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6 06:44최종 업데이트 24.06.26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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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9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 아산홀에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주형환 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 대통령실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했다. 고령화와 저출생, 국가 소멸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향한 정면 돌파 의지가 느껴진다. 아무리 수많은 예산을 쏟아부어도 개선되지 않던 저출생 문제가 이번에는 해결될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출생률 관련 정책에 전혀 공감이 안 간다. 삶의 형태는 변하지만 정책은 한결같이 외길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육아가 힘든 원인도 다양할 터인데, 국가는 그저 '돈 더 줄 테니 얼른 자녀 낳아'라고 다그치는 것 같다. 


취업난, 각자도생, 내 집 마련이라는 냉혹한 현실에서 결혼과 출생을 향한 시선은 싸늘하다. 근속 가능한 연수는 점점 짧아지는데 기대수명은 오히려 늘어났다. 가족을 돌보기는커녕 나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국가비상사태를 운운하며 출생률 증대를 호소하는 것은 얼마나 공허한가.

저출생 공약에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정책이 있다. 바로 육아휴직제도이다. 대통령은 출생률이 낮은 가장 큰 원인이 낮은 육아휴직 사용율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도 육아휴직 정책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육아휴직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생계였다. 육아휴직자는 월 최대 150만 원의 육아휴직 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75%인 112만 원만 수령할 수 있었다. 나머지 25%는 '사후지급금'이라고 해서 복직 이후 6개월을 근무해야 받을 수 있다. 당장 돈이 필요한 건 복직 이후가 아닌 휴직기간이었는데. 

2023년 최저임금 적용 기준 1달 급여는 206만 원이다. 최저임금 기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육아휴직급여 112만 원으로 4인 가족이 생활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생존을 위해 휴직 기간 내내 단시간 일자리를 알아봐야 했다. 기존에 일을 하지 않았던 아내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림에 힘을 보탰다. 

앞으로는 육아휴직을 쓸 경우 월 112만 원이 아닌 월평균 192만 5000원의 육아휴직 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던 사후지급금도 폐지되어 기존 육아휴직에 비해 제법 개선된 느낌이다. 하지만 매달 192만 원의 육아휴직급여를 준다고 해서 출산 계획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자녀를 가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육아휴직급여를 지급하는 주체는 국가이지만 노동자가 속한 곳은 기업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육아휴직 사용률을 높이기는 쉽지 않다. 대체인력이 채워지지 않을 경우 회사는 피해를 입지만, 국가는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책임을 질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공백을 대체하지 못할 경우 새로운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은 구성원 모두에게 부담을 준다. 정부는 휴직으로 인한 대체인력 채용을 위해 직원 1인당 월 120만 원의 대체인력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대체인력은 기존 인력보다 생산성과 숙련도가 떨어진다. 처리되지 못한 일은 고스란히 다른 직원들이 떠맡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육아휴직을 써야 한다고 주구장창 외치고 있다.

실행 가능성 없는 일방통행 정책
 

서울의 한 공원에서 어린이집 교사와 아이들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 연합뉴스

 
'e-나라지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는 563만 2000명으로 인구의 약 10%, 전체 취업자 중 20.1%를 차지한다. 이들 중 75.8%인 426만 7000명은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들이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윤을 남기는 구조는 기업뿐 아니라 자영업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직장인들과는 달리 이들은 육아휴직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들쑥날쑥한 매출, 휴일 없는 일상, 자녀 돌봄에 취약한 이들의 삶은 '출산'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자영업자가 많은 산업구조임을 감안한다면, 지금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육아휴직'보다는 자영업자를 도울 수 있는 정책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양육과 돌봄 정책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국가는 직접 양육을 책임지는 '퍼블릭 케어'를 시행하겠다고 한다. 5세 이하 아이들에게 무상교육과 보육을 확대하고, 2026년부터는 학년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이 늘봄학교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이다.

