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청사
김병기
환경부는 현재의 피해구제법 심사 절차인 1단계 신속심사 → 2단계 개별심사의 과정 중에서 폐암을 1단계 신속심사에 포함시키지 않고 2단계 개별심사로만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는 간질성폐질환, 천식, 폐렴 등 지금까지의 인정질환과 차별되는 조치다. 신속심사는 피해심사 과정이 몇 년씩 너무 지체되어 피해자들의 원성이 자자하자 두 번째 피해구제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만든 절차다. 예를 들어, 천식의 경우 가습기살균제 사용 중 혹은 사용 후 5년 이내에 발병한 경우 국민건강보험 기록에서 확인되면 자동으로 인정하는 식이다.
제품 사용은 신고 과정에서 대면조사를 통한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하고 질병 이력은 보험기록으로 확인하기 때문에 구제인정 절차가 매우 빠르게 이뤄진다. 이 신속심사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신고자 7859명중 64%, 5041명이 피해구제 대상으로 인정되었다. 만약 이 신속심사과정에서 인정되지 않으면 개별적인 심사과정을 거치는데 이 경우 신속심사보다 오래 걸리고 인정률이 현저히 낮아진다.
반복되는 '비특이적 질환' 논쟁
환경부는 폐암을 신속심사로 하지 않는 이유로 "환경적, 유전적 요인에 따른 폐암 발생과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폐암 발생을 구분할 수 없으므로, 개별 피해자의 폐암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것임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개별심사를 통한 의학적 검토가 불가피"라고 보도자료에 밝히고 있다.
이 글의 앞에서 언급한 법원의 '개별적 인과관계'와 같은 내용이다. 또 지난 10여 년 동안 천식, 폐렴, 간질성폐질환 등 가습기살균제 구제질환의 인정 과정에서 계속 반복되어 온 그 '비특이적 질환' 논쟁과 똑같은 내용이다. 피해구제위원회와 폐암소위원회에 참여하는 의학 전문가들과 행정관료들은 학습효과가 전혀 없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보수적인 정부로 바뀌어서 정권과 기업의 눈치를 보는 것인가.
폐암에 대해 신속심사를 하지 않고 개별심사를 한다는 환경부의 방침은 2017년에 제정되고 두 번 개정된 피해구제법의 입법 취지는 물론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지혜를 싹 무시하고 구제법 제정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속심사를 하지 않고 개별심사로만 진행한다면 이전과 같이 폐암 피해자들은 다시 수년 동안 판정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며 흡연, 고연령 등의 이유를 빌미로 불인정되는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된다. 참고로 직업성 폐암의 경우 흡연자, 고령자라고 하더라도 벤젠, 석면 등 폐암발암물질에 노출된 직업력이 있는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한다. 왜 환경성 피해자들은 여러 가지로 차별받고 힘든 이중의 고통을 또 겪어야 하는가.
폐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관계자들은 적극 고려하기 바란다.
첫째, 가습기살균제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임상 사례가 충분하고, 동물실험 및 폐세포독성실험 결과가 나와 있다. 폐암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해 '역학적 상관관계'를 확인하고 폐암을 신속심사 대상으로 포함해 인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간질성폐질환, 천식, 폐렴 등 이미 관련성이 확인된 질환들과 동일하게 폐암에 대해서도 신속심사와 개별 심사의 단계를 모두 거치도록 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