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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의 유족들이 17일 오후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이명춘 변호사로부터 국방경비법 재심 사건과 관련한 설명을 듣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의 유족들이 17일 오후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이명춘 변호사로부터 국방경비법 재심 사건과 관련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윤성효
 
"올해 아흔 일곱이던 할머니께서 지난 일요일(12일) 73년 전 이별하셨던 할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재심 무죄 판결을 몹시 기다리셨는데 끝내 돌아가시고 말았다."

17일 늦은 오후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열린 옛 '국방경비법 위반' 사건 재심 공판에 나온 한 유족이 한 말이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희생자의 손녀 권아무개씨는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입 밖에 내지 않으시고 평생 속앓이만 하다가 가셨다"고 말했다.

권아무개씨의 할머니는 나이 23세에 혼자가 됐다. 할아버지는 28세 때인 1950년 7~8월 사이 창원마산 앞 바다인 괭이바다에서 희생되었다. 할아버지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기도 했다.

권씨의 할아버지를 포함한 희생자 5명의 유족들이 고인을 대신해 낸 재심 사건 재판이 진행된 것이다. 이날 법정에 나온 다른 유족들도 한결같이 "70년 넘게 기다렸다"며 "빨리 무죄 판결이 나야 한다"라고 했다.

당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들은 국민보도연맹 등의 사유로, 정당한 재판 절차도 없이 학살되었던 것이다. 유족들은 정당한 재판 절차가 없었고, 불법 구금이 있었다며 재심 신청했던 것이다.

시아버지가 희생되었다고 한 조아무개(70)씨는 "시아버지는 27세에 희생되셨고 시어머니는 23세에 혼자가 되어 당시 2살이던 저의 남편과 위의 누나, 유복자인 동생을 키우셨다"라며 "하고 싶은 이야기야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슴에 한이 맺혔다. 그동안 집안에 가장 없이 살아온 힘든 세월을 생각하면 너무나 억울하다"라고 말했다.

"특별한 사정 없으면 새해 1월 17일 선고"

이날 재심 재판을 받은 희생자 5명은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 결정이 나면서 재판이 진행된 것이다. 유족들은 진실화해위 결정 이후인 2021년 7월, 창원지법 마산지원에 재심 신청했지만 검찰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재심 신청자 가운데 1명이 이미 다른 사건으로 교도소에 구속되어 있어 불법구금이 아니기에 유족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경찰 등 공무원들이 피고인(희생자)들을 불법 체포·감금함으로써 직무상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이 확정판결을 대신할 정도로 증명되었으므로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재심 사유가 있다고 판단된다"라며 재심개시 결정했다.

그런데 검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고에다 재항고를 했던 것이다. 이에 대법원 제3부(재판장 이흥구, 주심 안철상·노정희·오석준 대법관)가 지난 7월 '재심 개시결정 등에 대한 재항고'에 대해 기각 결정했던 것이다.

이들에 대한 재심 재판은 창원지법 마산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강지웅, 박연주·홍진국 판사) 심리로 진행되었다. 심리는 유족들이 이명춘 변호사와 함께 법정에 들어선 뒤,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재판장은 사건을 모두 병합하자고 했고, 이명춘 변호사가 동의했다. 강지웅 판사는 "이 사건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심 결정이 나서 진행한다"면서 "피고인들이 사망을 해서 유족이 나왔고, 피고인들이 없기에 다른 절차 없이 진행한다"고 했다.

이후 공판검사는 "피고인들은 남로당 조직원으로 괴뢰에 협력한 이적행위가 있다"는 취지의 공소사실을 열거했다. 이에 강 판사는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아 범죄 사실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그러자 이명춘 변호사는 "공소사실을 부인한다"라고 밝혔다. 강 판사는 "이미 제출된 증거 자료 이외에 추가 자료가 있느냐"고 물었고, 이 변호사는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강 판사는 "검찰측은 공소사실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더 찾아보겠다고 했고, 문서 촉탁을 검토하겠다고 했다"라며 속행하겠다고 했다. 강 판사는 "유족들이 계속 나와야 하는 상황이기에, 다음 공판 때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선고를 하겠다"라고 했다.

공판검사는 문서 촉탁 등과 관련해 "시간이 걸릴 것 같다"라고 밝혔다. 다음 공판은 새해 1월 17일 오전 11시 같은 법정에서 열기로 했다.

이날 공판 이후 법정 밖에서 이명춘 변호사는 유족들한테 설명을 해주었다. 이 변호사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관련한 문서는 계룡대, 국가기록원, 진실화해위에 있을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계룡대와 진실화해위 자료는 나왔고, 국가기록원은 워낙 방대한 자료가 있어 아직 알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변호사는 "검사는 공소사실이라고 밝혔지만 범죄행위의 장소라든지 시간이 특정되지 않았다"라며 "검사는 문서 촉탁의 절차를 거치고 싶어하는 모양"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이 국방경비법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은 20여건에 이른다.

#한국전쟁#민간인학살#창원유족#창원지방법원마산지원#국방경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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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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