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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대통령이라는 제도 역시 그 이전의 어떤 것을 모방·변형하여 만들어졌다. '대통령제의 원조'인 미국은 왕이 없는 공화국을 채택했고, 공화국의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은 유럽의 계몽군주를 모방했다.

미국 건국의 주역 중 한 명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은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에서 종신 관직이나 종신 재직권이 쉽게 세습적 상속권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간파했다. 미국에는 세습 방지를 위한 제도가 필요했고, 그 대안으로 '민선 임기제 군주'인 대통령제가 만들어졌다.

독일 정치학자 클라우스 폰 바이메(Klaus Gustav Heinrich von Beyme, 1934-2021)는 미국 건국의 주역들이 유럽의 계몽군주제를 모방하여 국민이 국가 수반과 행정 수반을 겸직하는 계몽군주를 직접 선출하도록 대통령제를 창안했다고 설명한다. 계몽군주제는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의 "군주는 국민의 제1 공복이다"(<반 마키아벨리즘> Anti-Machiavel, 1740)라는 선언으로부터 시작되며, '신과 왕의 나라'에서 '백성의 나라'로 전환되는 새로운 시대를 의미한다.

대통령제의 양면성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은 삼권분립과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든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은 삼권분립과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든다. ⓒ 참여사회
 

미국과 같이 영토와 인구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국가 수반과 행정 수반을 겸직하도록 해서 권력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국민통합을 추구할 수 있다. 반면 영토와 인구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에 대통령제가 적용되면 과도한 권력 집중으로 인해 제왕적 권력이 등장할 위험이 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은 삼권분립과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든다. 한국 헌정사를 보더라도 ▲ 대통령 친인척이나 측근의 권력형 부정부패로 '실패한 대통령' 양산 ▲ 승자 독식의 권력 구조로 인한 정치 갈등 심화 ▲ 경쟁과 타협이 아닌 '전쟁 정치'의 만연 ▲국정의 마비와 예산의 낭비 등이 반복되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현재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보면, 한국식 대통령제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지 확인된다.

이처럼 대통령제는 '권력 독점에 대한 공포'와 '국민통합의 상징'이라는 양면을 동시에 지닌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은 대통령제를 기피했다. 19세기에는 언제라도 왕정으로 복고할 수 있다는 공포가 있었고, 20세기에는 새롭게 등장한 광신적 나치즘과 파시즘으로 인해 더욱 권력 집중을 피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전 정부는 미군정 하에 만들어진 권력 구조(제1공화국)이거나 군사 쿠데타에 의한 독재 체제(제3~5공화국)여서 대통령제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분석·평가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 따라서 대통령제에 대한 평가는 민주화 이후 시기가 그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전두환 정부(제5공화국)는 유신헌법(제4공화국)을 변형하여 대통령 간선제와 7년 단임제를 뼈대로 하는 대통령제를 도입했다. 국민에 의한 직접 선출의 길은 막혔고 대통령은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다가 1987년 독재에 저항한 국민의 민주화 투쟁으로 헌법이 개정되고 권력 구조도 개편되었다. 민주 세력과 신군부 세력 간의 정치적 타협으로 임기를 7년 단임에서 5년 단임으로 줄이고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꿨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의 성과로 탄생한 현행 한국형 대통령제에서도 '실패한 대통령'이 양산됐다.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 집중과 단임제로 인한 조기 레임덕이 중첩·교착된 결과다. 대통령 선거 시기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중단시킬 헌법 개정'이 단골 메뉴처럼 공약으로 등장했지만, 대통령들은 매번 당선되고 나면 권력 집중이라는 달콤함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항상 조기 레임덕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절대적 대통령제(absolute presidentialism)', 남미의 '슈퍼 대통령제(super-presidentialism)'와 유사한 수준으로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고 평가된다. 한국 대통령은 국가 수반과 행정 수반을 겸직하는 것뿐만 아니라 비상대권1)(선전포고권·계엄선포권·긴급재정‧경제명령권·긴급명령권 등), 헌법 개정 발의권, 국민투표 부의권, 입법 거부권, 법률안 제출권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광범위한 인사권을 갖고 공권력도 장악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를 상상하라

따라서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는 분권의 방향을 명확히 하고, 국민 자치권과 국회의 권한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핵심 내용이라 할 것이다.

