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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에 위치한 한동대학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태는 학교 측이 학생학술모임 '들꽃'이 지난해 12월 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 홍승은, 홍승희 작가를 초청해 <흡혈사회에서 환대로 – 성 노동과 페미니즘, 그리고 환대> 강연을 주최한 데서 비롯됐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학생지도위원회를 열고 관련 학생들에게 경위서 작성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 개인의 성 정체성이 공개되는 일도 불거졌다. 학교 측은 학생 징계에 앞서 국제법률대학원(HILS) 김대옥 조교수(목사)에 대한 재임용도 거부했다. 교육 분야에서 재임용 최저요건을 갖추지 못한 데다, 한동대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가르침으로 학생들에게 혼란을 줬다는 이유에서다.

징계 대상 학생들은 지난 12일 한동대 앞에서 지역 시민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때 학생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학교의 조치는 명백한 인권침해라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러자 '한동대를 사랑하는 모임' 100여 명도 맞불 기자회견을 열어 '동성애를 반대하는 한동대를 적극 지지한다'는 성명을 냈다.

한동대 사태를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기독교 정신이 페미니즘이나 성 소수자와 양립할 수 없는가? 하는 의문이다.

일단 문제가 된 강연 영상을 봤다. 이 영상은 한동대 교내 독립언론 <뉴담>이 공개한 영상으로 2시간 35분가량 이어진 강연 내용 전체를 담고 있다.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해석은 다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얼마든지 학문의 장에서 논의 가능한 의제들에 대한 토론이 오갔다고 판단한다. 징계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학교 측이나 성 소수자란 말만 나오면 경기(?)에 가까운 반응을 일으키는 보수 개신교계의 주장처럼 성 소수자를 감싼다거나 '자유 섹스'를 부추기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혹시라도 검증이 필요하다면 영상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그럼에도 한동대 측은 학생들에 대한 징계가 정당하다는 식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동대 관계자는 JTBC <뉴스룸>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동대는 페미니즘을 문제 삼아 학생 징계에 나선 것이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한동대는 페미니즘을 문제 삼아 학생 징계에 나선 것이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 JTBC뉴스룸 화면 갈무리

"명백히 잘못된, 독약은 독약이라고 명백히 아는 것이잖아요. 먹어보고 죽거나 다쳐서 아는지 모르는지 경험해봐라.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몸소 성 평등 실천한 예수, 한동대는?

성 소수자나 페미니즘은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정립된 담론이다. 반면 성서는 이보다 훨씬 전에 쓰여진 문헌이다. 따라서 현대적 의미의 페미니즘이나 성 소수자 담론을 성서에서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나 성서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은 페미니즘이 충분히 주목할만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했다. 이때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그의 수석 제자임을 자처하던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달랐다. 숨을 거둔 예수 그리스도 곁을 지킨 이들은 여성이었다. 이에 앞서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랐을 때, 가슴 치며 울부짖었던 이들도 여성이었고, 예수가 부활한 소식을 알린 이들도 여성이었다. 몇몇 여성들은 자신의 재산을 바쳐 예수와 제자들을 돕기까지 했다. 신약성서 <루가복음>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뒤 예수께서는 여러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는데 열두 제자도 같이 따라다녔다. 또 악령이나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나은 여자들도 따라다녔는데, 그들 중에는 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신하 쿠자의 아내인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라는 여자를 비롯하여 다른 여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 재산을 바쳐 예수의 일행을 돕고 있었다." - 공동번역 <루가복음> 8:1~3

이 같은 여성들의 활동은 남성 종교권력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자주 대립한 점과 선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예수 자신도 3년 동안의 공적 생활 동안 여성이 사회적 약자임을 인식하고, 그들의 아픔을 보듬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현대적 시선으로 풀이하면 예수는 몸소 성 평등을 실천한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페미니즘을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소재다. 따라서 기독교 정신을 표방한 대학이라면 페미니즘을 연구하고, 예수의 삶과 연결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당연히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한동대는 이와는 정반대로 페미니즘 강연을 문제 삼아 징계를 남발하려는 모양새다. 더구나 학생들의 자유로운 학내 활동에 대해 학교 측이 기독교 이념 운운하며 방해하고, 징계를 가하려 하는 처사는 학문과 자유를 명문화한 대한민국 헌법 제22조마저 거스른다. 이런 행태가 과연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는지, 한동대에 묻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 편협하지 않다. 오른쪽 뺨을 맞았으면 왼뺨도 내주라 하셨고, 원수도 사랑으로 보듬으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그의 정신에 따라 설립했다는 한동대는 이런 예수의 정체성과 무관하게 편협한 행보로 한국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징계 대상인 한동대 재학생 석지민씨도 < 오마이TV >와의 인터뷰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석씨의 말이다.

▲ 페미니즘 강연했다가 제적 위기... 이거 실화냐?
ⓒ 김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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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한동대가 표방하는 슬로건이 '하나님의 대학'이에요. 그래서 매번 여기는 '대학입니다', '학문의 장입니다', '비판적 지성을 기르고 민주시민을 양성해야 합니다'라 외치면 그 대학은 앞에 있는 수식어 '하나님의'가 여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러니 여기서 벗어난 것은 '학문이 아니다' 혹은 '잘못된 것이다'는 논리로 이야기를 해요. 저는 그럴 거면 대학을 만들지 말고 교회를 만들던가, 하다못해 신학대를 세우든지, 심지어 신학대도 이렇게 안 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기독교 이념'이 학생들의 자유로운 학내활동을 침해할 근거는 될 수 없다. 한동대는 기독교 정신이 무엇인지, 성서에 기록된 예수의 삶을 다시금 곱씹어 보기 바란다.

"학교에서 주장하는 또 하나의 근거가 '한동대는 사립대로 종교교육을 허가받은 곳'이다는 거에요. 여기서 반대로 생각해보면 종교교육을 허가받았지만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권리를 허가받은 건 아니거든요. 전 이 지점이 학교가 굉장히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 한동대 재학생 석지민씨



#한동대학교#국가인권위#김대옥 목사#석지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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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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