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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없는 일주일-전주 시민 유혜숙씨의 일주일 '버스타는 법'을 잊어버린 유씨는 좌충우돌 일주일을 겪고서 "자가용 대신 버스와 도보, 그리고 자전거에 친해지기로 결심했다.
차 없는 일주일-전주 시민 유혜숙씨의 일주일'버스타는 법'을 잊어버린 유씨는 좌충우돌 일주일을 겪고서 "자가용 대신 버스와 도보, 그리고 자전거에 친해지기로 결심했다. ⓒ 김길중

서울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 자체가 신기할 것이다. 대중교통 이용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교통이 취약한 지방은 '자가용'의 포로나 다름없다. 오죽하면 시민단체(그것도 환경 관련 단체)에서 '자가용 없이 일주일 살아보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할까.

서울의 경우 자가용의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으로 일상화되어 있다. 버스와 지하철 간의 환승도 그렇고, 지하철에서 환승하기 위해 1킬로미터 이상의 걷는 것이 자연스럽다. 지하철역 바로 앞에 직장이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 수백여 미터 이상은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서울과 지역 사람의 인식 차이는 '택시를 타는 기준'을 물어봤을 때도 드러난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지하철이나 버스노선을 잘 모르는 낯선 곳을 갈 때나 시간이 촉박할 때 택시를 찾는다'라고 답한다. 반면, 지방 도시의 지인들은 '승용차가 없을 때 바로 택시를 떠올린다'고 말한다.

'전북녹색연합'과 '전주 지속가능 협의회'는 5월 20일부터 26일까지 일주일 동안 아래와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애초 전북 녹색연합 연중 프로그램으로 시작됐던 이 프로그램은 5월 행사인 '자가용 없이 일주일 보내기'와 같이 진행했다. 여기에 '생태교통 시민행동' 회원들이 함께했다. 참여하는 사람들의 일지를 카페에 게시하게 하고 체험기도 담아냈다.

'자가용을 타야 했던 상황과 타지 않고 대처한 방법', '불편하거나 난처했던 점 혹은 편리하거나 좋았던 점', '새롭게 발견하게 된 문제 또는 알게 된 사실', '생각·몸·관계·행동 등의 변화에서 느낀 점', '자가용을 쓰지 않아서 절약된 비용', '어느 용도까지 자가용을 쓰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기준', '자가용 없이 살기 위해 필요한 조건' 등과 같이 일지의 가이드라인도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한 줄의 느낌, 인증샷 한 장도 훌륭한 기록이 됐다.

버스 타는 법 어려워요. 생태교통 시민행동에서 '차없는 일주일'을 보내면서 주고 받은 일지 대화장면 캡쳐.
버스 타는 법 어려워요.생태교통 시민행동에서 '차없는 일주일'을 보내면서 주고 받은 일지 대화장면 캡쳐. ⓒ 김길중

전주시민 유혜숙씨가 30여 년만에 버스를 타본 소감

이번에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유혜숙(전주 태평동)씨의 일주일을 소개해 보겠다. 유씨는 업무 특성상 1987년부터 일찌감치 승용차를 운전하게 되었고 시내버스를 탈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유 씨는 아주 오랜만에 버스를 타보았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라 수시로 단톡 방에 질문을 던진다. 대화 내용(사진)에서 보듯이 시내버스 이용에 도움이 되는 애플리케이션을 추천받기도 한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 버스 타는 법을 '배워서' 다녔다고 한다.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야 했고, 걷다 보니 즐겁기도 했단다.

유씨는 아들에게 "어머님 다음에 차를 사거든 포터를 사셔야겠어요. 짐이 이리 많으니..."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평소 차에 많은 짐을 가지고 다녔다고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버스를 타게 되고 걷게 되면서 짐을 많이 가지고 다닐 수 없게 됐고, 필요 없는 것들을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게 유씨의 설명이다.

"버스를 타고서 약속 장소에 가느라 내릴 정류장을 확인하는데 노선도가 부착되지 않고 붙어있던 흔적만 남아있어 곤란했다"며 초보 버스 승객의 눈으로 현행 버스노선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 그는 단체에서 진행하는 '공영자전거 체험'을 통해 자전거를 접하기도 했다. 유씨는 3일 간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다고 한다.

일주일을 마무리하면서 올린 후기에선 이런 소감을 남겼다.

"체험을 위해 빌렸던 전기자전거로 오늘 마지막 출근을 했어요. 승용차를 아예 없앨까 고려하기로 했어요. 이 도전만으로 그동안 흘려보냈던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제 인생에 새로운 장이 열리는 기쁜 예감이라고 할까요? 일단 내일부터는 걷고 버스를 타고, 또 승용차를 얻어 타면서 다닐까 합니다. 지속 가능한 세상, 우리 아이들을 위협하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서 나부터 실천하고 내 주변을 바꿔 나가려 합니다. 많이들 도와주세요."

유혜숙 씨와 추가로 대화를 나눴다.

