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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2기 행정부의 국무장관을 역임한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지난 23일(현지시간) 타계했다. 요즘 국내외적으로 연일 큰 뉴스가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올브라이트 장관의 별세 소식은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

물론 미국의 국제적인 영향력 특히 한미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미국의 대통령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국무장관도 한국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올브라이트는 좀 더 특별하다.

국무장관 재직 시절 올브라이트는 한반도 탈냉전평화프로세스의 최종 목표인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외교를 주도했으며 북미 협상이 성공 직전에까지 이르게 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부시가 승리한 이후 최종 타결이 이뤄지지 못했지만 그때는 북한과 미국이 실질적인 의지를 갖고 최고위급 외교를 전개하여 관계 정상화에 가장 근접했던 시기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렇게 보면 올브라이트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국내 언론들이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당시 미국 정부의 대한정책이 한국의 김대중 정부와 긴밀한 협조 속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올브라이트와 김대중 사이의 오래된 인연도 중요한 요소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글에서 올브라이트와 김대중의 역사적인 인연과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외교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김대중이 외교의 달인으로 불리우고, 그가 집권했던 국민의 정부 시기 한국 외교가 최전성기로 평가받는 것은 김대중의 지식 및 혜안 뿐만 아니라 주요 인사들과의 긴밀한 관계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올브라이트와의 역사적인 인연을 통해서 살펴보려고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올브라이트, 1986년 가택연금 중인 김대중을 처음 만나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23일(현지시간) 별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前) 미국 국무장관 관련 사료를 공개한다고 24일 밝혔다. 사진은 2000년 10월 25일 올브라이트 장관의 평양 방문 직후 청와대에서 기념 촬영하는 김 전 대통령의 모습.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23일(현지시간) 별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前) 미국 국무장관 관련 사료를 공개한다고 24일 밝혔다. 사진은 2000년 10월 25일 올브라이트 장관의 평양 방문 직후 청와대에서 기념 촬영하는 김 전 대통령의 모습.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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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브라이트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매우 강한 인물이었다. 그녀의 삶에서 알 수 있듯이 전체주의 반대와 민주주의 수호는 올브라이트의 삶과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그런 올브라이트가 수많은 죽을 고비를 포함한 각종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투쟁한 김대중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올브라이트가 김대중을 처음 만난 것은 1986년이다. 당시 올브라이트는 국제문제를 다루는 미국 민주주의 협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방한했다. 이때 올브라이트는 가택 연금 중이던 김대중을 처음 만났다. 동교동 김대중의 집에서 김대중과 올브라이트는 처음 만난 것이다.

1985년 2월 미국 망명을 끝내고 귀국한 김대중은 수시로 가택연금을 당해서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었다. 가택연금이 이뤄지면 출입 자체가 봉쇄된다. 그런데 외국인이 김대중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대체로 가능했다. 전두환 정권은 이것까지 막을 경우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브라이트도 동교동 김대중 자택을 방문할 수 있었다.

올브라이트에게 있어 이때 김대중과의 만남은 상당히 기억에 남는 일이었던 것 같다. 올브라이트는 자신의 회고록 <마담 세크러터리 : 매들린 올브라이트>(황금가지, 2003)에서 '그는(김대중) 당시 가택 연금 상태에 있었지만 자기 생각을 두려움없이 표현했고 남한 민주주의에 대한 대담한 신념을 열정적으로 토로했다'라고 썼다.

올브라이트가 김대중에 대해서 말한 민주주의에 대한 '용기, 신념, 열정'은 다른 인사들의 평가와 정확히 일치한다. 김대중은 1970년대부터 수많은 외국인들을 만나면서 한국 민주화를 위한 국제적인 연대 활동을 전개했는데 이때의 김대중의 모습을 회고한 외국인들은 올브라이트가 한 말과 비슷한 평가를 하곤 했다. 그리고 이것이 매우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어서 한국 민주화를 위해서 자신도 협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을 했다.

올브라이트, 김대중을 하벨과 만델라와 동급으로 평가하다

그녀의 회고록에는 김대중에 대한 찬사를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나는 그가(김대중) 바츨라프 하벨이나 넬슨 만델라에 필적할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 또한 감옥에서 대통령 직에 이르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길을 걸었다. 그들 모두 갇혀 있는 동안 정치와 인생에 대한 특유의 철학을 발전시켰다. 민주주의와 인권 존중이 아시아적 가치와 양립한다는 것을 김대중보다 더 믿음직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라고 썼다.

또한 그녀는 김대중을 '20세기의 위대한 민주주의의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평가했고 미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토머스 제퍼슨에 비유하기도 했다. 올브라이트 회고록에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수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여기에서 김대중에 대한 평가는 가장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지식인 중에서도 김대중을 이렇게 평가하는 경우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올브라이트의 인식과 평가는 클린턴 대통령에게서도 발견된다. 클린턴은 자신의 회고록 <빌 클린턴의 마이 라이프>(물푸레, 2004)에서 '그는(김대중) 오랜 기간 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했으며 (중략) 나는 1992년 5월 로스앤젤레스 시청 계단에서 김 대통령을 처음 만났는데, 그때 그는 자신이 내가 대표하는 것과 똑같은 새로운 정치 방식을 대표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는 용감한 동시에 통찰력이 있었으며 나는 그를 지원하고 싶었다'라고 썼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의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최고위급 인물들이 김대중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김대중 집권기와 미국의 클린턴 집권기가 겹치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이 한미관계 역사상 최고의 시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한국 정부가 주도권을 갖고 창조적이고 진취적인 외교를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소프트파워로서 역할할 수 있는 김대중
  
김대중의 역사적 가치는 다양한 분야에서 살펴볼 수 있고 활용될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외교다. 올브라이트와 클린턴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김대중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평화, 인권 등 인류보편적인 가치 실현을 위해서 헌신한 존경받는 국제지도자이다.

김대중은 미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유럽 그리고 북한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관계된 주요 국가들에 모두 긍정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정치인이다. 한국 정치인으로서 이와 같은 국제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은 김대중이 유일하다. 한국에서 유일할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봐도 김대중만한 위상을 갖고 있는 인물은 몇 명에 불과하다. 김대중 자체가 한국의 소프트파워로서 기여하고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김대중은 국내에서는 저평가를 받고 있지만 국제적으로는 고평가받는 인물이다. 김대중은 생전에도 사후에도 국내에서는 여전히 그의 역사적 기여와 가치에 맞는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다만, 김대중의 국제적 평가와 가치는 그의 생전에도 사후에도 여전히 높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김대중의 역사적 자산을 우리 국익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민간외교, 공공외교 차원에서 그렇다. 이것은 정파를 떠나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한국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 외교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 점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태그:#김대중, #올브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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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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