출산율 감소로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가 실시간으로 문을 닫고 있다. 수익은 낮으면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소아과는 모든 의사에게 외면받는다. 한 기사에 따르면, 현재 전국 250개 시·군·구 중 22곳은 산부인과가 아예 없다고 한다. 산부인과는 있지만 분만이 불가능한 시·군·구는 50곳에 달한다고. 

열악한 분만 환경은 곧 원정 출산으로 이어진다. 알람 시간을 맞춘 것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아이가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부모는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출산을 위해 해외로 가야 할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낳을 수 있는 최소한의 병원도,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칠 인력도, 아이가 아플 때 치료를 해줄 의사도 부족한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서 국가가 직접 양육을 책임진다는 것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무공감은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실행 가능성이 없는 일방통행 정책은 아무런 힘이 없다. 투입되는 예산은 늘어나지만 출생률은 오히려 떨어진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출산 강요보다는 살기 좋은 나라가 우선
 

지난 2월 28일 분기 출산율이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지며 저출산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 등 관계자들이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통계청 '2023년 출생·사망 통계'와 '2023년 12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명으로 전년(24만 9200명)보다 1만 9200명(7.7%) 줄어들며 지난해에 이어 또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졌다. ⓒ 연합뉴스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이 바보인 걸 알아야 해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순간 앎이 시작되거든요."

유시민의 말처럼,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무지할 수 있다. 모르면 물어보거나 배우면 된다. 관련된 책을 읽거나 권위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대통령도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일방통행으로 정책을 만들고 국민과 소통한다면, 저출생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전무해 보인다.

만약 진심으로 '국가 비상사태'를 해결하고 싶다면, 지금과 같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해외순방보다는 국민들에게 더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왜 대한민국 미래는 희망이 없다고 하는지, 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언제부터 결혼과 출산이 외면받는 게 당연한 나라가 되었는지, 어린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이 어떤 세상을 바라는지. 

사실 이런 글을 쓰는 적합한 주체는 저출생과 가장 밀접한 당사자인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 사안에 대해 남자인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고, 할 말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글을 쓰는 시민기자들에게 이런 내 생각을 말했다. 웬걸, 그녀들은 이 글은 아빠인 내가 무조건 써야 한다며 한사코 우겼다. 

왜 출산의 주체인 여자가 글을 쓰는 건 안 되고 남자인 내가 글을 써야 하냐고 물었다. 이해가 안 된다는 나의 질문에 이런 답변이 달렸다. 

"아무리 대한민국 최상류 학부를 나오거나 관련 전공자라 하더라도 여자가 이 주제로 말하면 욕받이가 돼요. 저출생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는 여성이지만, 여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 '페미년'으로 치부되죠. 반면 기혼 남자나 아이 아빠, 또는 미혼 남자가 출생률 관련 이야기를 하면 그래도 사람들이 듣기는 하거든요."

여성은 건강과 커리어, 미래를 포함한 자신의 삶 전체를 쏟아부어야만 출산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속절없이 낮아지는 출생률은 자신의 삶과 출산을 맞바꾼 여성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국가 비상사태'를 외치는 것은 '출생률 개선'이 아닌 '국가소멸'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행동이 아닐까.

두 자녀의 부모로서 내가 바라는 국가의 모습은 최소한의 복지가 제공되는 나라이다. 소득의 크기나 사는 지역에 상관없이 어느 곳이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원정 출산이 아니라도 분만이 가능하고, 아이가 아플 때 갈 병원이 있으며, 어디에 살든 보육시설과 학교가 있는, 매일 부모가 자녀 돌봄의 공백을 걱정하며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초저출생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이 반드시 버려야 할 대상으로 '경쟁'을 꼽는다고 한다. 아이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20년간 학업에 시달린다. 운 좋게 입시경쟁에서 승리한 이들은 더욱 고난도 코스인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한경쟁이 이어지는 삶이라면, 결혼과 출산을 해야 할 당위성을 찾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지 않을까.

저출생 공략이 조금이라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돈이 아닌 삶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 같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내가 행복하지 않은 세상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부모는 없으니까. 가정과 학교, 일터에서 자녀와 부모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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