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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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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는(buying) 것이 아닌 사는(living) 곳이다!

'다주택자 투기꾼, 1주택자 실수요' 이데올로기에 갇힌 정부여당이 내세운 구호인 것 같지만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세웠던 장기전세주택 브랜드 시프트(SHift)의 홍보문구이다. 지금처럼 한창 집이 투자상품으로써의 가치가 극에 달한 2007년 당시에는 참신하고 혁신적인 시도였다.

[시대착오적 혁신 ①] 장기전세주택 부활

10년 만에 다시 서울시장이 된 오세훈 시장은 시프트의 부활을 알렸다. 2026년까지 7만 호의 장기전세주택을 서울에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의 혁신은 2007년에 멈추어 있는 것 같다. 장기전세주택은 입주자들의 전세보증금을 활용하여 운영 및 관리비를 만들어내는 구조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리가 대폭 낮아지면서 전세보증금으로 받을 수 있는 이자수익은 낮아지는 반면, 건물 노후화로 인한 수선비용 및 감가상각비는 점차 높아지면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장기전세주택으로 인한 손실이 약 1조 2천억 원가량 발생했다. 결국 2019년 장기전세주택은 부채규모를 감당하기 어려워 신규 공급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폐지 상태에 들어갔다.

장기전세주택은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5% 수준이었던 2000년대 중반에도 쉽지 않은 사업이었는데 기준금리가 1%도 되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 충분한 검토는 했는지 의심스럽다. 전세주택 공급이 시대적 필요가 있고 장기적으로 권장해야 할 주택공급 모델이라면 어떻게든 재원을 마련해서라도 장기전세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전세주택은 차츰 줄여나가면서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야 하는 주거모델이다.

지난 5년간 대한민국 집값 폭등 사태의 핵심에는 전세제도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동산가격 폭등은 지역별, 가격별, 주택수별로 차이를 둔 핀셋 정책으로 부동산 투기심리를 꺾으려 했던 정책입안자들의 오판도 한몫했지만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는 돈의 흐름을 줄여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으려는 정부의 대출규제정책을 번번이 실패하게 만든 주요 요인은 전세제도였다.

전세제도를 활용한 갭투자·갭투기 방식을 쓰면 집값의 10~20%만 있어도 집을 살 수 있으니 부동산 가격 상승 국면에서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갭투자·갭투기 방식으로 집을 사니 정부의 정책이 도무지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전세제도는 제도권 금융이 발달하지 않았던 산업화시대 초기에 사금융으로서의 역할과 서민주거안정에 큰 기여를 했지만 2020년대의 대한민국의 전세제도는 전 세계 최고 수준인 가계부채 문제와 집값 폭등을 일으키는 주범인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 정상화와 지속 가능한 주거안정 방안을 고민하는 정치인이라면 전세제도에 정당성을 부여할 것이 아니라 전세주택을 어떻게 축소해나갈지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있으면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과 문제 해결방안을 찾는 역량이 급격히 떨어진다.

[시대착오적 혁신 ②] 사회주택 폐지

아직까지 사회주택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낯설다. 시세의 80% 이하 가격으로 최대 10년간 장기로 임대하는 주택을 사회주택이라 부른다. 얼핏 공공임대주택과 비슷해 보이지만 공공임대주택은 정부가 소유 및 운영관리 전체를 책임진다면 사회주택은 수익극대화가 아닌 대안주거모델 제시, 토지공공성 확보 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 실현에 목표를 둔 사회적 기업 및 주택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운영관리를 맡는 주택이다.

사회주택은 관이 소유하기도 하고, 민이 소유하기도 하지만 운영관리는 사회적 경제 주체들이 맡고 있다. 정부가 소유하고 운영 관리하는 공공임대주택의 한계인 슬럼화, 수요 맞춤형 커뮤니티 활성화 프로그램 부재 등을 운영주체가 민간인 사회주택은 민간의 창의성을 활용하여 기동성 있게 풀어가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2019년 서울의 한 청년임대주택에 쓰레기 더미가 쌓인 사진이 온라인을 달군 적이 있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청년 매입임대주택'으로 2개 동에 29세대가 살 수 있는 다세대주택이었다. 2019년 초 입주자 모집을 했을 때 경쟁률이 4:1을 넘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LH의 운영관리의 미숙함으로 인해 층간소음 및 쓰레기 처리 문제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뉴스 보도까지 나왔다.
      
LH 소유 주택만의 문제는 아니다. 뉴스 보도를 찾아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전도시공사, 서울주택도시공사의 소유 주택에서도 공실 및 관리운영의 부실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민간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운영하는 사회주택에서는 이런 일들이 없다. 만약 민간 주체가 운영하는 주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회사문을 닫아야 하기에 이런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나더라도 신속하게 해결한다. 민간 주체는 책임 회피나 운영 부실이 생기면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에 혁신과 갈등조정능력, 수요자 맞춤형 서비스 역량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이 소유하고 관리까지 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민관 협력모델인 사회주택이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있기에 서울에 약 3000호를 공급하고 있는 사회주택은 경기도, 전주, 부산 등 지방도시로 퍼져가고 있다.
  
2020년 SH 도시연구원에서 조사한 서울시 사회주택 입주자 만족도 조사 결과
 2020년 SH 도시연구원에서 조사한 서울시 사회주택 입주자 만족도 조사 결과
ⓒ 사회주택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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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6일 오세훈 시장은 유튜브 '서울시장 오세훈TV'에서 사회주택 사업에 대해 '나랏돈으로 분탕질쳤다'고 비판하고 서울시는 지난 1일 '사회주택 정책 재구조화'를 발표하며 사업 폐지 가능성을 언급했다. 사회주택협회는 오세훈 시장의 사회주택 왜곡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맞서고 있다.

오세훈 시장이 사회주택을 비판하는 데에는 전임 시장의 흔적을 다 지우고 장기전세주택과 같이 공공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모든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하지만 앞서 검토했듯이 공공주택 운영은 관보다 민이 더욱 탁월하다. 이미 검증된 결과를 다시 되돌리려는 오세훈 시장의 무리수는 사회주택 입주자들을 위한 길이 아니다.

관은 관이 주인공이 되려 하지 않고 민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판을 깔아주는 것이 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혁신이다. 장기전세주택 확산과 사회주택 폐지라는 오세훈 시장의 시도는 시대착오적 혁신이다. 부디 시대의 흐름을 잘 읽으며 서울시정을 펼치길 기원한다.

태그:#사회주택,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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