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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흔히 인생과 같다고 합니다. 사춘기 딸과 야구 직관을 가며 또는 야구 경기를 보면서 느낀 점을 글로 남기고 싶습니다.[기자말]
9월 14일, 오후 2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2024 신인 드래프트가 열렸다. 일정을 체크해 보니 오전 미팅과 오후 일정 사이에 시간이 빈다. 오후 2시면, 카페에서 방송을 볼 수 있겠구나. 이건 드래프트를 보라는 일정이네! 당일 아침부터 괜히 내가 설랬다.

이번 드래프트 대상자는 고교 졸업 예정자 782명, 대학교 졸업 예정자 296명, 해외 아마 및 프로 출신 등 기타 선수 5명 포함 1083명이다. 그러나 각 구단에 지명받는 인원은 단 110명. 약 10%밖에 되지 않는다. 해당 선수 중 드래프트 행사 자리에 초대받아 온 선수는 30명 남짓이다. 바늘구멍이 따로 없다. 프로 구단에 가게 되면 1군에서 뛰기 위해 더 작은 구멍을 통과해야겠지.

매년 드래프트가 임박해 오면 전문가들이 분석한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 예상 순위가 기사로 뜬다. 어느 구단이 어떤 선수를 지명할 거라는 예상이 기사별로 거의 비슷하다. 전 시즌 순위의 역순으로 추첨하기 때문에 지난 시즌 최하위 한화가 1순위 지명권을 행사한다. 1라운드부터 총 11라운드까지 순서대로 진행된다.

모두가 바란 선수의 지명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1라운드 지명이 시작됐다. 각 구단 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를 발표하면 해당 선수가 무대로 나온다. 단장은 선수에게 유니폼을 입혀주고 선수를 지명한 이유를, 선수는 소감을 말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다. 1라운드 지명은 기사 내용과 거의 일치했다.

긴장하는 선수들의 모습.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말하는 목소리. 카메라는 어김없이 선수의 부모님을 비추고 부모님의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어떻게 안 울 수 있을까. 야구하며 쉽지 않았을 선수들의 시간, 힘들게 뒷바라지했던 순간들이 선수와 부모님의 머릿속에서 촤라락 펼쳐지겠지. 아마 그 시간들을 보상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아무 관계가 없는 나도 몇 번이나 울컥했다.

1라운드 지명이 중간쯤 지났을 무렵 딸에게 전화가 왔다. 시간을 보니 학교가 끝나 집에 올 시간이다.

"엄마! 지금 신인 드래프트 중이야?"

역시 오늘도 야구 얘기부터 꺼낸다.

"응. 지금 1라운드 지명 중이야."
"으악, 빨리 집에 가야겠다, 알았어!"


알고보니, 현장에 초대받은 고등학교 선수 중 남편 지인의 아들이 있어 남편도 집에서 드래프트 중계를 보고 있다. 어쩌다 온 가족이 이렇게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난 1라운드 지명 때 무대에 나온 선수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정말 원하는 구단에 간 것인지 아니면 다른 구단에 가고 싶었는지 알고 싶었다. 선수들은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는 구단에 가야한다. 선택권이 없다. 예전엔 프로 구단에 가게 되는 게 어디야, 하고 생각했는데 분명 아쉬운 선수가 있을 것만 같다. 성적이 좋지 않은 팀에는 가기 싫지 않을까?

남편에게 이 말을 하니, 선수들은 의외로 못 하는 팀에 가기를 원한다고 했다. 못 하는 팀에 가야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맨날 1, 2등 하는 팀에 가면 1군이 탄탄해서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단다. 아, 거기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신인 드래프트 생각보다 재미있더라!"

저녁을 먹는데 딸이 말했다. 아이가 그렇게 재미있어 할 만한 포인트가 없었을 텐데 이상하다. 2라운드부터는 선수 소감을 발표하는 것도 없고 선수 이름만 말하고 빨리 넘어가는데.

"어떤 점이 재미있었는데?"
"지명이 늦게 된 선수가 한 명 있었잖아. 카메라가 계속 그 선수 비춰서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몰라. 아빠랑 계속 이름 불려라, 불려라, 하고 응원했었거든. 그 사람 이름 나왔을 때 정말 너무 좋았어. 나도 울 뻔 했다니까."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2024 KBO 신인드래프트. NC 다이노스에 지명된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3.9.14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2024 KBO 신인드래프트. NC 다이노스에 지명된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3.9.14 ⓒ 연합뉴스
 
맞다, 오늘 드래프트 행사에서 의외로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 있었다. 행사 장소에 초대된 선수 30명 중 한 명, 장충고 원종해 선수가 계속 지명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유니폼을 입고 온 선수들이 하나 둘 프로 구단 유니폼으로 갈아 입는데 그 선수는 고등학교 유니폼을 입고 있다. 결국 나중엔 혼자만 고등학교 유니폼을 입고 앉아 있게 됐다.

2라운드, 3라운드, 4라운드, 5라운드……. 카메라는 노골적으로 그 선수를 비춘다. 위에서, 옆에서, 앞에서 줌으로 당겨서 선수의 얼굴을 보여준다. 선수의 긴장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보는 사람이 다 힘들지경이다. 그러다 드디어 7라운드에서 NC의 픽을 받았다.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모두 한 마음으로 그 선수의 지명을 바랐던 것이다.

행사장에 있던 선수 중 마지막 지명을 받아 특별 인터뷰도 했다. 선수 아빠에게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고 하니 아들을 보고 울컥하시며 '고맙다'란 한 마디를 하셨다.

나의 초심도 떠올리다

사실 지명 순서가 프로에서의 실력 순서는 아니다. 지금 롯데의 1군에서 뛰고 있는 유강남 선수는 2차 7라운드 지명, 이정훈 선수는 2차 10라운드 지명이었다. 오늘 프로 구단에 지명된 110명 선수 모두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파이팅하면 좋겠다.

행사 시작전, KBO 허구연 총재가 이런 인사말을 했다. 초심을 잃기가 쉬운데 선수들 모두 오늘의 초심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 그리고 오늘 지명받지 못하는 선수도 또 다른 길이 있을 수 있으니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

오늘은 새로운 하루, '일하기 싫다'라는 말을 뒤로 하고 나의 초심을 생각한다. <오마이뉴스>에 보낸 기사가 처음 포털 사이트에 떴을 때, 그때 나도 울뻔 했었지. 신인 드래프트 뭐가 재밌을까, 했는데 많은 청춘들의 초심을 마주한 뜻깊은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라갈 예정입니다.


#2024KBO신인드래프트#장충고원종해#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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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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