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블루칼라 프리워커>ⓒ 스리체어스
어딘가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일하는 사람. 여섯 프리워커의 인터뷰 기록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현장직 혹은 육체노동을 막연하게 신성시하지 않는다. 일한 뒤 가뿐하게 쉴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해 분투해온 과정과 이를 위해 일머리를 익힌 법을 오밀조밀 알려 준다. 잡부는 '물건을 수평으로 나르는 양중'과 수직으로 나르는 '곰방'을 하는 분들을 뜻한다며, 뜻 모르고 흔히들 "노가다 잡부!" 하며 남발했던 건설 용어의 뜻도 바로잡는다.
건설 현장 정리팀에서 일하는 서은지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눈가가 시원해진다. 어쩌면 뜬금포 같을지도 몰랐을 인터뷰어의 질문 한 가지. 매일같이 작업복 차림으로 일할 그에게 한 번쯤 꾸미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같이 일하는 언니들과 가끔 소고기나 장어 먹으러 가면 그뿐"이라는 답변이 호쾌하다.
인터뷰이 각각의 입담, 자유로운 질문과 답변이 매력인 이 책은 노동을 주제로 한 도서 특유의 경직된 근육을 요가 하듯 말랑하게 다림질해준다. 서은지는 형광봉을 흔드는 신호수, 운전자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지게차 유도원 등 건설 현장에서도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고 일러 준다.
서은지를 비롯해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아람, 스물아홉 목수 김민지, 환경 공무관 노다니엘, 건설 시행사 소속 정우진, 완주에서 농사를 짓는 전남현의 인터뷰는 그래서 '캐쥬얼'하다. 으레 현장직 하면 떠올리는 일용직, 노가다의 애환보다 다 같이 안전하기 위해 건설 현장에서 주의해야 할 점들이나 기술을 터득하고자 어떤 루트로 공부했는지 세세하게 조망한다.
개운하게 집중하고 타성에 젖지 않는 노동
서울시 관악구의 환경 공무관('미화원'이라는 차별적 인식이 만연해 새로 생겨난 명칭이라고 한다)인 노다니엘은 본래 기타리스트였다.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환경 공무관이 되기로 마음먹은 그는 쌀 마대를 등에 지고 동네를 뛰어다니며 체력 시험을 준비해 합격한다. 그렇게 시작한 환경 공무관의 업무는 어떤 식으로 이뤄져 있을까.
그에 따르면 도로변 쓰레기와 낙엽을 쓸어 담는 일을 하는 가로 청소팀, 재활용품이나 폐기물 등을 트럭에 실어 집하장으로 옮기는 지역 수거팀, 옮겨온 것들을 분류하는 집하장팀으로 나눠져 있단다. 그는 재활용 봉투 안에 식칼이 든 것을 무심코 잡았다가 다친 일이 있다며 시민들이 분리수거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하기도 한다. 노다니엘의 인터뷰에서 백미였던 대목을 소개한다.
Q. '환경미화원' 하면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꽤 있다. 합격 소식을 듣고 주변의 우려는 없었는지.
A. …대다수 응원해 줬다. 또 내 입장에선 오히려 불필요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내 관계망에서 거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굳이 내가 만날 필요는 없지 않나.
- <블루칼라 프리워커>(환경공무관 노다니엘과의 인터뷰) 중에서
유튜브 채널 <기타미화원>을 운영 중인 노다니엘의 영상을 한번쯤 시청해 보길. 단정한 환경공무관 복장으로 멋들어지게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뿐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시작'해 어둠을 밝히는 사람들의 출근길을 생생히 볼 수 있다.
마구잡이로 쓰레기를 버리는 시민들이 밉다가도, 거리를 깨끗이 유지하고자 동료와 선배와 쓰레기를 이고 지는 일터 속 긴박함까지 접할 수 있다(최근 함부로 버려지는 '탕후루 꼬치'에 다치는 환경공무원들이 많다고 한다. 다 먹은 뒤 꼬치는 반으로 잘라서 제대로 분리 배출하자).
책 마지막 인터뷰이, 농부 진남현은 1990년생이다. "직장인이 직장 생활을 하는 멘탈을 가지듯, 농부는 농사일을 견디는 몸을 갖게 된다"고 슴슴하게 털어놓는 그는 자본을 들이지 않고 '무자본 농법'으로 쌀과 고추, 배추 농사를 지어왔다. 100만 원 든 현금 봉투와 60리터 등산 가방을 달랑 들고 시골 마을 '너멍굴'로 입성한 그는 석유는 최소한으로, 농약은 아예 쓰지 않는 신조를 갖고 밭으로 출근한다.
최근 '청년 농부' 붐이 일어난 바, 만 평 이상의 땅을 사들여 수익을 창출했다는 성공담이 유튜브에서 흔해졌다. '몇 개월만에 고수익 낸 비결', '〇〇살에 귀농해서 대기업 연봉을 버는 청년' 등 혹하게 하는 타이틀이 각양각색이다. 자연과 농촌에 대한 이해 없이 영상들을 본다면 귀농해서 먼저 할 일이 자본을 갖춰야 한다는 타성에 젖기 십상일 것이다. 농부 진남현은 그런 타성에 작은 균열을 내는 사람이다.
진남현은 인터뷰에서 농사꾼의 발소리를 듣고 작물이 자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인간이 만드는 미세한 진동이 작물의 뿌리를 더 깊게 하고, 작물이 더 많이 자랄 수 있게 하기에 자주 들여다봐야 한다고. 그는 완주 너멍굴에서 아내와 딸과 프리워커로서의 삶을 소소히 이어가는 중이다. 지나치게 치열하기보다 자연 농법으로 일하며 같이 행복해지려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안다는 것
문고판처럼 짤막하지만 한 방이 있는 이 책을 덮고 대관절 생각했다. 몸을 쓰는 일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책상 자리에서 정신을 쓰는 일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중요한 건 이들 여섯 명의 프리워커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것.
단지 적절한 노동의 양을 헤아려봤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의 한계를 안다는 것, 그리하여 '가까스로'가 아닌 꾸준하게 일 안에서든 일 밖에서든 나를 정비하여 내일 가뿐히 문간 밖을 나서는 내 능력의 눈금을 읽을 줄 안다는 것. 농부 진남현의 답변에서 그 힌트를 얻었다.
"육체노동은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만드는 일이다. 결국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많이 배우는 것은 욕심을 덜어내는 일이다. 해가 지기 전에 딱 여기까지만 한다."
- <블루칼라 프리워커>(농부 진남현과의 인터뷰) 중에서
블루칼라 프리워커 - 사무실 밖으로 나간 청년들
이이람, 김민지, 노다니엘, 서은지, 정우진, 진남현 (지은이), 스리체어스(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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