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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농부.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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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서 누추한 옷을 입어보면 나와 대화하는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기 가장 쉽다. 독일 오기 전 약 1년 간 부모님 농사일을 도와드렸고 그때 방문했던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이 방법을 확신하게 됐다. 독일 생활이 길어져 부모님에 대한 걱정이 늘어날수록 내 부모님과 또 다른 농민과 또 나와 같이 농민을 부모님으로 둔 아들딸의 불편한 일상을 공유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됐다. 그렇게라도 해야 자리 비운 데에 오는 짐을 덜 것만 같았다.

나는 우리 농장에 방문했던 사람들의 태도, 행동, 쓰는 말의 품격을 관찰하다 가끔 화가 나곤 했지만 한편으론 흥미를 느끼기도 했다. 내가 관심을 기울긴 것은 그들의 직업, 배경이 아닌 떨어진 옷을 입고 땀흘리며 일하는 부모님을 대할 때 방문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었다.

한 번은 아버지가 농장을 방문한 사모님께 백향과 차를 태워서 드리려 했지만 그 사모님은 "이런 거 안 먹어요" "단거 안 먹어요"라고 했다. 나는 그 사모님의 거절 태도에 기분이 상해 "굳이 안드셔도 돼요"라고 했다. 그 사모님은 "입이 요새 따가워서..."라고 하며 마셨다. 맛이 취향에 맞았는지 꺼내놓은 백향과 하나를 손에 쥐고 그걸 입으로 깨물어 까려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입으로 백향과를 까먹으려고 하는 건 쥐 이외엔 보지 못했다. 백향과 껍질은 단단하다. 사람이 껍집을 입으로 까는 데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사모님의 남편은 내게 자신의 아들이 농촌 관련 공사에 일한다거나, 딸이 미국에서 취업준비한다는 말씀을 하시다가 아버지랑 농사지으면 되겠네 했다.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중요한 건 농민과 농민의 아들에게 무언가라도 가르치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농사만큼 훌륭한 일을 지금껏 찾아보지 못해서 개의치 않았는데 갑자기 아들딸 자랑은 왜 했을까. "아들분께서 일하는 그 공사 직원분들한테 일 열심히 좀 하라고 해주세요, 농민들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거든요"라고 말한게 조금 후회스럽다.

아버지가 조금 당황스러워 했다. 다음엔 좀 더 확실히 당황스럽게 '이 보잘 것 없이 누추한 농장까지 찾아와 모범스러운 자제분들과 훌륭한 가르침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린다'고 말해야 겠다.

지금까지 농장에 방문한 분 중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분도 있다. 담배는 피해가지 않도록 피우려 했고, 부모님께 대하는 태도나 말에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부모님께서 백향과든 오이든 무엇이라도 드리면 그 분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받는 것이 농장에선 드문 일이 됐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최악의 경우를 어머니께 들었다. 오이 농사철 오시는 손님들한께 절대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항상 뭔가를 싸드렸는데 어떤 손님은 그 호의가 권리가 됐다. 어머니 왈 "그 사람이 어느 하루 오더니 오이 남는 거 있으면 좀 달라고 카대. 아빠가 하우스 안 멀리 안보이는 곳에 있어서 내가 남는 게 어딨냐? 이거 다 파는거지"라고 하셨다. 그리고 수 개월이 지났지만 연락 한 번 없고 우리 농장을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 경험때문인지 나는 자주 조선시대 농민과 현재 우리나라 농민의 삶이 근본적으로 나아지긴 한 것일까 비교해 보곤 한다. 농민의 아들로 부모님과 주위 농민들의 삶을 돌이켜보니 21세기 대한민국 농민 삶의 비루함은 조선시대의 것과 특별히 다를 거란 결론을 쉽게 내리지 못하게 됐다. 농민 살림은 제쳐두고 일상화된 그 무시와 무시 받는 일상에 이젠 무감각해져버린 농민의 현실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해결 방법은 아직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사람을 평가하는 '불편한 방법'은 알게 됐다.

대통령이든, 유명인사든, 농민이든, 은행직원이든, 대기업 직원이든, 중소기업 직원이든, 건축 노동자이든, 청소노동자든, 선생이든, 교수든. 그 사람의 정치관과 종교, 성, 지역, 나라, 언어가 무엇이든간에 나는 '지금' 그 사람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 지가 중요했다. 지금까지 찾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누추한 옷을 입고 땀을 흘리며 일을 할 때 대화하는 것이었다.

태그:#농민이야기, #사람평가, #귀농, #농사,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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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독일 마그데부르크에서 평화학 연구를 했다. 주요관심분야는 농촌 문제, 유럽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 탈식민주의, 언론, 환경문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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