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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연으로 가는 첫걸음, 차(茶).
 인간이 자연으로 가는 첫걸음, 차(茶).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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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를 마시다 보면 피어오르는 김 한 자락에도 깊은 시름이 뿌옇게 옅어지는 놀라운 위로를 받게 된다. 타인에 의한 상처로 힘들어하는 사람도, 스스로 내는 생채기에도 정좌하고 마시는 차 한 잔이면 금세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처럼 차는 다양하고 건강한 효능이 있다.

지난 7일, 충남 서산시 소재 차(茶)생활연구소를 운영하는 김영현, 박성희씨를 만났다. 귀하디귀한 차를 마시다 보면 신선이 되는 듯한 착각이 들어 어느덧 차(茶)예찬론자가 되어 버린다는 차 마니아. 도자기 찻잔 속에 향기가 가득 피어오르고, 찻잎이 펴질 때면 어지럽던 마음이 고요해지다가 서서히 심중의 이야기가 피어오르기도 한다는 그녀들. 이들을 만나 차와 인생,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왼쪽부터 스승 김영현 선생, 제자 박성희씨.
 왼쪽부터 스승 김영현 선생, 제자 박성희씨.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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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茶)를 만나게 됐던 계기가 있을까요?

"김영현: 아이들을 키우다 어느날 친구들과 함께 당시 지역에 개설되었던 다도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됐어요. 평소 저희 부모님께서는 상당히 보수적이시면서 엄격한 분이셔서 그런 생활에는 이미 익숙해 있었거든요. 다도가 엄격함의 행위라는 느낌이 들잖아요.

근데 친구들은 3개월을 못 버티더라고요. 당시 스승님은 한 강좌 동안 움직이는 걸 최소화하며 엄격하게 무릎을 꿇고 한 다리를 세우는 등 행위에 중점을 두셨죠. 반드시 물은 올곧게 따르되 가운데 중정법으로 따라야 하고.

그런 형식적인 행위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저한테는 좀 맞았죠. 특히 물 따르는 소리가 너무 청아하면서 맑게 들리는 것이 뭔가 치유받는 느낌이랄까요. '재밌다, 흥미롭다, 신난다' 하면서 다녔던 것 같아요."

"박성희: 친정 언니가 저보다 먼저 입문했는데 만족도가 높다며 행복해 하는 모습에 어떤 세계인지 궁금했었어요. 그러다 40대 중반에 언니 소개로 차(茶)를 만났고 조용한 분위기가 제 취향이랑 너무 많이 닮아 그냥 끌렸죠.

그때는 지역사회 차 문화가 상당히 생소한 시절이었어요. 그때 만난 선생님이 지금 옆에 계시는 김영현 선생님이셨죠. 어떻게 보면 차(茶)라는 것이 그냥 기호식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중년 이후의 제 삶을 변화시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참 신기해요. 뭔가 계속 찾게 되고, 보게 되고. 그러면서 차문화학과 학부생으로, 다시 상담심리학 전공으로. 차(茶)라는 것이 연결고리를 만들어준 셈이죠."

- 차가 사회로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인가요.

"박성희: 제게는 차가 또 다른 영역으로 통하는 매개체였어요. 그 전부터 대학을 가지 못했다는 것에 늘 아쉬움이 많았어요. 그런데 차를 만나면서 차茶에 대해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어 늦깎이 대학생이 됐죠. 대학에서는 차를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증도 있었고요.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자존감이 엄청나게 살더라고요(웃음).

4년을 아주 재밌게 배웠답니다. 일선 학교와 어린이집 등에서 차 교육을 하기도 했죠. 차를 만나지 못했을 때는 절대 이해되지 않던 행동들이 차와 만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봤어요.

산만하다거나 과격한 아이들을 만나면 '어떻게 컨트롤하지'라고 고민했었는데 지난 시간이 정말 잘못됐다는 것도 알았고요. 아이들은 통제 대상이 아니었던 거죠. 그런데도 '저 아이를 어떻게 하면 얌전하게 할까'라고 했으니...

차를 만나면서 제가 편협한 사람이었고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요. 특히 (김영현)선생님과 교류하면서 많은 정보도 알게 됐고요. 만약 차가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요? 차는 제게 스승이기도, 벗이기도, 멘토이기도 해요."

"오감을 동원하게 만드는 차... 문화적 경험 하게 만들어"
 
차는 다른 통로로 향하는 또다른 매개체다. 수업을 하는 모습.
 차는 다른 통로로 향하는 또다른 매개체다. 수업을 하는 모습.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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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는 종합예술'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부분이 그렇습니까?

