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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간 고등학생들이 발표한 '해외 논문' 중 질적으로 의심되거나 '약탈적' 학술지 등에 논문이 투고 된 비율. 자율고/외고/일반고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20여년 간 고등학생들이 발표한 "해외 논문" 중 질적으로 의심되거나 "약탈적" 학술지 등에 논문이 투고 된 비율. 자율고/외고/일반고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 강태영/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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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 년간 고등학생이 쓴 '해외 논문' 중 13%는 게재료만 지불하면 특별한 심사 없이 논문을 실어주는 '약탈적 학술지(predatory journal)' 등 질적 수준이 낮은 학술지에 실린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 논문을 오로지 입시를 위한 '스펙'으로 쓰기 위한 '꼼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학술 지식 큐레이팅 미디어인 언더스코어의 강태영 대표와 시카고대 사회학 박사과정에 있는 강동현씨(이하 연구진)가 2001년부터 2021년 사이에 국내 213개 고등학교 소속으로 작성된 해외 논문 558건(980명 작성)을 전수 조사한 뒤 지난 1일 협업 툴인 '노션'에 발표한 2차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다.

1차 보고서는 해외에 논문을 투고한 학생 중 67%가 논문 출간 이력이 1회뿐이며, 2014년 학생생활기록부에 논문 등재를 금지하자 급격히 감소하는 등 고교생의 해외 논문 투고가 오로지 '탁월한 학생들의 연구'에 의한 것이 아님을 가늠케 했다. (관련 기사 : 천재? 부모찬스? "고교생 해외 논문 저자 67% 출간 이력 1회뿐" http://omn.kr/1yfnx)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논문 558건 중 72건이 비용만 지불하면 특별한 심사 없이 게재를 허용(약탈적)하거나 질적 수준이 매우 낮아서 의심스러운 학술지 및 학술대회에 발표됐다. 이런 '문제적 논문'의 비율은 영재고 5.9%, 과학고 10%지만, 자율고·외국어고·일반고는 22.4%나 됐다.

이와 같은 논문의 비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했으며, 2014년 논문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금지, 2020년 자기소개서 기재 금지됐으나 이마저도 별 영향을 안 끼쳤다. 심지어 2020년 논문 16건 중 6건(37.5%)이 '문제적 논문'이었다. 연구진은 정황상 해외 학부 유학을 준비하는 '국제반 고등학생'이 게재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의심스러운·약탈적 논문 투고율은 점차 상승하고 있다.
 .의심스러운·약탈적 논문 투고율은 점차 상승하고 있다.
ⓒ 강태영/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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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료만 지불하면 논문 실어주는 곳도... 고교생 '해외 논문' 문제없나

고교생 전체 논문 중 1/5 가량은 학술지 등급이 Q1~Q4(스키마고 저널 및 국가순위 기준) 중 어디에 속하는지 등급 정보를 알기 어려웠으며, 등급과 무관하게 질적 수준이 의심되는 학술지도 존재했다. 이중 연구진이 가장 문제가 되는 유형으로 꼽은 것은 게재료만 지불하면 특별한 심사 없이 논문을 실어주는 '약탈적 학술지'다. 

논문을 작성하면 동료들의 피드백을 받고 여러차례 수정을 거쳐 심사자와 학습지 편집위원회 승인 과정이 필요하고, 유명 학술지나 학회의 경우 승인율이 매우 낮아 경쟁도 심하다고 연구진은 지적한다. 하지만 약탈적 학술지들은 심사 과정을 최소화하고 많게는 300~400만 원까지의 게재료를 받는데 집중하는 소위 '논문 장사'를 한다.
 
<실험 및 치료의학>이라는 학술지에 실린 고등학생들의 논문
 <실험 및 치료의학>이라는 학술지에 실린 고등학생들의 논문
ⓒ 강태영/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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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한 외고 학생과 자율형사립고 학생은 대학 소속 교수 박사들과 함께 <실험 및 치료의학>(Experimental and Therapeutic Medicine)이라는 학술지에 논문을 작성했다. 하지만 학술 논문 데이터베이스인 스코퍼스(SCOPUS) 등재가 취소됐고 이를 발간하는 출판사 스판디도스(Spandidos)도 논문 방앗간(paper mills)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심지어 이 논문은 한 정부 부처의 연구 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되어 작성된 것이다. 연구진은 해당 "프로그램에 연구진을 참여시키고 정부 지원을 받은 연구가 약탈적 학술지에 게재되는 것이 올바르냐"라고 지적했다.

또한 A고에 다니는 두 명의 학생은 질적 수준이 의심되는 한 학회에 유사한 두 개의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두 논문의 제목이 유사하고 분량도 3페이지에 불과하고 삽입된 도표들 역시 막대그래프 정도였으나 '해외 논문'으로 승인된 경우였다. A고 소속 학생 저자들은 해당 학회에서만 8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자율고·외국어고에서 '의·약학' 논문 비율 가장 높았다
 
자율고/외고/일반고에서의 정책 효과
 자율고/외고/일반고에서의 정책 효과
ⓒ 강태영/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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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연구진은 두 번째 보고서에서 고등학생의 국내 논문 작성 실태도 조사했다.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조사 결과 20년간 213개 주요 고등학교 소속 고등학생들이 발표한 논문 수는 총 329건이고 학생 저자는 950명이다.  

연구진은 "국내 논문의 경우 과고·영재고의 '논문작성 프로그램'에 기반하고 이를 명시한 경우도 많아서 연구 부정 논문 등재가 연구 부정 혹은 연구 윤리 위반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라면서도 "의·약학 분야 논문이 작성된 비중이 영재고 5.6%, 과학고 10.9%, 자율고·외국어고·일반고 19%라는 점은 교육과정과는 유리된 입시용 논문 작성 가능성을 의심케 한다"라고 지적했다.

2014년 '생기부 논문 기재 금지' 이후 고고생들의 국내 논문 출간 수도 줄었다. 특히 자율고·외국어고·일반고가 하락을 견인하고 있었다. 연구진은 과학고나 영재고는 유의미한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태그:#고등학생 논문, #해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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