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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 대산읍 웅도리 '유두교'
 서산시 대산읍 웅도리 '유두교'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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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 가로림만 웅도리. 이곳에는 주민들이 드나드는 유일한 다리 유두교가 있다. 하루에 두 번 물이 빠져야 비로소 건널 수 있도록 출입을 허락해 주는 유두교. 웅도는 가로림만 내해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서산시 대산읍의 7개 도서 중 유일한 유인도서지역이다. 

곰섬자를 딴 웅도(熊島)는 서산 북쪽에 위치한 섬으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곰이 웅크리고 앉은 형태라 하여 웅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본래 서산군 지곡면 관할이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썰물일 경우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대산면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됐다.

웅도리 주민들은 길이 500m, 폭 5m에 가드레일을 설치한 콘크리트 포장 다리 '유두교'를 건너다니며 삶의 터전을 일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모개섬과 웅도를 잇는 것은 유두교 대신 징검다리와 돌다리뿐이었다. 

돌살 형식으로 큰 돌을 쌓아 물때에 맞춰 사람이 통행하던 때에는 외부에 나갔다가 미처 물살을 피하지 못하고 휩쓸리는 사고를 당하는 이들도 많았단다. 피해자들 중에는 중고등학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민들은 "일주일 내내 자취나 하숙을 하다 주말이면 부모님이 계시는 웅도로 들어오다 미처 물살을 피하지 못하고 일어난 사고"라며 "작은 걸음이 물살을 피하지 못하고 휩쓸리는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슬픈 사연이 서린 유두교"라고 했다.

현재 웅도는 서산시 4개 유인도서 중 유일하게 진입로에 폐쇄형 유두교가 설치되어 있다. 이 때문에 해수소통이 차단돼 갯벌퇴적 및 수산생물 감소 등 생태환경 문제가 야기됐다. 하지만 몇 해 전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총사업비 250억 원을 투입해 진행하는 웅도 갯벌생태계 복원사업(그린뉴딜사업)에 선정되면서 웅도로 들어가는 폐쇄형 유두교를 개방형 교량으로 교체할 계획이다. 즉, 해수를 소통시킴으로써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방안이다. 

웅도 갯벌생태계 복원사업으로 과거 갯벌로의 복원은 물론, 수산자원 증대 및 생태관광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됨과 동시에 주민들의 애환이 가득한 유두교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어업과 농업을 겸하고 있는 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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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개무지가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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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도리 취재 당일, 주민에게 물때를 확인하고 이른 아침부터 국도 29번을 달렸다. 무더위가 창문 안으로 훅 밀려들어 왔다. 대산읍 내 농협에서 웅도리로 핸들을 돌렸다. 얼마 달리지 않아 신비의 다리 유두교를 만났다. 

그날따라 자전거 라이딩족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몽환적인 모습과 하루 두 번 출입을 허락해야 들어갈 수 있는 신비의 섬을 바라보기 위해 유두교를 달리며 연신 카메라에 아름다운 풍경을 담았다. 

드디어 목적지 웅도리에 도착했다. 이미 주민들은 해변정화활동을 위해 바닷가로 떠난 후였다. 동네 이장님네 앞마당에 모아놓은 조개무지가 햇살에 반짝였다. 그 옆 텃밭에는 해풍 맞은 채소들이 풍성한 식탁 위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웅도 주민 대부분은 어업과 농업을 겸하고 있다. 특히 주민들은 드넓은 청정 갯벌에서 나는 낙지와 굴, 바지락 등을 채취하기도 한다. 해산물이 지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건 1984년 대로1리 유두머리와 모개섬을 잇는 제방이 만들어지면서 부터다. 제방이 생긴 뒤 해산물 유통구조가 좋아지고 관광객 접근성도 용이해지면서 지역 경제도 활력을 띠었다. 

비릿한 바다 내음 대신 습한 바람이 코끝을 적셨다. 지난밤 물때를 확인하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잿빛 갯벌이 넓게 펼쳐진 웅도리 바다는 그날따라 갯골이 쭉쭉 이어져 장관을 이뤘다.

