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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상이네 가족이 심어야할 못자리.  마치 골프장 잔디를 연상시키는 300여 마지기의 논에 심을 모판들. 여기 말고 다른 곳에도 이만큼의 모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희상이네 가족이 심어야할 못자리. 마치 골프장 잔디를 연상시키는 300여 마지기의 논에 심을 모판들. 여기 말고 다른 곳에도 이만큼의 모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 오창경

우리 동네에서는 찔레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부터 모내기를 시작한다. 다시 모내기철이 돌아왔다. 논에 모내기를 하거나 벼를 수확하는 작업을 할 때면 생각이 나는 한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트랙터에서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서 논갈이를 보면서 컸던 아이다. 그는 어느 해부터는 아버지 대신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저쪽으로는 찔레꽃이 한창이고 논에는 이앙기가 오락가락 다니며 물이 찬 논에 모를 한 줌씩 꽂아 놓는 모습이 시골마을의 풍경을 장악하고 있다. 창고에 있던 트랙터, 지게차 등도 이앙기를 따라 나와서 사람들과 함께 바쁘게 돌아다닌다.

요즘 시골 마을 모내기철의 풍경은 최첨단 공업단지 못지않게 기계들의 각축장이다. 품앗이로 농사일을 하던 시절을 지나 규모화 되고 기계화된 영농이 실현되고 있다. 노동요 대신 기계들의 엔진소리가 들리는 곳이 21세기 농촌이다.

그 기계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이가 우리 동네에 나타났다. 아버지를 따라서 물꼬를 보러 다니고 트랙터로 논을 능숙하게 갈던 꼬마 농부가 청년 농부가 되어 부여군 충화면의 논을 접수하고 있는 중이다. 바로 이제 갓 스무 살을 넘은 유희상군이다.

한글보다 트랙터 상호를 먼저 외운 아이 

희상이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따라 논둑에서 자랐다. 한글을 배우기 전부터 트랙터 상호를 외웠고 농기계의 성능에 대해서 줄줄이 꿰더니 초등학교 시절에는 트랙터로 논밭을 갈았다. 우리 동네에선 초등생 아이가 농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본 것이 아니라 실제 상황으로 보았다. 내가 그를 '희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우리 아이들과 함께 유치원을 다닌 아이였기 때문이다.

청년농부로 성장한 유희상군은 부여군 충화면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이다. 어른들 못지않은 농사 지식과 농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초딩 아이가 어느새 300여 마지기의 논농사를 짓는 MZ 세대 청년 농부가 되었다.
 
우리 동네에 나타난 MZ세대 농부. 희상이  사진 찍기가 쑥쓰럽다는 청년 농부의 진솔한 모습을 담았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이지만 농사 경력은 태어나면서부터이다.
우리 동네에 나타난 MZ세대 농부. 희상이 사진 찍기가 쑥쓰럽다는 청년 농부의 진솔한 모습을 담았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이지만 농사 경력은 태어나면서부터이다. ⓒ 오창경
 
물론 아직은 아버지가 기반을 잡아놓은 영농에 밥숟가락을 얹어가는 정도라고 겸손하게 말을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희상이에게 모심기를 믿고 맡긴다. 이제 물꼬를 보러 다니는 일은 희상이 아버지가 하고 농기계를 다루는 일은 희상이가 한다.

논농사는 모내기철이 가장 바쁘다. 모판에 상토를 담고 볍씨를 뿌려서 못자리를 해놓은 다음에는 트랙터로 논을 갈고 물을 채우고 논바닥을 고르게 펴는 써레질을 해놓아야 모내기를 할 수 있다. 이런 작업들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못자리를 시작하고 약 한 달 동안은 시골 마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걸음마 시절부터 트랙터를 접한 희상이는 농사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요즘 말로 하면 뼛속부터 농사꾼, 농업인, 농부인 셈이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것보다 논에서 어른들과 벼농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거나 직접 농사일을 하는 것이 더 좋았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농업에 두각을 나타낸 희상이와 함께 농사를 짓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모를 심고 키워서 벼가 되고, 볍씨가 쌀이 되는 모든 과정에서 희상이에게 아낌없이 가르쳐 주었다. 어린 희상이가 트랙터로 논을 갈고 이앙기로 모를 심는 모습은 우리 동네에선 낯선 모습이 아니다. 희상이는 농고를 졸업한 스무 살 청년이지만, 그의 농업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였다.
 
