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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사근로자법' 개정 반대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가사근로자법' 개정 반대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 한국노총 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 유니온
  
그동안 사적 영역으로 치부되어온 돌봄과 재생산 영역에 이주 가사노동자 확대 도입이란 뜨거운 쟁점이 부상했다. "최저임금 적용 없앤 月 100만 원 외국인 도우미 도입", "월급 100만 원이면 한국서 일할 외국인 많아", "동남아 도우미 오면 내 꿈 실현 가능" 등 언론 보도도 요란하다.

그나마 여성 노동계의 항의를 의식해서인지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말자는 목소리는 작아졌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운영 중인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적극 검토하라고 국무회의에서 주문하는 등 그 움직임은 여전하다.

자본과 국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그들의 주장은 몇몇 정치인의 즉흥적 브레인스토밍이 아니다. 이미 2017년에도 비슷한 얘기를 하는 기사가 실렸던 바 있다. 그들은 일관되게 이주 여성들에게는 일자리가 생겨서 좋고, 국내 여성들은 가사와 돌봄 부담을 덜기에 '윈-윈'이며 저출생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라 얘기한다.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 확대의 여러 문제

먼저 사용자 여성의 입장에서 보자. 많은 재생산과 돌봄 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일이다. 맞벌이 부부의 모습은 '표준' 모델이 되었지만, 한국 기업들은 전혀 가정 친화적이지 않다. 2021년 기준 한국 임금노동자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남성 170.4시간, 여성 155.4시간이다.

여유롭게 가정을 돌볼 만큼 짧은 시간이 아님에도, 여성은 가사 노동에 더 오랜 시간을 할애한다. 2019년 통계청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평일 기준 여성은 평균 3시간 10분, 남성은 평균 48분을 가사노동에 사용했다.

이러한 상황 속 여성이 노동시장의 주변부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남성과 똑같은 수준의 장시간 노동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가정에서, 적지 않은 비용을 들이며 가사도우미를 고용한다.

그렇다고 '저렴한' 비용으로 저소득 국가 출신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건 미봉책에 불과하다. 한국 자본은 이미 노동력을 재생산할 시간 여유도 부족할 정도로 노동력 착취가 노골적이며, 날로 양극화되어 가는 사회경제 구조 속에서 계급 재생산을 위해 경쟁적으로 투자하는 사교육비 등도 무시하기 힘든 수준이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하여 이주 가사 노동자들의 손길이 절실한 국내 가정들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월 100만 원도 지급하기 힘든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은 여전히 돌봄 공백과 이중 노동에 놓여 있다. 국가는 돌봄 공공성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의무도 방기한 채, 여전히 개별 가정에 돌봄과 재생산의 부담을 떠안도록 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기존 가사 노동자 입장에선 당연히 악재다. 지금도 국적에 따른 임금 차별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저임금 이주 가사 노동자들의 등장은 '제 살 깎는' 경쟁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지금껏 투쟁으로 이뤄온 약간의 노동조건 개선도 위협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가사노동자는 남의 집이 곧 일터다.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정은 사적 영역으로 치부되며, 이 안에서 일어나는 신체/정신/성적 폭력과 시간 외 노동 등의 착취와 폭력은 쉽게 은폐되고 있다. 돌봄과 재생산 노동을 폄하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가사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려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게 하는 주범이기도 하였다. '한국인'과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서 경쟁하게 되면, 낮아지는 것은 단지 임금만이 아니다. 돌봄/재생산 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의 하락 역시 예상되며, 자본과 국가는 이에 대한 보상 의무에서 그만큼 벗어나게 된다.

이주 가사노동자 입장에서는 어떨까? 국제노동기구(ILO)는 전 세계에서 1150만 명을 이주 가사 노동자로 추정하는데 (2015년 기준), 74%인 850만 명을 여성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는 빙산의 일각으로 비공식 또는 '불법 체류' 노동자는 제외되어 있다.

이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한 경우가 많으며, 인권침해도 드물지 않다. 홍콩의 경우 39%가 자신의 독립적인 공간을 제공받지 못하고, 58%가 언어폭력을 경험했으며 18%가 신체적 학대를, 6%가 성폭력을 경험했다는 보고가 있다. 싱가포르에서도 임금이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데다 노동시간 제한도 없고 재해보상법도 적용되지 않으며, 노동조합도 결성할 수 없다.

이주 가사노동자도 스스로의 노동력을 재생산해야 한다. 가뜩이나 높은 물가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고향에 상당한 돈을 보내고 나면 생활 수준이 매우 낮아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노동자의 해외 이주로 인해 발생한 출신국의 돌봄 공백 역시 우려된다.

물론 피부색이 다르다고, 민족적 배경이 다르다고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없는 것은 엄연한 차별이다. 종국엔 취업 비자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어느 사업장이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끔 최소한의 환경 조성과 준비는 해놓고 작업을 개시해야 한다. 최소한 고용허가제라도 철폐하든지, 차별금지법이라도 제정하든지… 단순히 '앞으로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가 함께 평등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싸우면 된다'라는 시각은 안일한 발상이다.

'합법적' 노예가 되어도 좋은 여성은 없습니다

모든 사회문제가 그러하듯, 국가와 자본의 선제 공격과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한 대응이 찬성-반대로만 귀결되어선 안 된다. 어떤 맥락에서 누가 왜 어떤 프레임으로 말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꼼꼼히 보아야 한다. 국가와 자본이 원하는 바는 국내 여성 노동자와 아동의 복지 향상이 아니다.

조금은 신기하기는 하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정치지향을 막론하고 한국인에게는 '강대국으로부터 핍박과 차별을 받아온 민족'이라는 피해자 정체성밖에 없었고, 제국주의란 항상 '우리' 외부에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여성노동계를 포함, 많은 사람이 돌봄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지 말라고, 이주 여성을 착취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페미니스트라면 다른 여성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지지하거나 반대할 수밖에 없다. 이주 가사도우미의 절대다수는 여성일 것이며,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도 여성이다. 합법적 노예가 되어도 좋은 존재가 아니다. 미국의 노예 출신 여성 참정권 운동가였던 소저너 트루스의 유명한 연설을 떠올린다. 그는 되풀이하여 물었다.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라고.

1) 최영미 외, 2017 "이주 가사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와 정책방안",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여진 님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여성노동자건강권팀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6월호에도 실립니다.


#가사노동_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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