"박성희: 차는 감각을 동원하게 만들어요. 일반적으로 차는 그냥 조용히 우려 마시기도 하지만 저희는 명상 그리고 행다(行茶, 차를 달이거나 마심) 퍼포먼스, 다화꽂이, 음악, 차와 어울리는 음식, 도자기, 테이블 셋팅 등 복합적인 것들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온전한 하나가 살아나면서 확장이 되더라고요. 즉 종합예술인 셈이죠. 이런 일련의 것들이 디자인된 찻자리 자체가 누구에게는 문화적인 경험이나 미적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좌충우돌도 있었죠. 예전 차 문화는 예절을 상당히 중요시했어요. 어느날 큰아이에게 다도 하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지를 물었는데 글쎄 '엄마, 무릎 아팠던 것밖에 생각 안 나' 이러는 거예요. 역시 아이가 스승이었죠.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때부터 정서적인 부분을 많이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

도자기는 원래 차갑잖아요. 차를 접하다 보면 따뜻한 물을 (도자기)붓고 서서히 따뜻해지는 걸 눈으로, 마음으로 느끼며 '아~ 이 차가 우러나서 내 몸에 들어가는구나'를 직접 경험하게 만들어요.

다그치고 길들이는 것보다 조용히 앉아 기다리는 미학이 훨씬 아이들을 변화시키거든요. 효과가 너무 좋았죠. 차 문화라는 종합예술이 디딤돌이 되어 우리 아이들의 성장에 아주 큰 영향을 주게 됐어요."

- 다도 보다는 차(茶)생활이란 말을 즐기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차생활은 선생님께 뭐예요?

"김영현: 차(茶)생활은 인간이 자연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해요. 보세요, 어감부터가 부드럽잖아요. 사람이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가는데 그만큼 자연으로 가는 첫걸음이 바로 차인 것 같아요.

다도, 차 다(茶)자와 도리 도(道)라는 뜻이 상당히 딱딱하면서 형식적이고 격식이 완전히 갖춰진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문턱도 높아 일반 사람이 접근하기도 쉽지 않잖아요. 왠지 격조 있어야 할 것 같고, 점잔 빼야 할 것 같고. 어떻게 보면 특수층만 누리는 부의 상징 같기도 하고.

다도라는 단어에는 이런 게 아직도 밑바닥에 좀 깔린 것 같아요. 차는 우리에게 이로운 음료인 동시에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예요. 내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살피는 의미로 차를 가까이 했으면 좋겠어요."

- 차에 대한 이점이 있다면요?

"박성희: 흔히 차 한 잔의 여유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물을 따르고 도자기를 만지면서 차를 우리고 마시다 보면 몸과 마음이 이완이 되며 따뜻해지는 것을 느껴요. 자연에서 만들어진 식물을 마시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더 포용력과 시야가 넓어지고, 심성이 좀 더 온화해지고, 선해 지면서 나누려는 마음이 일더라고요.

특히 아이들 경우를 보면 알아요. 산만한 아이들에게 차를 마시게 하면 아이들이 기다림을 배워요. 요즘 애들이 기다리는 것을 너무 어려워하거든요. 그것은 곧, 부모님들이 기다리는 걸 못 참는다는 얘기기도 하죠. 그리고 빨리빨리 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구요. 

그런데 차를 만나면 조금 더 기다려야 차 맛을 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죠. 차를 마시려면 기본적으로 3~4분이 걸리거든요. 그런 데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와요."

"김영현: 차생활 교육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감을 일깨워주는 거죠. 물소리를 귀로 듣고, 코로 차의 향기를 맡고, 눈으로 찻잎을 보고, 손으로 촉각을 느끼고요. 즉, 오감을 느끼해 해주는 거죠.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겁니다.

저는 유치원부터 중고등학교, 학부, 성인에 이르기까지 교육을 합니다. 그중에서도 유치원 아이들이 가장 습득력이 빨라요. 그만큼 어릴수록 심성이나 포용력이 엄청나게 커서 효과가 높은 거죠. 반대로 성인 강의는 이미 형성된 관념이라는 게 있거든요. 강의는 듣지만, 본인들 생각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 때부터 차생활에 젖어 들면 성인이 돼서도 정서에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참 또 하나가 있네요. 혼자 놀기의 진수이기도 해요. 저희 회원 중에 한 분은 지금 80세가 다 되셨는데 외출이 불편해 어느날부터 교육장에 못 나오고 계시는 거예요. 얼마전 전화 와서 '선생님 만나서 차 갖고 할 수 있는 놀이를 배웠어요. 너무 좋아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사실 그냥 물만 끓여놓고 차를 우리고, 다기를 어루만지고 정리하는, 혼자 하는 소꿉놀이 같아요. 그런데도 이런 행위는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걱정 때문에 지금을 살지 못하는 분들에게도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알아차림과 깨어있는 힐링의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차는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차는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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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생활관에 들어서니 왠지 위로되는 느낌이 드는 건 뭘까요. 자신에게 차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김영현: 다들 그렇게 말씀하세요. 사실 차가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역할을 해요. 안정되고 편안한 느낌인 거죠. 명상이란 단어와도 잘 어울리고요. 새소리에 풍경(風磬)소리, 요가와도 어울리는 듯하죠. 진정 효과를 가져오는 것 같아요. 사실, 중년 이후 많은 분의 마음이 시끄러울 때가 많잖아요. 그때 차를 마시면 왠지 자신을 보게 돼요. 참 묘한 물이죠(웃음)."

