이 일었었다. 

2000년 이후 우리나라만 크고 작은 의사 파업을 경험했을까? 영국·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쟁점은 다를지라도 의사 파업은 있어왔다. 그렇다면 21세기에만 유독 의사 파업이 발생했었을까? 1904년 1월 1일 독일 쾰른이란 도시의 의사파업을 시작으로 독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 의사 파업이 일어난 기록이 있다. 100년도 더 지난 1904년에도 의사 파업은 있었다.

1904년 당시 독일에서 의사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지식층으로 인식돼 있었는데 노동자의 전유물로 인식돼 있던 파업을 의사들이 실행한다는 소식에 독일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파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온 구호에는 "투쟁" "착취" "노예" 등이 포함되기도 했다. 지금도 의사들이 파업을 하면서 외치는 구호에도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1904년 당시 독일 의사 파업의 쟁점은 건강보험의 운영과 관리의 결정권을 어디에 둘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보험환자의 진료조건과 의료수가를 결정하는 재량권이 어디에 집중돼 있느냐 하는 제도적인 문제였다. 의사들은 이러한 재량권이 '수요를 독점하는' 보험조합에 집중돼 있으므로 의사 직무의 자율성이 제한돼 보험조합에 예속된 '노예 신분'이라고 진단했다. 1904년 의사파업의 핵심 요구사항은 '자유로운 의사(醫師)선택(freie Arztwahl)'였다. 즉, 자유로운 의료시장에서 환자들의 자유롭게 의사를 선택해 진료를 볼 수 있게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하는데 보험조합 소속 의사에게만 환자가 집중되게 제도화돼 의사들은 보험조합이 제시하는 진료조건과 의료수가에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었다.

1891년에는 보험의사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법률개정안의 청원이 결의되기도 했지만 목적을 이루진 못했다. 1904년 의사 파업 당시 의사들이 제시한 제도개선의 근거는 건강보험법으로 초래된 의사들의 경제적 곤경과 '비인도적 종속성'에 있었다. 여기에는 1880년대 말 이래로 의과대학 졸업자가 대폭 늘어나고 의사증가율이 인구 증가율을 크게 앞지르면서, 보험 의사 자리가 상대적으로 축소됐던 사정에 있었다. 그리고 보험조합에서는 총 지출액을 줄이기 위해 의사들의 진료조건과 의료수가를 제한한 이유도 있었다.

1904년 당시 의사파업자들은 자신들을 '예속'에 허덕이는 피용자의 처지에서 보면서 보험 의사 선택 독점적 권한을 지닌 상대 진영을 '의사노동의 착취자'로 간주했다. '부르주아 노동자(Bourgeoisarbeitnehmer)'라는 새로운 용어도 등장했다. 파업은 한 달여 만에 의사 진영의 승리로 종결됐다. 1904~1905년 사이에 의사 진영은 연대투쟁의 승리로 51개 지역에서 제한적인 의사선택의 자율성과 분쟁조정기구를 확보했으며, 보험조합으로부터 상당한 의료수가 초과 수입을 쟁취했다.

지금 21세기에도, 과거 1904년에도 강제진료제도를 통해 의사와 보험조합 사이의 불균형 등 세력관계를 재편하려는 것이 고도의 전문성과 자발적인 인도주의를 함께 갖춰야 하는 의사 직무의 특성에 부합하느냐하는 문제였다. 의사 직업의 정체성은 직무의 자율성과 경제적 자주성이며, 그것은 곧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시장관계에 제3의 세력이 작용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건강보험조합에 의한 진료비 지출책임이 제3자에게 전가된 상황에서 과도하거나 불요불급의 진료비 지출을 차단하는 보험조합의 행위가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시장관계에 외재적 구속력으로 작용한다. 건강보험조합이 외재적 구속력을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행사해 의사 직무의 자율성을 구속하면 의사들의 반발을 사고, 의사의 자율성을 존중하기 위해 약하고 좁게 행사하면 보험조합의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의사와 보험조합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조정 역할을 국가가 책임질 필요가 있다.

현대 국가의 역할 중 조정국가(Kooperativer Staat)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훈령으로부터 탈 중심의 조정으로, 강요적 조정으로부터 협상을 통한 협약으로, 규격통일로부터 설득으로'라는 조정 역할을 의미한다.

의대 증원이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축소해야 할 것인가는 지금 상대방의 주장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다른 근거를 제시하면서 대립하고 있다. 의료의 수요는 국민이 필요한 만큼 제공될 수 있으면 충분하다. 국가에겐 국민들의 의료 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상응하는 의료 공급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현대 사회의 변화와 다양성은 1904년 독일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의료 수요를 예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내년에도 코로나19(COVID-19) 같은 변수가 등장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알 수 없다.

단기적인 정책보다는 장기적인 의료제도의 개선으로 기본적인 수요와 공급의 안정적인 구조화가 필요하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의사수요가 향후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의대 증원을 통해 수요를 맞추겠다는 논리다. 의사 측은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현재 의사들의 재분배와 재배치가 중요하다고 맞선다.

시장 경제 논리에서 수요와 부가 집중되는 곳에는 공급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을 하는 것은 경제적 독립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억압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반하고 시장의 파괴를 의미한다. 의료시장의 공공성을 강조하려면 국가는 그러한 노력을 민간시장과 경쟁해 공공의료 시장의 경쟁을 확보하도록 노력해 공공의료시장의 영역을 꾸준히 넓혀야 한다.

민간의료시장에 단순히 '의료는 공공재'라는 이유를 들어 공공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대단히 넓은 포괄적인 공공성을 의미하므로 국가가 모든 의료시장을 통제하겠다는 선언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면 민간의료시장은 폐쇄돼야 한다. 오직 공공성을 띤 의료시장만 존재해야 하므로 모든 의료기관은 국가에 귀속돼 통제와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시장에서 과연 실현될 수 있는 선언은 아닌 것으로 본다.

국가가 제3의 세력으로 의사와 환자 사이에 조정 역할을 수행하려면 균형적인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의료시장이 균형을 잃지 않고 계속 유지될 것이다. 다수인 환자, 즉 국민에게 유리하고 편향적인 기울어짐이 당장은 국민의 지지와 인기를 얻을 수 있지만 그러한 상태에서는 의료시장이 기울어지면 넘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넘어지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의사들이 노력하는 것이 인기가 없고 이기적인 행위나 집단적 행동주의로 비칠 수 있따. 하지만 의료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을 인위적으로 제3의 힘으로 조정하려면 균형을 잃지 않고 잘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조정자의 역할이다. 한쪽을 넘어뜨려 균형을 잃어버리게 하면서까지 의료시장에서 얻을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누군가는 힘의 균형이 의사에게 있고, 누군가는 힘의 균형이 환자(국민)에게 있다고 한다. 이 견해의 차이는 1904년 독일 의사 파업에서 보듯 100년이 넘어도 계속되는 논쟁 거리다.

그런데 국가가 당장 이런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자세로 의대 증원을 주장하는 것은 다시 한 번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의대 증원만이 진정한 의료시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해법인지, 아니면 그 좋은 해법이 있는데 눈을 감고 기울어진 추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태그:#의사파업, #의대증원, #독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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