"제가 평소 "미세먼지 저감 활동', '자전거 도시 만들기',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여러 가지 시도와 도전들'에 관심을 갖고 참여를 해왔는데 직접 하는 것과 아닌 것이 정말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자전거로 다니다 보니 제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았어요. 횡단보도를 건널 때 타고 건너야 하는지 걸어서 건너야 하는지 몰라 다른 분들이 하는 걸 따라서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알게 되었죠. '자전거 횡단도'가 그려진 횡단보도가 아니면 보행자처럼 끌고서 건너야 하게 된다는 것을요. 부끄럽지만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게 가장 소중한 경험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시민사회단체 여러 사람들에게도 제가 겪은 것들을 바탕으로 이런 활동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생태교통 시민행동과 함께 이 행사를 주관한 전북 녹색연합 카페에는 여러 참여자의 일지가 올라와 있다.

"공교롭게도 '차 없는 일주일'에 자가용에 굴복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아 반성이 많았다. 가던 날이 장날이었는지 모른다. 이동시간을 계산하면서 자동차를 중심으로 계산하는 습성이 몸에 밴 것이 아닌가 싶었다. 마음에도 불구하고 급하면 택시를 타야 하는 이유가 그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이번 체험을 통해 주차장에서 소요되는, 놓치고 있던 시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태리(닉네임) 님의 '실패한'(본인의 표현) 일지의 내용이다.

'딱 하루 자가용 대신에 버스를 타보는 것으로 참여했다'는 '물병자리'(닉네임) 님의 글에선 이런 내용이 보인다.

"왜 우리는 하루가 이렇게 바쁠까?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정작 나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쫓기듯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을 되돌아보면 그게 바로 자동차 같은 삶이었던 거 같아요. 규정 속도도 무시한 채 달리기 일쑤고 하루도 제대로 쉬어주지 못한 채 앞으로만 달려가는 자동차..."

버스를 타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바쁜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자가용 없이 보내는 일주일 인증샷 생태교통 시민행동 카톡방에는 이런식의 인증샷을 통해 일주일 함께 보냈다.
자가용 없이 보내는 일주일 인증샷생태교통 시민행동 카톡방에는 이런식의 인증샷을 통해 일주일 함께 보냈다. ⓒ 김길중

닉네임 '작은 삶'님의 일지에서는 이 대목을 옮겨본다.

"나아가 자가용처럼 이동수단을 저를 중심으로 계획하고 통제할 수 없는데서 오는 불안감에 노심초사하였습니다. 버스 대기시간도 아까웠습니다. 하지만 처음 운전대를 잡고, 처음으로 도로주행을 하고, 처음으로 네비를 보며 운행하면서 노심초사했던 저를 돌아보면 대중교통을 학습하고 익숙해지는 일은 그때보다 스트레스가 덜 한 일입니다. 더구나 대중교통은 전문기사님이 시간 계획 하에 교통법규 준수하며 운전해 주시니 안전(?)합니다. 여기에 이동시간을 활용한다면 자가용보다 개인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습니다."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이점의 발견으로 승화시키면서 차 없는 일주일을 정리했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전북 녹색연합' 김지은 사무국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참여자는 전북 녹색연합과 생태교통 시민행동 회원들을 중심으로 20여 명입니다. 집계되지 않은 참여자들도 있는데 참여를 선언하며 일지를 SNS에 올리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함께 한 분들도 계셨는데요. 전북 녹색연합에서는 연중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3월엔 '일회용 종이컵 없이 일주일 살아보기'였습니다. 4월엔 '비닐봉투 없이 일주일 살아보기', 그리고 5월엔 '자가용 없이 일주일 살아보기'에 이어 다음 달에는 '고기 없이 일주일 살아보기'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진행하면서 드는 생각은 주변의 시민들이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지자체의 협조를 구해 많은 시민들과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전북 녹색연합의 '땡땡 없는 일주일 살아보기' 전북 녹색연합은 2018년 매월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5월에는 '자가용 없이 보내는 일주일'을 주제로 진행하였다.
전북 녹색연합의 '땡땡 없는 일주일 살아보기'전북 녹색연합은 2018년 매월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5월에는 '자가용 없이 보내는 일주일'을 주제로 진행하였다. ⓒ 전북 녹색연합

오늘 날의 '보통 사람'들도 버스를 배워서 타야 한다(심지어 이런 것은 재벌의 이야기도 아니다). 익숙해진 것이 좋고,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익숙한 것이 지속 가능한 내일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익숙하지 않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을 한 번씩 챙겨기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바라보는 각도를 달리하면 세상이 달리 보이는 법이다. '승용차로 다닐 때는 몰랐던, 비로소 자전거를 타보고서야 달리 보였던' 체험을 통해 오늘을 내일로 바꿔나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북 녹색연합#생태교통 시민행동#자가용 없이 보내는 일주일#땡땡이 없는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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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한의사, 자전거 도시가 만들어지기를 꿈꾸는 중년 남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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