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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를 찾아서 11월 8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체육관에서 열린 '2023 용인시 하반기 일자리 박람회 청년 잡 페어'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서11월 8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체육관에서 열린 '2023 용인시 하반기 일자리 박람회 청년 잡 페어'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경제는 잠재성장률이 1% 후반대에 진입하고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1% 초반대로 떨어지는 등 저성장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GDP 순위는 2020년 10위에서 2022년 13위로 밀려났고, 14위인 호주에도 간발의 차로 쫓기는 형국이다.

중국 충격에 노출된 수출경제는 이제 '불황형 흑자'를 넘어 '불황형 적자'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무역수지 성적표는 더 충격적이다. 2023년 상반기 기준, 세계 208개국 중 200위를 차지할 정도로 참혹한 성적을 거두었다. 저성장 함정에 빠진 한국경제가 코로나 이전의 성장 균형으로 돌아갈 길이 요원한 이유다.

하지만 실업률 성적표만큼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 실업률은 경기 침체의 역풍을 거스르며 올해 10월에 2.1%까지 떨어졌다. 완전 고용을 넘어 아예 실업자가 없는 초(初) 자연실업(natural rate of unemployment)의 경지에 도달했다. 5.1%까지 급락한 청년실업도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한 경이로운 수치다.

이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 일자리는 넘쳐나고, 청년일자리는 고용 활황기에 빛의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더욱이, 정부가 노동개혁을 한다는데 50% 헐값에 노동을 제공하는 비정규직 비중은 마침내 세계 1위에 등극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진짜 이유를 짚어보자.

전국민이 일해야 가능한 실업률 2.1%의 비밀

우리나라 실업률이 경기 침체의 역풍을 뚫고 10월에 2.1%까지 떨어져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5.1%인 청년실업률도 G7 평균 8.7%, OECD 평균 10% 등과 비교조차 하기 어려운 눈부신 수치다. 숫자로만 보면, 한국경제가 자연실업을 넘어서는 고용 활황기를 맞이한 것이다. IMF(국제통화기금) 역시 한국의 역대급 실업률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최근 발간된 IMF의 'Staff Report'에서 비상식적인 한국의 실업률을 'the unusually low unemployment rate(이례적으로 낮은 실업률)', 'significantly below pre-COVID levels(코로나 이전 수준을 크게 밑돈다)' 등으로 표현한 바 있다.
 
 자료 통계청
자료 통계청 ⓒ 송두한
 
실업률 2.1%는 크게 세 가지 요인에서 기인할 수 있다. 첫째는 단순히 취업자가 늘어 실업률이 내려간 경우고, 둘째는 실업자 지표에서 빠지는 '구직단념자'가 늘어 실업자가 줄어드는 경우다. 그것도 아니면, 실업자를 실업자로 부르기 어렵게 만드는 엉터리 실업자 기준 때문이다. 

먼저, 실업자를 실업자로 부르기 어렵게 만드는 엉터리 실업자 기준을 살펴보자. 실업률 2.1%는 노동인구 100명 중 98명이 취업했다는 의미로 사실상 전국민이 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완전고용하의 자연실업 수준도 넘어선 수치다.

우리나라의 실업자 요건은 ILO(국제노동기구) 권고를 따른다고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는 "주당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로 분류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실업자 대부분이 취업자로 분류되는 오류를 피할 수 없다. 미국의 경우와 비교하면 그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일을 하면, 실업자로 분류한다. 미국 역시 ILO의 권고를 따르고 있지만, 그 기준을 매우 합리적으로 적용할 뿐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미국의 잣대인 주당 15시간 기준을 적용하면, 실업률 수치가 대폭 올라갈 것이다. 주당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가 되는 엉터리 기준이 실업자를 적게, 취업자를 많게 만드는 주범이다.

둘째, 실업률 통계에서 빠져나가는 '구직단념자'가 늘어 실업률이 낮아지는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인 5.1%까지 떨어진 청년실업률이 이에 속한다. 구직을 포기한 취포자는 2016년 42만 명에서 코로나 충격이 발생한 2020년에 67만 명으로 늘었다가 지금까지도 60만 명 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구직단념 청년이 늘었는데 청년실업률이 떨어진 것은 앞으로 다가올 고용 한파를 예고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경기 불황의 역풍을 뚫고 달성한 사상 최저 실업률은 떨어지는 칼날과도 같다. 노동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엉터리 실업률이거나 취포자가 늘어 발생하는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 공감하기 어려운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임금격차 등과 같은 고용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넘쳐나는 비정규직, 사라지는 청년일자리

우리나라가 사상 처음으로 비정규직(시간제 및 특수형태 근로자 제외) 비중이 가장 높은 으뜸 국가 반열에 올랐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임시직 근로자 비중은 28.3%까지 올라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 11.8%, 일본 15%, 영국 5.6% 등과 비교하면, 이게 얼마나 높은 수치인지 가늠할 수 있다. 문제는 파죽지세로 번지는 비정규직의 확산 추세인데, 2018년 7위(20.6%) → 2019년 4위(24.4%) → 2020년 2위(26.1%) → 2021년 1위(28.3%)에 올라섰다. 이 정도면 '비정규직 공화국'으로 불러도 지나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레토릭으로 탁상공론을 벌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청년일자리가 속도감 있게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이후 청년일자리 증감 추이를 보면, 문재인 정부하에서 매달 14.5만 개씩 증가했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매달 3.1만 개씩 사라지는 역성장 사이클에 진입했다. 이처럼 청년일자리 지표가 기조적으로 늘어나다 기조적으로 감소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윤 정부의 청년일자리 정책에 대한 재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자료 통계청
자료 통계청 ⓒ 송두한
 
윤 정부의 청년일자리 정책이 난맥상인 이유는 내년도 예산안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실적으로 검증된 청년일자리 정책 예산이 이전 정부의 흔적이라는 미명하에 대폭 삭감되거나 통으로 날아갔다. 돈을 마구 퍼주는 3대 퍼주기 일자리정책을 과감하게 칼질했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설명이다.

