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자료사진
자료사진 ⓒ 픽사베이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김현석(가명)씨는 4층짜리 상가건물 한 채를 아내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70대 노부부에게 상가건물은 평생 준비한 노후대책이었다. 아내와 공동명의로 소유하고 있었지만, 개인적 사유로 층별로 나누어 각자 소유하고 싶어졌다. 알아보니 집합건축물로 전환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집합건축물 전환 신청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설계사무소를 찾아가 층별 평면도를 다시 그려야 했다. 평면도 작성 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평면도를 첨부한 신청서를 가지고 시청에 찾아간 김현석씨에게 담당 공무원은 서류가 미비하다며 보완을 요구했다. 세입자의 동의를 받아오라거나 접수일과 문서작성일이 다르니 접수일로 날짜를 맞추라는 요구 등이었다.

신청서를 모두 보완하자 시청 담당자의 현장실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곧 집합건축물로 전환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던 김씨 부부에게 다시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건물에 불법 증축 부분이 있어 전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해당 부분은 크기도 매우 작았지만, 그보다도 김씨 부부가 건을 매입할 때부터 아니 심지어 건물이 준공될 때부터 있던 건축물이었다.

건물에 문제가 없다며 준공을 내주고는 이제야 이를 핑계로 건축물대장 전환 신청을 반려하겠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담당자는 "전환 신청을 고집하면 원상복귀 명령이 나가고, 원상 복귀될 때까지 반복해서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며 신청 취하를 종용하기까지 했다.

김현석씨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불법 증축과 건축물대장 전환 신청 사이 어떠한 관계가 있기에 신청이 반려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집합건축물로써의 요건을 갖추면 전환 신청을 허가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집합건축물과 전혀 관계없는 불법 증축을 사유로 신청을 반려한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신청을 취하하면 불법 건축 부분을 눈감아 주지만 고집하면 이행강제금을 청구하겠다니, 이는 협박이나 다름 아니었다.

김현석씨는 이행강제금을 감수하면서까지 신청을 취하하지 않았다. 그러자 시는 건축물대장 전환 신청을 반려하고 이행강제금 부과를 위한 처분사전통지를 했다. 이에 김씨는 건축물대장전환신청 반려에 대한 행정소송을 청구해 부천시와 다투고 있다.

요지부동 시청 담당자

서울에 거주하는 최종렬(가명)씨도 유사한 일을 겪었다. 인터넷 신문을 창간하고자 했던 그는 각종 서류를 챙겨 시청을 찾았다. 그런데 시청 담당자는 신문사 사무실로 사용하는 오피스텔의 임대차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다며 새로운 계약서를 작성해 오라고 했다.

계약서에는 기간 만료 시 자동으로 계약이 갱신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최종렬씨는 새로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기존 계약서의 갱신 조항을 통해 임대차 계약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동갱신을 설명했지만 담당자는 요지부동이었다.

하지만 임대인은 지방에 살고 있었다. 임차인 입장에서 임대인에게 계약서를 다시 쓰기 위해 서울까지 올라와 달라고 요청하기도 어려웠다. 고육지책으로 최씨는 임대인에게 계속 임차하고 있다는 확인서를 받아 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시청 담당자는 "규정상 유효한 임대차계약서를 첨부해야 한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자동갱신 조항이 있고 이에 따라 자동갱신되었으므로 현재 임대차계약서도 유효하다고 설명했지만 새로운 계약서를 작성해 오라는 요구만 반복될 뿐이었다. 결국, 최씨는 인터넷 신문사 등록을 포기하던지 임대인에게 양해를 얻어 지방까지 내려가 새로운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권리 포기를 고민하는 이유

행정에서는 신청한 행정행위와 상관없는 사유로 반려한다든지 반드시 요구되는 서류가 아님에도 규정이 그렇기에 어쩔 수 없다며 신청을 반려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경우 민원인은 김현석씨와 같이 비용과 시간을 감수하면서까지 소송을 통해 잘잘못을 다투던지 최종렬씨와 같이 권리의 포기를 고민해야 한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이와 같은 행정의 판단은 대부분 시행규칙이나 세칙과 같은 하위법규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시행규칙이나 세칙은 공무원들이 업무를 진행할 때 준수할 내부 규칙이다. 공무원은 시행규칙이나 세칙에 따를 의무가 있다.

민원인은 시행규칙이나 세칙이 법률은 아니므로 따를 의무가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공무원이 시행규칙이나 세칙을 근거로 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에 준수할 의무가 없는 민원인까지 따르게 되는 결과에 이르고 만다.

건축물대장 전환 신청과 상관없는 불법건축물을 사유로 신청을 반려한다든지 자동 갱신된 임대차계약서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은 규정은 명백히 부당한 규정이다. 이처럼 부당한 규정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 또한 민원인을 대하는 공무원의 의무일 것이다.

무사안일주의로 무조건 규정만 따라 행정을 집행하려는 공무원 사회의 관행 때문에 무의미한 소송이 진행되거나 권리의 불합리한 포기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은 현직 변호사입니다.


#공무원#행정#시행규칙#시행세칙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