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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각두
 도토리각두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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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게 챙겨입고 숲으로 간다. 쌀쌀한 기운에 손이 시리듯 차갑다. 비가 시원하게 오고 난 후 하루가 다르게 추워진다. 이슬이 차가워지는 한로(寒露) 즈음이라 그런가 보다. 매일 기온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언제부터 피부로 느꼈을까? 생각해보니,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인 것 같다.

자연을 공부하는 사람이었지만 계절에 민감해진 것은 자연과 가까이에서 공부하던 때가 아니었다. 그보다 한참 지나 자연을 그리워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이렇게 세월이 지나고 나니 계절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감을 느낀다. 요즘은 계절을 탈 시간도 없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시간이 지나감을 실감한다.

사람들은 긴 시간에 걸쳐 자손을 낳고 키우는데, 식물은 매년 열매를 맺는다. 물론 식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과육 덩어리의 열매를 맺지 않고 씨앗처럼 보이는 것만 달기도 한다. 그것도 엄청 많은 양을 말이다. 그러니 지구의 많은 부분을 식물이 뒤덮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매년 맺는 열매는 올해에도 어김없다.
 
도토리
 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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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중에 산책로 나무계단으로 시간을 두고 "똑또르르르~ 똑또르르르~" 경쾌한 소리가 났다. 도토리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고향이 동해 바닷가 바을인 필자는 어릴 적 도토리묵을 많이 먹어보지 않았다. 주변 숲은 소나무가 대부분이었다. 추석이면 솔잎을 넣어 송편을 찌고 뜨거운 송편에 기름을 바르면서 솔잎을 떼어내던 할머니와 어머니 모습이 생각난다.

감을 바닷물에 삭혀서 겨우내 먹던 것도 지금은 너무나 그립다. 지역마다 먹고 사는 모습에 차이가 났던 것은 자연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굽이굽이 대관령이 동·서 왕래를 힘들게 하니, 같은 강원도라도 영동과 영서의 생활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 필자의 상견례는 삼척에서 있었다. 부모님은 시어르신들께 좋은 음식을 대접하려고 유명한 횟집의 가장 좋은 코스를 준비하셨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산촌 출신이신 시부모님은 바닷가 음식을 즐기지 않으셨다. 서로 너무 배려해서 생긴 해프닝이었다. 아직도 시어머니는 생선을 잘 드시지 않는다. 지금은 철에 상관없이 마트에서 많은 먹거리를 선택할 수 있다.
 
붉나무열매.
 붉나무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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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딸기가 더 맛있다고 했던가, 수입하는 열대과일과 냉동과일로 언제든 비타민을 섭취할진 모르지만, 현대인들이 자주 가는 대형마트에서 먹거리로 계절을 느끼는 것은 힘들어지고 있다. 그 와중 우리나라에 사계절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철마다 피는 꽃이 다르고, 맺는 열매가 달라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산책하면 계절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얀 소금 가루를 뒤집어쓴 붉나무 열매와 붉게 물든 잎이 예술이다. 신나무 열매가 바짝 말라 날아갈 준비를 마쳤다. 잘 익은 산초나무 열매는 이미 누군가가 싹쓸이했다. 숲에 남은 건 도토리의 각두(도토리를 싸고 있는 모자 모양의 덮개)와 갈라진 밤송이, 그리고 단풍지기를 기다리는 나뭇잎이다. 그 사이로 큰 거미줄이 보였다. 무당거미가 한껏 살을 찌우고 있었다.

역시 가을은 살찌는 계절이고, 열매 맺고 내년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산책로 가장자리에 심어놓은 튤립나무의 예쁜 잎이 눈에 띄었다. 낙엽지기 전에 한 장 떼어 집에 가져왔다. 계절을 느끼기에 산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

- 홍은정(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활동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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