기업·청년·정부가 각각 400만 원씩 2년간 적립해 만기시 1500만 원의 목돈을 마련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 예산은 6403억 원에서 2197억 원으로 65%나 삭감되었다. 또한, 청년고용 기업에 인건비 일부를 지원하는 '청년일자리도약장려금'은 27%가, 취업지원 서비스와 구직촉진수당을 지원하는 '국민취업지원제도' 예산은 23%나 삭감되었다. 앞으로가 더 걱정되는 이유다.

청년고용의 가장 큰 문제는 고용 양극화다. 2021년 이후 비정규직 800만 시대에 진입했으며,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 비중은 37%로 취업자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즉, 비정규직이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게 아니라 고용시장이 비정규직 시장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 의제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도 이러한 추세를 막아내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윤 정부의 노동개혁이 시장경제에 기초한 노동시장의 효율화·유연화를 의미하는 만큼 비정규직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자료 통계청
자료 통계청 ⓒ 송두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정신은 비정규직 임금격차 해소

노동개혁의 본질은 고용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며 이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 해소'다.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은 812만 명(전체 취업자의 37% 수준)인데, 이 중 39세 이하 청년 비중이 31.6%를 차지한다. 이처럼 비정규직 문제는 청년세대와 직결된 노동 현안이다.

이들 비정규직 근로자가 제공하는 노동의 가치는 거의 점포정리 수준인 50% 할인율을 적용받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 평균 임금은 196만 원으로 정규직 평균 임금(362만 원)에 견주면 54%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시장가격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규직의 절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영계의 일관된 입장은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은 없고, 시장의 수급이 적정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치자. 노동생산성은 동일 업종에 종사한다고 하더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차이가 10%도, 20~30%도 아니고 50%에 육박한다고 하면, 정규직 근로자조차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에는 비정규직 시장이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매력적인 시장일지 모르지만, 근로자에게는 협상력이 부재한 사용자 시장에서 헐값에 노동을 강요당하기 쉬운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도 비정규직 임금격차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제도나 입법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차별시정제도'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이고, 특정 업종에 국한된 '적정임금제도'는 미봉책에 불과하고, '상생임금위원회'는 있지도 않는 기업의 선의에 의존하는 접근이다. 국회에서도 근로 형태가 다른 근로자를 명시하거나(김형동 의원), 동일가치 개념을 구체화하고(박광온 의원), 또는 도급·위탁·용역·파견 등 간접고용 차별을 제한하는(강병원 의원) 등의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이 법제화를 통해 구현될 것이라고 믿는 근로자는 아무도 없다.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문제는 시장왜곡이 차별을 확대·재생산하는 구조적인 문제다. 따라서 실효성 없는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고수하기보다는 최소한의 적정임금을 제도화하는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근본 대책은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 도입
 
채용 게시판 살펴보는 구직자들 11월 2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메쎄에서 열린 경기도 여성취업박람회 '경기여성 잡 페스타 2023'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채용 게시판 살펴보는 구직자들11월 2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메쎄에서 열린 경기도 여성취업박람회 '경기여성 잡 페스타 2023'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 어떤 경우에도 지켜지지 않는 도룡지기(屠龍之技·용 잡는 기술)에 속한다. 이전 정부가 추진했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도 실패한 정책이다. 비정규직 시장의 확장 억제를 위한 마지막 수단은 유사·동일 업무에 대한 최소한의 임금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을 제정하고, 그 안에 모든 기업이 비정규직의 임금 하한을 정규직의 70% 이상으로 규정하는 '적정임금제도'를 담아내야 한다. 근로 형태에 따른 노동생산성의 차이가 30%를 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설령 노동의 질적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그 차이가 30% 이상이라면,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통상적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다.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은 고사하고, 비정규직의 노동생산성에 50%의 할인율을 적용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둘째, 비정규직 시장의 무분별한 확산을 억제해 약탈적 고용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고용 안전망이 될 수 있다. 유승민 의원이 제안했던 '비정규직 사용총량제'도 이러한 고민을 담고 있다. 물론, '비정규직 적정임금제'는 공공부문에 먼저 시행하고, 정책의 효과성을 판단해 점차 민간부문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일자리 경제는 역대급 고용 지표에 가려져 근간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실업률은 사상 최저 수준인데 비정규직 시장은 세계 1위이고,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가 된다는데 청년일자리는 속도감 있게 사라지고 있다. 기울어진 시장에서 시장경제에 맡기는 노동개혁은 또 다른 실패를 낳을 뿐이다. 정책 실패를 과감하게 인정하고, 국정 기조를 담대하게 전환하는 자세가 필요할 때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송두한은 국민대 특임교수(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입니다.


#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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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한 박사 ㆍ국민대학교 특임교수 ㆍ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ㆍ전) 농협금융연구소 소장 ㆍKDI 경제정책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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