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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새 해가 밝았다. 작년 한 해 동안 한반도는 역사상 유례없는 평화정세를 맞았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남북 간의 교류는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며 상시적 전쟁위기 상황에 놓여있던 한반도에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게 했다.

평화를 위한 여정의 연장선에 있는 2019년의 첫 출발은 나쁘지 않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연말 한국과 미국에 보낸 잇단 친서와 신년사를 통해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며 정상회담을 희망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훌륭한 편지(great letter)"라 표현하며 "멀지않은 미래에 또 한 번의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인사를 통해 한반도 및 주변 지역의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이후 수십여 년 간 이어져 온 분단과 반평화의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반도가 처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대륙세력과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해양세력이 부딪히는 지정적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16세기 말 이 땅에서 벌어졌던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은 당시 아시아 최강의 해양세력인 일본이 최대 대륙세력이었던 명나라와 벌인 세력다툼이었다. '정명가도', "명나라를 정벌하려니 조선은 길을 열어라"라는 일본의 요구는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의미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후 한반도는 거대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에게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교두보이자 완충지로서의 지정학적 규정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교두보이자 완충지인 한반도

지정학의 또 다른 이론인 완충체계 이론에 따르면 완충국은 경쟁하는 강대국 사이에 있는 약소국을 의미하며 강대국 간 직접적 충돌을 방지·감소시키는 역할을 하는 국가로 정의된다. 이러한 완충국은 강대국 간 경쟁 속에서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저항력의 정도에 따라 완충 효과가 결정되는데 저항력이 클수록 강대국 간 긴장과 갈등이 억제되는 효과를 낸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완충국의 소멸은 크게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상정해 볼 수 있는데 완충국이 일방 강대국에 점령되는 경우, 두 강대국에 분할 점령되는 경우, 완충국이 강해져 완충국의 지위를 벗어나는 경우, 강대국 간 우호관계가 형성돼 대립관계가 해소되는 경우 등이 거론된다.1)

한반도의 경우를 역사적으로 적용해 보자면, 20세기 초 대륙세력인 중국, 러시아와 일본이 대립해 해양세력인 일본이 승리하며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경우는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일본이 패망하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 본격화하던 때 한반도는 미·소 양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20세기 말 냉전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수십여 년 간 한반도의 지정적 의미를 규정해왔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불가피하게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완충국으로서의 지위를 부정할 수 없다면 아직 가보지 않은 두 개의 길이 남아있다. 하나는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완충국으로서의 지위를 벗어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 간의 갈등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다자안보체제를 구성해 동북아의 오랜 대립구조를 허무는 길이다.

완충국의 지위를 벗어나는 두 가지 길

이 두 개의 길은 상호 대립하지 않으며 상호 보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작년 한 해 남북이 합의한 판문점선언, 평양공동선언, 군사 분야 합의서 등은 주변 강대국의 영향력을 배제한 독자적인 평화역량 구축의 전개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같은 남북 간의 합의가 주변 강대국에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견고하게 유지될 때, 나아가 경제협력을 포함한 포괄적인 협력체로 발전할 때 한반도가 완충지로서의 지위에서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강화되고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이 힘에 기초할 때 문재인 정부가 구상하는 한반도 신경제구상이나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도 가능하며 동북아에서의 다자안보체제의 형성 가능성도 열릴 수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춘 남한과 트럼프의 표현대로 '무한한 잠재력을 갖춘' 북한이 협력과 공생의 관계로 나아갈 때 한반도는 오랜 지정적 규정성과 완충지로써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반도 자체의 평화는 물론 동북아지역의 주요한 평화의 중재자 및 주도자로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적대와 힘에 기반한 안보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상대를 적대화하고 굴복시킴으로써 얻어지는 일방적 안보가 아닌 상대와 함께 대화하고 협력함으로써 도달하게 되는 상생의 안보가 시작되어야 한다. 

2019년, 불가역적이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길에 성큼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길 희망한다.

각주1)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전에 대한 지정학적 연구 -완충체계이론을 중심으로- 김연지, 고려대 박사학위 논문, 2013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주간 뉴스레터 'watch M' 제171호에 실린 칼럼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김정은 신년사#문재인 신년사#한반도 평화#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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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제언'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Civilian Military Watch)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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