6.25 전쟁 때 인민군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섬 웅도였지만, 꼭꼭 감춰진 이곳도 세월의 무게에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바람에 맞서 견고하게 세워진 콘크리트 건물 하며, 뻘로 나갈 때 사용하기 위해 집집마다 있었던 소달구지 자리는 자동차가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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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빠진 웅도 "유두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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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도리→징검다리→머개섬→돌다리→대로리'

드디어 파란 조끼에 주름진 손으로 열심히 해안가를 청소하고 있는 주민들을 만았다. 어르신들은 뜻밖의 손님을 맞기 위해 바닷가 그늘진 곳에 자리해 주었다. 아픈 사연들이 있음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삶을 헤쳐나가는 웅도리 주민들을 보면서 괜히 가슴속이 얼얼해졌다.

주민 한 분이 물 빠진 자갈 위에 종이 한 장을 펼치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모서리마다 돌로 받쳐놓았다. 하얀 종이 위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웅도리→징검다리→머개섬→돌다리(길이 약 100m)→대로리'
약 50년 전 이야기.
사람도 많이 죽었음.
"웅도에서 대로리로 나무"
옛날에는 땔감나무가 없어서 징검다리를 건너다니면서 땔감 나무를 했다. 원인은 송충이 벌레가 소나무 잎을 다 갈아먹어서. 바람이 불면 징검다리를 건너기가 힘들었다.


과거 웅도 섬주민들은 소나무재선충병으로 땔감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위험한 다리를 건너 먼 곳까지 가서 땔감을 구해왔다. 하지만 무거운 땔감을 지고 오기에는 '징검다리'와 '돌다리'가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주민들이 돌을 주워서 하나하나 쌓아 올린 '돌다리'지만 사리때가 되면 센 파도에 여지없이 밀려가거나 내려앉아 허물어져 버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추운 겨울 대산읍내에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이었어. 돌다리를 먼저 건너고 징검다리를 건너서 집으로 가야 하는데 돌다리에 이미 물이 찼더라. 춥기는 춥고 큰일났지. 그런데 언제 (물이)빠질지 모르니 집에는 가야잖아. 용기 내서 돌다리를 건넜는데 그만 센 물살에 빠져버렸어. 손을 짚었지. 그때 눈을 들어 앞을 보니 물이 어른어른 거려서 어지럽더라고, 또 중심을 잃었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손에는 구두가 있는데 다른 한쪽 구두는 물살에 떠내려가 버리고 없더라고. 엉금엉금 기어서 나왔어. 그런데 문제는 돌다리는 건넜다 치더라도 머개섬에서 웅도리 섬으로 들어가는 '징검다리'야. 더 큰 일이지.

(징검다리)보니 벌써 물이 찼더라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별 수 있간. 또 억지로 건너기 위해 (물)들어갔어. 거의 다 건너고 이제 3m 정도 남았을까 힘이 빠졌는지 그때부터는 발이 안 떨어지더라고. 억지로 (건너)왔지. 그때 그냥 있었으면 얼어 죽었어. 나와서 보니 손바닥에 피가 줄줄 나. 안 죽고 살려고 안간힘을 쓴 거지.

그때는 나무 때던 시절이라 이불도 변변히 없었잖어. 막상 살아 돌아오니 그때부터는 추워서 덜덜 떨었던 게 생각나네. 우리 그렇게 살았어. 저~~기 보면 대로리 머개섬 앞에 할미섬이라고 쪼끄만 섬이 있잖어. 거기를 뻘에 빠지면서도 돌아서 걸어 다녔어. 벌써 60년 정도 됐네."


A씨는 당시를 생각하며 긴 한숨을 쉬었다.

"바다에 빠진 것은 어른뿐만 아니고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어. 나도 목격했지. 물이 들어오면 (사람이)넘어도 가고, 차도 떠내려가고. 지금은 당시 그런 일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을 찾으려고 해도 힘들거여. 지금 (동네 일 보는)젊은 사람들이 알 수가 있나 모르지. 외지분들도 놀러 왔다가 죽은 사람이 많은디. 다리 건너다가 그냥 떠내려가는 거지 물빨 세서. 사연이 많아. 그 다리로 상여도 참 많이 나가고 했지."

파도가 심상치 않은 걸 보니 여우비가 내릴려나 보다. 멀리 산 그림자가 옅어지더니 하늘이 변하기 시작했다.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렸다. 가슴에 파도가 치는 듯 울렁거렸다.

※이 취재는 2023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 육성 지원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태그:#웅도유두교의눈물, #신성한섬웅도, #웅계후손들, #숨겨진슬픔, #아름다움속에깃든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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