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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학생 휴대전화 압수하면 그만? '금지'는 교육이 아니다>(https://omn.kr/277wa)에 대한 재반론입니다. - 기자말
 
 일상에 자리잡은 스마트폰
일상에 자리잡은 스마트폰 ⓒ Unsplash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 시간 넘게 모니터 화면의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며 앉아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라고 눙치는 건 비겁해 보이고, 그렇다고 타당한 지적에 토를 다는 건 명색이 교사로서 할 짓이 못 된다. '금지는 교육이 아니'라는 그의 요지엔 100% 동의한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스마트폰만큼은 통제가 필요하다.'

이전 글에서 여러 이유를 들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주장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인권위가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꼬집은 것도, 주상 같은 인권위의 권고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스마트폰의 부작용을 간과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단지 학교에서 일과 중 스마트폰 소지는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다는 문제 제기였다.

처음엔 누구라도 아이들의 자율적 통제가 가능하리라고 여겼다. 크게 이슈화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요즘처럼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지도 않았다. 불과 몇 해 만에 아이들의 무분별한 사용이 생활지도에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됐다. 온갖 무리수를 다 써봤지만 허사였다. 심지어 솔선수범하기 위해 교사들도 아이들이 보지 않는 교무실에서만 한정해 사용하도록 규제하자는 논의가 있었을 정도였다.

스마트폰 중독의 위험성을 알리는 영상물이 게시판에 종일 돌아가고, 교과 수업이든 비교과 활동이든 관련 교육이 이어지지만, 이 또한 소용이 없다. 일단 스마트폰만 손에 쥐면, 아이들은 이내 '파블로프의 개'가 됐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게임에 접속하거나 온갖 자극적인 영상을 친구들과 돌려 보며 키득거렸다.

물론, 잘 알고 있다. 교육은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는 거라는 사실을. '콩나물에 물을 주는' 심정으로 언젠가 스마트폰 중독의 폐해를 깨닫고 선용하리라 믿으며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스마트폰 중독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건 10년도 훌쩍 넘었고 학교 교육도 줄곧 강조돼왔지만, 그 결과는 안타깝게도 '이 모양 이 꼴'이다. 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걸까.

'그러게, 더 잘했어야지'라고 한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마치 수업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이가 '유튜브처럼 재미있게 수업하면 잠을 자겠느냐'며 대꾸하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그렇게 되바라진 아이들이 아직은 소수지만, 스마트폰의 남용으로 인해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라는 건 나만의 억측은 아닐 것이다.

부디 이 글이 무능하고 무기력한 교사의 하소연 정도로 읽히지 않길 소망한다. 반론을 제기해주신 임정훈 시민기자님과 김홍규 시민기자님께서도 학교의 일상을 흔드는 스마트폰의 폐해에 대해선 동의하시리라 본다. 어쩌면 우리는 교육적이고도 실효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데에 '동지'로서 함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지적은 이해하지만... 현실은 너무 절박하다 

우선, '소지는 허용하되, 사용은 제한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학교에서 그렇게 하고 있고, 우려한 대로 온갖 부작용이 터져 나왔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은 물론, 청소 시간에도 스마트폰 화면을 죄다 코를 박고 있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도 책상 속에 몰래 넣어두고 SNS를 하거나 게임을 즐기다 적발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수업 중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아이가 소수이긴 하지만, 그로 인해 수업이 끊기고 친구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스마트폰 화면을 보면서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져 다친 아이도 있었다. 교사마다 낡은 레코드판처럼 쉼 없이 지도하지만, 스마트폰이 주는 재미에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리기 일쑤다.

결국 몇 해 전 등교할 때 수거하고 하교할 때 분출하는 '강제적인' 방식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면 학생인권조례의 규정에 따라 학생회와 학부모 대표 등과도 논의를 거쳐야 했다. 학교마다 의무적으로 설치된 '학칙 제정 및 개정 위원회'를 열어 찬반 토론을 벌였고, 힘겹게 합의를 이뤄냈다.

