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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직 도토리마을 방과후 교사 분홍이 (사진: 장영진)
전직 도토리마을 방과후 교사 분홍이 (사진: 장영진) ⓒ 은평시민신문

전직 서울 마포 성미산 도토리마을 방과후 교사인 박민영씨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분홍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는 10년 동안 도토리마을 방과후 터전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다 1년 전 퇴직했다. '자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한은혜 선생님은 4년째 도토리마을 방과후 교사로 재직 중이다.

마을 방과후 교사들은 10년을 일해도 교육 관련 경력을 인정받을 수 없어 국공립 교육기관 등으로의 이직에 어려움을 겪는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한창일 때는, 60명의 아이들이 밀집한 시설에서 일함에도 우선접종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해 백신을 맞기 위해 2~3주간 온갖 의료시설에 전화를 돌려야 했다. 지난 2일 도토리마을 방과후 교실에서 분홍이와 자두, 두 교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과후 교사,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환경 바뀌어야"

-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도 공동육아 교사들은 우선접종 받지 못했다는데 어떻게 됐나요.

자두 : "우선접종 대상자 기준이 발표된 후, 저희는 당연히 우선접종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아이들 수십 명과 하루 종일 오랜 시간 함께 있으니까요. 그런데 연락이 오지 않아 저희가 먼저 연락을 한 보건소에서, 도토리마을 방과후 교사들이 우선접종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답변을 들었어요.

그래서 여기 사정을 설명하니 '당연히 접종을 일찍 받으실 수 있다. 그런데 보건소에선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기관에 전화를 드렸을 때는 다시 '당연히 된다'라는 답변을 들었지만, 그 기관도 결국에는 '다른 데 전화를 해보라'며 말을 돌렸어요.

'오늘 담당 부서가 바뀌었으니 어디로 전화를 해보세요' 같은 답을 2~3주 동안 들었죠. 전화기 신호음을 듣고 있는 시간이 무척 길었어요. 교사들이 접종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마을 병원에 계신 의사분이 저희의 어려움을 알고 백신 잔여분을 주셨을 때야 가능했어요."  

- 공동육아 교사로 오랫동안 활동해도 교육경력을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고 들었어요.

분홍이 : "네, 저희는 국가에서 만든 초등돌봄센터와는 달리 마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방과후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10년을 근무하다 초등돌봄센터 등으로 가면 완전히 신입으로 취급돼요.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라는 것이 어쨌든 공동육아 초등 방과후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큰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마을 방과후 교사 일을 그만두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초등돌봄센터가 아닌 마을 방과후도 인정받고 재정적으로 지원을 받아야 교육의 다양성이 보장될 텐데, 무척 아쉬운 부분이죠. 학부모 입장에서는 교사의 월급을 온전히 학부모 부담으로 해결해야 하니 금전적 부담이 커지고, 교사 입장에서는 터전의 지속 가능성을 불안해하며 좀 더 나은 월급을 바라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에요." 

-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다큐 개봉 이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분홍이 :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개봉 후 돌봄 교사의 처우에 관한 기사들이 올라왔어요. 그런데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교사 대우를 원하면 정식 교사 시험을 쳤으면 됐을 텐데 무엇을 바라느냐', '자격증이 없으면 강사지 그게 교사입니까' 식의 말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저희는, 교사라는 이름에 매여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여기 와서 이야기를 나누어보시면, 저희가 '정규' 교사가 받는 월급을 원하거나 그런 대우를 원하는 게 아니란 걸 아실 거라 믿어요. 

교사 시험을 보고 몇 년제 대학교를 나오는 것도 중요할 수 있겠지만, 오랜 기간 아이들과 함께 해온 시간이 그만큼 중요할 수 있어요. 터전 교사들이 가장 바라는 건, 터전에서만 할 수 있는 교육 방식이 살아남는 일이에요. 결과가 가장 중요시되는 제도권 교육이 아닌 과정 중심의 교육 등을 해나갈 수 있는 여지를 살리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의 직업적 안전망이 필요한 거죠. 연초마다 오르는 최저임금을 보면서 '우리 월급도 딱 저만큼만 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나, 교사 생활을 이어나가기 어려울 거라는 자포자기가 아니라요."

"아이에게 자율성 주면 책임감 생겨"
 
 공동육아 방과후 교사 자두(사진: 손요한)
공동육아 방과후 교사 자두(사진: 손요한) ⓒ 은평시민신문

- 국가차원의 '돌봄 시스템'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보나요.

자두 : "한국의 국가 차원 '돌봄'은, 저출산과 고령화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이제 막 첫걸음을 뗀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시행착오와 고민해야 할 지점이 많죠. 정부에서 시야를 좀 더 넓혀서, 돌봄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해온 지역 단체들과 함께해 나간다면 성숙한 돌봄이 이루어질 거예요. 하지만 기존에 고민해온 단체가 있다는 걸 기관측에서 인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예전에 본 어떤 책에서 그런 말을 본 적이 있어요. 장애인 학교를 짓는데, 학교 건물을 디자인하신 분이 장애인 아이들에게 1년 동안 설문을 했대요. 어떤 장소가 만들어지면 좋겠는지, 이동하기엔 어떤 건물 구조가 편할지 이런 설문을요. 

저는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원해요. 그런데 아이들이 행복하려면, 오래 있는 공간에서 아이들이 정말로 어떻게 지내는지를 어른들이 조금 더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교사 자격증이 있는 '교사'라고 무조건 알 수 있는 건 아니죠.

또, 정부에서 아이를 돌보는 각 기관들을 일률화하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인지 등을 지역 공동체와 함께 이야기했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이에요. 이미 있는 지역 공동체와 구성원을 논의에서 제외한 채 단순히 정책적으로 돌봄을 공적 영역으로 전환하다보면, 어른들은 몰라도 아이들의 행복을 보장하기는 어려운 일일 테니까요."

- 공동육아 교사로서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분홍이 : "도토리마을 방과후 터전에서는 아이들과 교사 모두 서로에게 반말을 써요. 아까 보셨듯이 '분홍이 진짜 오랜만이다' 하는 식인 거죠. 선생님이 하나의 '사람'이 되고 아이에게 자율성을 주면 아이도 책임감을 갖기 시작해요.

자신이 주변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행동이 좋을지 나름의 고민을 하게 되는 거예요. 단지 손윗사람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요. 교사들의 경우에도 똑같아요. 교육청이나 기관이 내려주는 업무에 지치면 이 공간에 정말로 어떤 사람이 있는지를 고민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죠. 도토리마을 방과후가 아이들 돌봄을 위해 지키고 싶은 건 교육에 있어서의 그런 자율이에요. 

어떤 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교육청으로부터 '자격'을 인정받고 시작하는 방식도 좋지만, 공동체가 추구하는 교육의 방식 그대로도 지원을 받고 경력을 인정받을 여지가 생긴다면 교육은 앞으로 훨씬 더 다양해질 거예요.

돌봄 교사들이 불가피하게라도 이직하는 일이 덜해지는 건 물론이겠죠. 운영의 투명성을 증명하라면 그건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일이에요. 제가 원하는 건 하루에도 수시로 회의를 열면서 교육을 만들어나가는 교사들이, 자격에 구애받지 않고 교육에 종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인정이에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도토리마을방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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