"박성희: 제가 느낄 수 없는 그런 신세계가 있거든요. 그곳으로 저를 초대해 주는 매개가 바로 차(茶)가 됐어요. 별의별 걸 다 끌어와요(웃음). 이 차가 고전을 논하기도 해요. 엄청난 내·외연이 확장되는 느낌도 있고요. 커피는 딱 끊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차(茶)는 어떤 세상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중년이 참 행복해요. 어디 다른 데 눈 안 돌리고 진짜 열심히 자꾸 더 좋은 세상, 더 나은 나를 위해서 뭔가를 계속 도전하게 만들죠. 이게 바로 차(茶)의 매력인 듯싶어요.

차는 일단 오픈 마인드에요. '인생 어떻게 살아?' 아니면 '잘 살고 있어' 스스로 질문과 대답을 해주는 거죠.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가 차를 즐겨 마시며 사람들과 나눴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 특히 차를 접하면서 노자의 도덕경 제8장 물의 철학은 둥글둥글 자연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가 와닿아요. '둥근 그릇이면 둥근 모양으로 네모난 그릇이면 네모난 모양으로, 호리병에 담으면 그 모양으로 변하고 만다.'"

- 차 대접을 하면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박성희: 때로는 손님들이 자신의 속내를 꺼내 놓을 때가 있어요. 얘기를 듣다보면 가끔은 힘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차 한 잔 마시면서 어느 정도 위로받고 갈 때 그 뒷모습 보는 게 너무 보람 있어요. 따뜻한 한잔의 차로 다른 사람의 삶에 위안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기쁨일까요. 다음에 고맙다고 또 찾아와요. 그러면서 차(茶)생활로 동행합니다."

"김영현: 청양에서 행사가 있었어요. 아이가 찻잔을 만지더니 코로 냄새를 킁킁 맡아요. '엄마, 꽃향기야~'라고 말하며 마시는데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어요. 엄마가 그냥 지나가려다가 찻잔을 들고 마시더니 '정말 꽃향기다'라며 웃고 지나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박성희: 요즘 아이들은 주스나 탄산수에 길들어 있는데 차를 보고 꽃향기가 난다는 얘기가 너무 아름답잖아요. 이게 경험일 수도 있고 문화 체험일 수도 있거든요. 어릴적 경험은 그 아이의 문화적 정서로 심층에 기억된대요. 10년 20년 후까지도 기저에 있다가 또 다른 모습으로 발현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창의력으로 발달할 수도 있고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성희: 요즘 스마트 기기와 컴퓨터게임에 노출되는 빈도가 많은 아이들은 신체적,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이럴 때 차와 명상이 아이들의 정서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현장에서 차·명상을 통한 교육이 분명한 변화가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맛이란 것도 음식이 아닌 바로 내 혀에 있다는 말이있어요. 단맛에 익숙한 애들도 처음에는 잘 안 마시다가 학기말 즈음이 되면 '선생님 더 주세요'라고 말해요.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는 거죠. 그리고 자존감도 높여주고요.

사람의 마음은 차가웠을 때 움츠러들고 따뜻한 걸 만지면 마음을 사르르 열어 준대요. 어느 순간, 애들이 먼저 서로 마셔보라고 하더라고요. 자기들끼리 맛 평가도 해주고요. 그렇게 되면 자존감도 높아지죠. 수업이 끝나면 애들이 (찻잔)들고 와서 설거지까지 도와 주려하고 방석을 정리해요. 서로 돕는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도드라진답니다. 이러한 유익한 교육은 돌봄교실이나 체험활동을 통해 보급하고 싶어요. 많은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요."

"김영현: 그동안 서산에서 차를 즐기며 교육과 봉사를 통해 차향을 널리 퍼뜨렸어요. 그러다 오랜 시간 끝에 안정된 곳에서 많은 분과 공유하고 싶어 차(茶)생활연구소 인 '시우'를 열었답니다. 이곳은 예약제로 운영되며, 차를 알고 싶거나 체험하고 싶은 분들이 오셔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특히 힘든 분들이 계시다면 언제든 따뜻한 차 한 잔 드시고 쉬어가세요. 환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태그:#차(茶) 예찬론자, #스승_김영현선생_제자_박성희, #인간이자연으로가는첫걸음차, #다도가주는매력, #차생활연구소_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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