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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양영수(94) 할머니 |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 관련사진보기 |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2차 손해배상 소송 원고로 나선 양영수(94) 할머니가 1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따르면 양 할머니는 1929년 현재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44년 3월 광주대성초등학교 졸업(1회) 후, 그해 5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동원됐다.
양 할머니는 생전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에 "1944년 3월 대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두어 달 뒤 학교에서 연락이 와 가보니 6학년 때 담임선생이었던 야마모토라는 일본인 선생님이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공짜로 할 수 있다. 좋은 학교도 갈수 있다' 며 일본에 갈 것을 권유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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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양영수(94)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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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는 "비행기 부품 페인트칠을 했다. 절대 외출이란 것은 없고, 징역 살다시피 한 생활이었다"며 "고된 일에 지쳐 씻지도 못하고 그대로 잠자리에 쓰러져 자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돌아봤다.
양 할머니는 2014년 2월 27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두 번째 소송 원고로 참여했다.
2018년 12월 5일 광주고등법원은 양 할머니 등 원고들에게 각각 1억원의 위자료 배상 판결을 했지만, 미쓰비시 측의 상고로 대법원 판결 소식을 기다리던 중 운명했다.
유족으로는 1녀가 있다. 빈소는 대구기독병원장례식장. 발인은 13일이며, 장지는 대구 명복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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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2월 일본 정부가 양영수 할머니에게 보내온 후생연금탈퇴수당 명세서. 할머니에게 지급될 수당은 199엔(2015년 당시 1850원)이라고 기재돼 있다고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설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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