이앙기에 모판을 싣는 모습 이앙기에 앉은 아이가 희상이이고 가운데가 동생 태원이, 나머지는 희상이의 친구.
이앙기에 모판을 싣는 모습이앙기에 앉은 아이가 희상이이고 가운데가 동생 태원이, 나머지는 희상이의 친구. ⓒ 오창경
 
21세기의 벼농사는 기계들의 승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기계 사용이 편리하도록 논을 반듯하게 경지 정리를 해놓고 물을 대기 쉽게 만들어놨다. 논농사의 전 과정에서 기계 작업이 가능해, 비교적 품이 적게 드는 추세다. 때문에 벼농사는 점점 1인당 농업의 규모가 대량화되고 있다. 예전에는 농부의 손길이 88번이 가야 쌀이 밥이 되어 식탁에 오른다고 했지만 지금은 조건을 맞춰주면 기계가 다하는 것이 벼농사다.

최근에는 논에 방제약을 주는 일도 드론을 날려서 한다. 희상이는 드론 면허까지 취득해서 모내기가 끝나면 이어지는 논 방제 작업도 드론으로 한다. 농부들은 나이가 들지만 기계는 점점 더 신형이 나온다. 21세기 농부들은 영농 기계들이 작업을 하기에 최적화된 조건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하면 된다. 희상이에게 농사를 가르쳤던 동네 사람들이 이제는 희상이를 의지해 농사를 짓게 생겼다.

미래 농업은 작물의 생장뿐만 아니라 첨단 영농 기계 사용법까지 익혀야 한다. 농업도 최신 기계에 빠르게 적응하고 잘 다루는 MZ 세대들에게 유리하다는 뜻이다. 인력으로만 농사를 짓던 시절의 가치였던 품앗이, 두레 같은 무형 자산이 사라지는 자리에 첨단 장비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런 장비들 덕에 농촌에도 모내기와 벼를 수확하는 시기에는 바쁘지만 그 외에는 여가를 즐기는 시간이 충분하다. 희상이처럼 가업으로 농업을 이어가는 사례가 아주 작은 숫자지만 늘어가고 있다. 농촌에 약간의 기반만 있으면 희상이처럼 청년 농부의 꿈의 가져볼만 하다.

못하는 일이 없는 충화면 4형제 

희상이에게는 벌써 3명의 후계자가 있다. 희상이네는 요즘 보기 드문 다자녀 가족이다. 그것도 아들만 4형제이다. 희상이 아래로 6살 터울의 연년생 남동생들만 셋이다. 희상이네 부모가 동네 연애로 결혼해서 줄줄이 아들만 낳았을 때는 동네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눈길을 받았지만 지금은 희상이네 아이들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고 한다.

충화면의 초등학교도 희상이네 동생들 덕에 학생 수를 유지하고 있고 그나마 시골마을에서 건강한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아이들도 맏형인 희상이와 부모님을 따라 자연스럽게 논둑을 누비고 다닌다.
 
희상이네 가족. 보이는 사람이 다가 아니다.  희상이와 둘째 태원이는 이 사진이 찍히는 동안  위의 사진에서 이앙기로 모를 심고 있다. 희상이네는 요즘 보기 드물게 아들만 4형제를 둔 다자녀 가족이다. 그것도 가업을 이어받아 21세기의 농업을 이끌어 가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성장하고 있는 꼬마 농부들이 자라고 있는 가족이다.
희상이네 가족. 보이는 사람이 다가 아니다. 희상이와 둘째 태원이는 이 사진이 찍히는 동안 위의 사진에서 이앙기로 모를 심고 있다. 희상이네는 요즘 보기 드물게 아들만 4형제를 둔 다자녀 가족이다. 그것도 가업을 이어받아 21세기의 농업을 이끌어 가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성장하고 있는 꼬마 농부들이 자라고 있는 가족이다. ⓒ 오창경

희상이가 이앙기로 모를 심는 동안 둘째 태원이는 논둑에 서서 모판을 실어주는 일을 한다. 나머지 두 동생들은 못자리를 해놓은 곳에서 잡초를 뽑기도 하고 힘을 쓰는 일이 생기면 4형제가 달라붙는다. 충화면에서는 희상이네 가족이 모이면 못 하는 일이 없다.

첨단 농업의 현장에서 끈끈한 가족애까지 갖춘 희상이네 가족이 충화면을 넘어서 부여군의 농업을 접수할 날이 머지 않았다. 희상이와 3형제들은 가족을 브랜드로 맛 좋은 쌀을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진 청년 농부와 후계자들로 성장하고 있다.

#MZ세대 농부#청년농부#모내기 #부여군 충화면#다자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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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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