우선, 군주도 대통령도 없이 국회의원에 의해 국가를 통치하는 순수 내각제는 국가의 상징적 중심을 확고히 세워야 하는 공화국에는 적용되기 어렵다고 본다. 특히 한국과 같은 휴전 상태의 분단국가에서 군 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의 위상은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은 것도 이런 연유다.

결국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을 통해 정부 수반과 행정 수반을 분리하는 분권을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즉, 국민이 신뢰·존중하는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외치를 담당하고, 총리가 계층·세대·지역·이념·이슈가 갈등·충돌하는 내치를 담당하는 제도를 도입해 정치 안정을 꾀하고 국민통합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개헌을 통해 새롭게 도입될 분권형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은 통일부·외교부·국방부·국정원 등 외교 안보 부서를, 총리는 나머지 부서를 책임진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가수반으로서 총리지명권, 외교권(인사권·외교정책권), 군통수권(군지휘권·동원권·인사권), 비상대권, 국회소집권 또는 국회해산권, 법률안거부권, 대법원장 및 일부 대법관·헌법재판관 임명권, 사면권 등을 갖는다.

그리고 국회는 현 권한에 더해 총리와 장관에 대한 신임·불신임권을, 총리는 행정수반으로서 관할 행정 각부의 장관 임명권을 포함한 조각권과 외교 안보 부처를 제외한 국정 통할권을 갖는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의 권력을 분할·축소하지만, 오히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권위는 높여줄 것이다. 대통령이 정쟁의 한복판을 떠나 국민의 미래와 국익을 위한 임무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권형 대통령제의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존중받는 국민통합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제도 만능주의를 비판하며, 개헌을 하기에는 국민적 합의와 정당 간 타협을 이루기가 매우 어려우니 다른 방법으로 대통령 권력을 축소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헌법에 의해 보장된 '흘러넘치는 권력'을 미봉책으로 막을 수 없으며, 개헌을 통해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한 일부 학자들은 정부 불안정의 원인으로 제기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대통령의 선의와 정치문화의 변화를 통해 해소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법치가 아닌 인치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근대적 방식이다. '국민 자치의 확대와 분권의 심화'를 전제로 삼고 헌법과 법률을 통해 대통령의 권력을 축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번 대통령의 선의와 정치문화의 변화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러한 바람이 무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현직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서 목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제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제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입법은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정부 입장과 다른 법률은 시행령으로, 대통령의 뜻과 다른 조직·단체·인물은 수사·감사·조사와 예산 삭감으로 대응하면서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얼마나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한가? 권력 남용으로 전직 대통령이 탄핵당한 지 6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이 각각 다수 유권자 연대를 구성하려고 노력했던 이유는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DJP 지역연합2)의 방식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연정의 방식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 또한 유사 방식의 대연정으로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다수 연합정치를 추진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개헌을 통한 제도적 정치연합이 불가능한 조건에서 대통령의 권력 일부를 각 정치세력이 일시적·편법적으로 분점하는 교환에 의해 추진되었다. 그렇다면 그때그때 임시방편이나 정무적 판단에 따라 권력을 나눌 것이 아니라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 분산을 제도화하는 것이 상식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새로운 정치를 상상하라는 것, 두려워하지 말고 실천하라는 것이 국민의 요청이다. 우리는 매번 실패한 대통령이 아니라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1) 국가 비상 사태에 대통령이 평상시의 법치주의에 의하지 않고 특별한 비상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
2)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 당시 김대중을 필두로 한 새정치국민회의와 김종필을 필두로 한 자유민주연합이 공동 여당의 목표를 가지고 결성한 연합을 뜻한다. 이 연합이 성공하면서 국민의 정부가 출범했다.

 

덧붙이는 글 | 글 김종욱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10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제왕적 대통령제#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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