학교가 인권위의 권고는 무시하면서 아이들에게 교칙을 따르라는 건 이율배반이라는 지적은 백번 옳다. 학생회에서 스마트폰의 강제 수거에 반대 목소리가 컸던 건 맞고, 아이들에게 정해졌으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을러대는 건 분명 반교육적 행태다. 이를 '학교의 폭력과 횡포'라고 질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백 보 양보해서, 강제 수거가 법 위반이고 급변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교사의 무능 탓이라고 할지라도 잠시 멈춰 세워야 할 만큼 현실이 절박하다. '인권위의 권고를 무시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학교가 악용한 것'이라는 지적에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다. 학교 교육의 비민주적 관행에 대한 성토일 테지만, 스마트폰 문제만큼은 예외 삼아주시길 감히 청한다.

오죽하면 밤낮으로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아이로 인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라며 학부모들까지 나서서 소지를 금지해달라고 애원하겠는가. 뻔히 알면서도 왜 사줬냐고 물으면, 갖은 이유를 대며 안 사줄 수 없었다고 말하는 그들과의 실랑이도 이젠 지쳤다. 극소수일지언정 자녀의 반항에 담배까지 사주는 학부모도 있는데, 이게 무슨 대수인가 싶기도 하다.

스마트폰 소지 제한을 두고 학교 민주주의와 민주시민교육을 파괴하는 사례로 적시한 건 견강부회다. 충청남도와 경기도를 비롯해 일부 지방정부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시도에는 결연히 반대하지만, 스마트폰 소지를 허용해달라는 요구가 퇴행을 막는 시금석이라는 점엔 동의하기 힘들다. 개인적으론, 스마트폰이 되레 민주시민교육을 방해하는 걸림돌이라 생각한다.

학교에서 스마트폰이 긍정적으로 활용되는 사례로 소개한 내용조차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건 내 삐딱한 심성 탓일까. 축제 때 스마트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어 친구들과 공유하는 행위는 삼가라고 미리 교육한다. 즐거움을 주는 일일지언정 SNS를 통해 악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탓이다. 드물게는 법적인 문제로 비화한 사례도 있다.

스마트폰으로 세상은 훨씬 편리해졌지만

스마트폰이 없어서는 안 될 소통의 창구인 건 맞다. 학년과 학급 단톡방에 교과별 과제와 공지 사항 등이 안내되고, 의견 취합을 위한 설문 조사 등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아이들이나 학부모들과의 개별 상담 때도 종종 다리 역할을 해준다. 편리할뿐더러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해 긴급한 경우에 특히 유용하다.

그런데, 이마저도 부작용이 있다. 직접 담임교사와 마주하는 조회나 종례 때 경청하는 모습이 현저히 떨어진다. 전달한 내용을 왜 자꾸만 깜빡하느냐고 질책하면, 대뜸 왜 단톡방에 안 올려주셨냐며 되레 반문한다. 하여 조회와 종례를 생략하고 단톡방에서의 만남으로 대체하는 학급도 이젠 드물지 않다.

설령 단톡방 소통이 보편화했다고 해서, 학교에서 스마트폰 소지가 필요하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일과 중 전달할 사항은 직접 만나서 건네면 되고, 그게 훨씬 교육적이다. 단지 편리하다는 이유로 카톡을 상용하다 보면, 결국 아이들은 더더욱 스마트폰만 쳐다보게 될 것이다.

끝으로, 마크 프랜스키의 책 <세상에 없던 아이들>에서 인용한 반론에 대한 의견을 덧붙인다. 지금 아이들을 과거 자신의 학생 시절 아이들과 같다고 생각하는 교사는 없다. 다만, '테크놀로지와 공생하는 강력한 하이브리드형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이 '인간적일' 것 같지 않아 두려울 따름이다.

아이들이 공생할 건 기술이 아닌 인간이며, 자신의 즐거움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세계 시민으로 성장해가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본령이며, 교사의 몫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세상은 훨씬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삶이 행복해졌는지 묻는다면 주저 없이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는 아이들에게도 유효한 질문이다.

#스마트폰강제수거#국가인권위원회#학생인권조례#민주시민교육#세상에없던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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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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