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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1.
아버지의 어릴 적 고향은 풍요로웠고 삶은 윤기가 흘렀다. 1960년대 면에 하나밖에 없는 방앗간 집 손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의 떠받듦을 받았고 마을을 떠나 어디를 가도 뉘  집 손자라며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 마을 사람들은 가난했고 삶은 누추했다.

그러나 방앗간 집 손자인 아버지가 버릇없이 구는 일도 없었을뿐더러 신작로 옆 오두막집에 사는 아버지 고향 친구 태숙이가 기죽는 일도 없었다. 너의 증조할머니가 명절이면 태숙이나 아버지나 똑같이 해 입히고 먹였기 때문이다. 소꿉장난을 하면 태숙이는 항상 아버지의 색시 역할을 도맡아 했는데 뒤란의 앵두나무 옆 장독대가 놀이터였다.

장독대에는 하얀 자갈이 섞인 콩 자갈이 깔려있었고 봄이면 살구나무에서 분홍빛 꽃비가 내렸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장독대의 제일 넓적한 돌 위에는 복자가 새겨진 사발에 정한수가 담겨 있었다. 점심을 먹고 어머니는 장독대로 데려가 사발의 물을 마시게 했는데 마음 착한 도깨비가 마시던 그 물을 마시면 겁이 없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웬걸? 아들 삼 형제 중에 내가 제일 겁이 많다.

할아버지의 사랑방 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콩밭에 앉아 김을 매고 계시는 할머니가 보였다. 또한, 그 시절에는 대통령이 누군지 국회의원이 누군지도 몰랐다.면서기 아재는 동네 심부름꾼이었고 고향 친구 태숙이 이름도 면서기 아재가 지어주었다. 면장 할아버지는 동네 잔칫날 술이나 마시러 오는 그런 할아버지였을 뿐이다.

가난해도 좋았다. 고향의 그때 그 시절이 좋았다.

2.
음매 음매

어둠이 마악 걷히기 시작할 때 윗목에 거름종이로 둘둘 말아 막아놓은 소주병 따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할아버지는 꼴을 베러 나가신다. 외양간 봄에 새로 들어온 송아지가 잠도 없는지 아니면 저 먹거리 베러 나가는 할아버지의 수고로움을 아는지 일어나서 아는 척을 한다. 할아버지는 지게를 진 채로 송아지의 등을 꽤 오랫동안 긁어주고 대문을 나선다.

날이 밝고 할아버지 바짓가랑이는 이슬에 흠뻑 젖은 채로 꼴이 한가득 실린 지게를 지고 돌아온다. 외양간 구유 앞에 끙, 소리를 내며 지겟작대기에 의지해 간신히 지게를 내려놓는데 집채만한 황소가 "음매" 머리를 흔들고 송아지 덩달아 목에 달린 방울을 울린다.

할아버지가 꼴을 구유에 한 아름 두 아름 얹는데, 세상에!

소 꼴 속에는 구절초, 벌개미초, 개망초, 금낭화, 수선화, 개나리, 달맞이꽃, 메꽃, 봉선화, 엉겅퀴, 쑥부쟁이, 꽃무릇, 안개꽃, 금잔화, 꽃다지, 수선화, 개구리발톱, 솜다리, 없는 꽃이 없었다. 꽃만 아니라 도랑물 흐르는 소리도 들렸고 밤송이 툭 터져 알밤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소 입으로 들어가던 개암열매를 잡아당겨 내가 먹기도 했다. 꽃에게는 못 할 짓이었지만 우리 집 송아지는 그렇게 꽃을 먹고 자랐다. 그게 다 우리 할아버지 덕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밭갈이 때 할아버지가 "이려" 하면 왼쪽으로 가고 "어뎌뎌" 하면 오른쪽으로 가고 "와와" 하면 서고는 했다.

사랑하는 딸아, 아버지는 이를 일컬어 '사랑'이라고 부른다.

들꽃을 사랑하는 오상오님이 촬영한 깽깽이풀(사진)과 정시용 시인의 '할아버지' 시 하나 보낸다. 들꽃도 예쁘고 시도 아름답구나.

3.
할아버지

정지용

할아버지가
담뱃대를 물고
들에 나가시니,
궂은 날도
곱게 개이고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
들에 나가시니,
가문 날도
비가 오시네



#딸바보#편지#아버지#고향#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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