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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대표적인 목조건물의 하나인 밀양 영남루 모습
조선 후기 대표적인 목조건물의 하나인 밀양 영남루 모습 ⓒ 한정환
 
지난 4월 28일, 주말 오후라 그런지 영남루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동부 경남의 교통 중심지에 있으며 경남 밀양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영남루이다. 그 영남루가 바로 눈앞에 보인다. 건물 모습을 보니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지만, 건물 구조는 한 번에 보아도 웅장하고 위엄해 보인다.

밀양 영남루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목조건물의 하나로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루로 잘 알려져 있다. 누(樓)란 건물의 사방을 트고 마루를 높여 지은 집을 말한다.

밀양 영남루는 조선시대 밀양도호부의 객사 부속 건물로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건물이다. 밀양강 절벽의 아름다운 경관과 밀양 시내가 훤히 보이는 곳에 위치한 영남루는 조선시대 후반기 화려하고 뛰어난 건축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누각이다.

영남루 건물 배치와 구성

보물 제147호로 지정된 영남루는 신라 경덕왕 때 이 자리에 있었던 영남사의 부속 누각에서 유래되었다. 고려 공민왕 때 김주가 밀양 부사(지금의 군수)로 부임해 새로이 다락을 높게 신축하여 영남루라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844년 이인재 부사가 중건하였으며 정확히는 176년 된 건물이다.
  
 영남루에서 바라다 본 밀양강 전경
영남루에서 바라다 본 밀양강 전경 ⓒ 한정환
 
영남루는 중앙 본루(本樓)를 기점으로 좌측에는 능파당을, 우측에는 침류각을 익루로 거느리고 있다. 건물의 형태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2층 다락형으로 웅장한 기풍을 뽐내고 있다. 침류각과 본 누각 사이에는 달 월(月)자형의 층층각이라는 계단형 통로로 연결하여 건물의 배치와 구성이 독특하다. 현재 통로는 건물 보존을 위해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팔작지붕인 영남루는 기둥 사이가 넓고, 높은 천장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내부 대들보에는 '영남제일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글자 크기도 크기지만 누가 쓴 것인지 궁금하여 보았더니 '이증석 11세 서'라고 적혀 있다. 한마디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영남루란 현판 중 마루청 정면에 걸린 '영남루'라고 쓴 현판은 '이현석 7세 서'라고 되어 있는데 이증석의 동생이 썼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저런 큰 글자를 쓸 수 있다니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들 형제는 이 누각이 지어질 때 중수를 담당한 밀양 부사 이인재의 아들이라 한다. 아마도 명필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서예를 연마한 듯 보인다.
  
 달 월(月)자 모양의 독특한 모습으로 지어진 침류각 모습
달 월(月)자 모양의 독특한 모습으로 지어진 침류각 모습 ⓒ 한정환
 
그리고 내부 단청에는 유독 용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용은 옛날 임금이 사용한 용포나 용좌 등에 많이 그려져 있었다. 용은 또 최고 권력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사방에서 침투하는 잡귀를 막는 역할도 한다. 목조 누각 건물은 화재가 걱정이 되어 화재를 미연에 방지해 달라는 바램으로 물(水)과 관련되어 있는 용 단청을 많이 했다고도 전해진다.

국조 단군의 영정을 모신 천진궁

영남루 경내 북쪽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7호인 천진궁이란 건물이 있다. 공진관이라고도 부르는 이 건물은 1665년 현종 6년에 건립되어 역대 왕조 시조의 위패를 모시는 건물로 사용됐다.
 
 단군 및 삼국의 시조왕,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신 천진궁 모습
단군 및 삼국의 시조왕,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신 천진궁 모습 ⓒ 한정환
   
내부에는 단군이래 역대 8왕조 시조의 위폐를 봉안하고, 중앙 맨 윗자리에는 국조 단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 15일에는 어천대제를, 음력 10월 3일에는 개천대제를 봉행한다.

1952년 단군봉안회가 생기면서 단군 및 삼국의 시조왕, 고려 태조(재위 918∼943)의 위패를 모시면서 대덕전이라 하였으나 1957년에 천진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장화홍련'의 모태가 된 아랑의 정절

영남루 아래에는 아랑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아랑각이 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6호인 아랑각은 이런 전설이 전해진다. 밀양부사의 외동딸 아랑의 미모에 반한 관노가 어느 날 영남루에 달구경 나온 아랑을 겁탈하려다 실패하자 끝내 아랑을 죽여 대나무 숲에 버린다.
 
