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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를 키우면, 어른들끼리는 경험하기 힘든 낯선 일들을 겪습니다. 오직 육아하는 이 때만, 부딪칠 수 있습니다. 애 키우는 동안 나를 흘려보내는 것 같아 좌절감에 글을 씁니다. '너희만 크냐? 엄마도 같이 크자'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육아일상 속 메세지를 담아 글을 씁니다. - 기자말

막 4개월에 접어든 둘째에게 눈빛이 생겼다. 있는 듯 없는 듯 가만히 누워만 있다가 드디어 자기 존재를 눈맞춤으로 표현한다. 거기에 보드랍고 말랑한 두 손을 꽉 쥐고, 힘껏 고개를 가누면 때묻지 않은 사랑스러움에 팔불출 엄마는 난리법석을 떤다.

"아이고, 어디서 이런 귀염둥이가 왔을까. 우리 귀염둥이. 이쁘다. 까꿍!"

엄마는 촐싹대며 사랑공세를 퍼붓는다. 눈치 없이 어린 둘째만 이뻐했던 탓인지, 스티커 붙이며 잘 놀던 첫째가 울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귀염둥이야! 내가!"

도통 샘을 내지 않아 괜찮을 줄 알았다. 흔하다는 해코지 한 번 없이, 늘 자기 놀이에 열중하던 큰 아이였다. 그러다가 '귀염둥이'의 왕관을 동생에게도 씌우자마자 그동안 누려왔던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아기'의 자리를 빼앗길까 봐 안달이 난 거다.

큰 아이 생의 첫 비교, 누가 누가 더 귀엽나로 시작됐다. 허나 누가 더 귀엽고, 덜 귀여울까. 적어도 부모에게 둘 다 세젤귀(세상에서 제일 귀여움)인데, 뭣하러 저리 샘을 낼까 싶었다. 별일 아니라 여겼다.

하지만 큰 아이는 본격적으로 동생을 질투하기 시작했다. 동생에게 이불을 덮어주려 하면 자기 거라며 가져갔다. 딸랑이를 흔들어주면 그걸 뺏어가기도 했다. 이젠 동생 바운서를 차지해 누워 있을 대도 있다. 대체 '더' 귀여운 게 뭐라고 저러나 싶었다.

부모 품을 차지하려는 소리없는 전쟁통에서 벗어난 새벽만이 내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다.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을 펴놓고 읽다가 견딜 수 없이 부러워졌다. 은유 작가는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단골 카페 창가 자리에서 하늘 보며 글을 쓴다고 했다.

작고 어두운 방, 작은 아이를 포대기로 안아 재우며 책장 위에 노트북을 올려 놓고 글을 쓴다.
 작고 어두운 방, 작은 아이를 포대기로 안아 재우며 책장 위에 노트북을 올려 놓고 글을 쓴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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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육아의 틈바구니에서 자판을 두드리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아침에 부랴부랴 큰 아이 어린이집에 보낸 후, 작은 아이를 포대기로 안아 재울 때만 유일하게 편히 글 쓸 수 있다. 행여 밝으면 선잠을 잘까봐 블라인드를 치고, 앉아서 작업하면 깰까봐 책장 위 빈 곳에 노트북을 두고 선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취미생활을 즐기고 나면 다리와 허리가 뻐근하다.

나도 은유 작가처럼 경치 좋은 카페에 앉아 향 좋은 카푸치노를 두터운 머그잔에 담아놓고 나의 시간을 누리고 싶었다.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생각은 내가 나를 존중하고, 귀히 생각하고, 사랑하는 데서 출발하는 거야. 내 주관이 서면 비교하는 마음도 없어져. - <엄마의 주례사> 중"

잘 살아가다가도 남과 비교하는 순간 다리 힘이 풀려버린다. 큰 아이도 그랬나보다. 내가 은유 작가의 '하늘과 커피 있는 카페'를 '어두운 작은 방 책장 위'와 비교한 후 불행하다 느낀 것처럼 말이다.

애 키우면서 글 쓸 수 있는 방법 찾았다며 기뻐하던 그 순간을 잊고 있었다. 나는 이런 방법으로 글쓰는 즐거움을 누리고, 은유 작가는 은유 작가 대로 지난한 글쓰기의 돌파구를 찾았을 뿐이다.

큰 아이가 어서 백전백패일 뿐인 비교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튼튼한 자존감으로 자기 세계를 살면 좋겠다. 세 살 배기 큰 아이 입에서 '나도 귀염둥이야'가 터져나오려면 부모도 사랑 한 움큼 더 쥐어줘야 함도 잊지 않는다.

부모가 유아기 때 사랑을 두텁게 줄 때, 아이는 자존감을 더 견고하게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유아기를 지나쳐버린 나는 가만히 서서 기쁜 마음으로 중얼거려본다. 오늘도 아이 잘 재우며 글 쓸 수 있어 즐거웠다고.



태그:#생의 첫 비교, #귀여움배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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