 아랑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아랑각 내부 모습
아랑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아랑각 내부 모습 ⓒ 한정환
   
아랑이 죽은 이후 부임하는 신임 부사마다 첫날밤에 주검으로 발견된다. 그래서 다들 밀양부사로 부임하기를 꺼려 했다. 어느 날 부사 한 사람이 부임하여 꿈을 꾸었는데, 첫날밤에 아랑의 원혼으로부터 억울한 죽음의 사연을 듣고 그 한을 풀어주기로 한다. 그러나 누가 범인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아랑이 나비가 되어 범인의 머리에 앉아 범인임을 지목한다는 전설이다.

해마다 5월이면 아량 규수를 선발하여 아랑각에서 아랑의 정절을 기리고 있다. 그래서 아랑의 정절은 '장화홍련'의 모태가 되고 밀양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가 되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리랑'

아랑과 관련된 전설은 '밀양아리랑'에도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아랑과 관련된 노래 가사가 들어가 있어 그런지 영남루 마당 한편에 노래비도 세워져 있다.

아리랑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로 지역과 세대를 초월해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재창조되고 있다는 점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후렴구만 들어가면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다는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12월 5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밀양아리랑' 노랫말은 이러하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남천강 굽이쳐서 영남루를 감돌고, 벽공에 걸린 달은 아랑각을 비추네

영남루 명승을 찾아가니, 아랑의 애화가 전해 있네
밀양의 아랑각은 아랑넋을 위로코, 진주의 의암은 논개충절 빛내네

저 건너 대 숲은 의의한데, 아랑의 설운 넋이 애달프다.
아랑의 굳은 절개 죽음으로 씻었고, 고결한 높은 지조 천추에 빛난다.

 
영남루 앞 마당에 있는 석화(石花)

영남루 앞 마당에는 국화 모양을 한 석화(石花)가 보존되어 있다. 맑은 날은 그 형태만 보이지만, 비가 온 후에 보면 국화 모양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울퉁불퉁하게 생긴 바닥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자, 영남루 관리사무소에서 궁금해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물을 부어주며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영남루 앞 마당에  있는 국화 모양의 '석화' 모습
영남루 앞 마당에 있는 국화 모양의 '석화' 모습 ⓒ 한정환
 
석재의 재질이 연한 납석으로 되어있어, 자연적인 영향에 의거 쉽게 부식 또는 훼손되므로 아름다운 자연유산인 석화를 잘 보존하기 위해 바닥에 신발로 문질러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유정 사명대사 동상

밀양아리랑 노래비 왼쪽에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유정 사명대사 동상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계단 아래에서 보아도 사명대사 동상 모습이 훤히 보인다. 계단으로 올라가 보면 공터가 보이는데 여기는 사명대사와 관련한 유품 등을 모아 전시한 박물관 자리였다.

그런데 몇 해 전 박물관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현재는 사명대사 동상만 남아있다. 동상을 옮기지 못한 이유는 사명대사가 바라다보고 있는 바로 앞산에 사명대사의 부모님 묘소가 있기 때문이란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규합하여 평양성 탈환 작전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 유정 사명대사 동상 모습
임진왜란 때 승병을 규합하여 평양성 탈환 작전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 유정 사명대사 동상 모습 ⓒ 한정환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사명대사는 1559년 경북 김천 직지사에 출가한 뒤 2년 만에 승과에 합격했고, 1575년 봉은사 주지로 천거되었으나 거절하고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가 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규합하여 평양성 탈환 작전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1604년에는 강화 교섭을 위해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전란 당시 잡혀간 3천5백 명의 동포들을 데리고 귀국하였으며, 1610년 8월 해인사에서 입적했다. 밀양 사명대사 동상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쓴 휘호가 새겨져 있다.

영남루를 돌아 비탈길을 조금 더 올라가면 무봉사란 절이 있다. 통도사의 말사인 무봉사는 보물 제493호인 밀양 무봉사 석조여래좌상이 대웅전에 모셔져 있다.

그리고 영남루 입구에는 '비 내리는 고모령' '이별의 부산 정거장' 등 서민생활의 애환을 담은 국민 애창곡을 많이 작곡한 박시춘 선생의 옛집이 있다. 대중가요의 거장 작곡가 박시춘은 1982년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서훈 받았다.

그러나 일본을 찬양하는 군국가요를 작곡하였다는 이유로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음악부분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되었고, 박시춘을 기념한 가요제가 친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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